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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오늘의 마음 수련

by 정인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서 꼭두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가며 부랴부랴 전철을 탔다. 눈밭 위로 짐을 끌고 다니며 난리를 쳤더니 영하의 기온임에도 좀 더웠다. 겉옷을 벗고 껴입은 것들을 정리하고 어쩌고 하는데 금세 도착해서 또 부랴부랴 내렸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두고 내린 것을 알아차렸다!

한국에서도 안 하던 짓을 오슬로에서 해버리는 나!ㅠㅠ


잠깐 멍...

잠시 후 중요한 모든 것이 그 가방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손이 점점 떨려왔다. 세상이 멈춘다는 것이 이런 건가.


예전에 인도에서 배낭을 통째 도둑맞았을 때는 바로 포기했다. 하도 배낭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가서 그랬는지, 놀라기보다는 좀 허탈했다. 여권과 신용카드 같이 중요한 것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 왠지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 달랐다.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숍에서 자리를 맡겠다며 노트북도 아무렇지 않게 테이블에 올려놓는 한국이므로 전철 분실물을 찾는 건 난이도 '하' 수준으로 느껴진달까. 역무실을 찾아가 바로 신고하고, 내가 타고 온 전철에 바로 전달되어서 직원이 전철 안을 순회하는 것이 상상되었다. 새벽시간이라 승객이 거의 없으니 직원은 덩그러니 놓인 가방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잠시 뒤 '네 가방이 지금 어느 역에 도달해 있다. 언제쯤 찾을 수 있다'라는 답변을 받는 아름다운 상황.


하지만 여기는 전혀 예상이 안 되는 곳! 심장이 뛰었다. '노르웨이는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사회야' 라던 선생님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희망을 가져보려 했지만, 잘 모르는 곳에 덩그러니 떨어져 극단적인 예측불가능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신 차리고!


역무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라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 그게 바로 지금의 나. 홀로 이리저리 배회하다 운명처럼 시설 관리 직원들을 만났다. 가방을 두고 내렸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묻는 내 모습은 아마 꽤나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직원들이 뭐라 빠른 속도의 말로 'national theatret' 역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문이 안 열렸을 거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업무 시작하려면 두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의자를 찾아 잠시 앉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는 더웠는데, 추위 때문인지 전철의 진동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몸이 떨렸다. 옷들을 천천히, 그리고 겹겹이 입었다. 아까 이것들을 벗어재끼느라 가방을 던져두었던 것이다.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잠깐의 의식을 치렀다.


자, 수련의 시간이 왔다.


나의 불안한 마음은 가방을 찾을 가능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 즉, 불안도와 가방을 찾을 확률은 비례 관계, 상관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 불안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초하게 종종거린다고 해서 가방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럴 때 나의 장점은 뭘까. 극도의 고통, 극도의 분노, 극도의 슬픔, 극도의 불안에서 오히려 마음을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스스로를 보며 엄청난 정신력이라고 잠시 자화자찬도 했다.)


손이 시려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순간 지갑이 만져졌다. 가방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신용카드와 임시거주증이 내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신분을 확인할게 하나는 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차근차근 생각을 하자.


여권 문제를 물어보기 위해 영사콜에 먼저 전화를 했다. 노르웨이 한국 대사관 직원과 연결이 되었다. 직원은 가방을 찾는 것을 도와줄 수는 없지만, 긴급 여권 발급은 오늘 안에 된다고 했다. 안쓰러워하는 목소리와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만약 못 찾으면 오늘 바로 대사관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학생들과 여행을 갔을 때 학생 한 명이 여권을 잃어버려서 러시아 한국 대사관을 간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오늘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긴급 여권으로는 여기에 오래 못 있으므로 이후에 새 여권을 발급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머릿속에서 가방을 열어 속속들이 뒤져보았다. 핸드폰 충전기, 제일 먼저 새로 사야 한다. 노트북, 여기서 사면 꽤 비쌀 텐데, 하지만 사야겠지. 한글 자판이 없을 테니 진짜 영어로 살게 되는 건가. 책은 그냥 없었다 치고. 에어팟은 이미 상태가 오늘내일하는 중이었으니 마음을 비우자. 그 외에 잡다한 것들은 딱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실상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짊어지고 다닌 셈이었다.


그러다, 외장하드가 떠올랐다. 하아.

주기적으로 새것으로 교체하며 파일을 옮겨 담았던 것이라, 거의 십여 년 넘게 축적된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온라인에 연결된 것들도 있겠지만, 아닌 것들이 더 많았다. 하필 수많은 수업 자료들이 담긴 폴더가 떠올랐다. 일반 학교부터 대안학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일하면서 만든 것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그게 왜 떠올랐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중요한 건가? 나는 교사를 계속할 건가? 교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그 자료들이 없으면 나는 교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나? 그동안 이것들을 자주 사용했었던가? 새로운 수업엔 매번 새로운 자료가 필요하지 않았던가? 그 자료들이 앞으로도 필요한가? 그 기록들이 없으면 내 과거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인가?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진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저장한 것들을 버리지 못해 고용량 제품을 매번 재구매하며 손에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냥 지금의 나. 데이터 조각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장하드 역시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인생 새 출발 하게 생긴 것이다.


오고 가는 노르웨이인들 사이에 앉아 '초연함'에 대해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구나. 어찌 되든 삶은 그냥 이어지는구나. 그 가방이 있던 시기와 없는 시기로 나눠질 뿐, 삶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구나.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라고 묻던 법사님의 질문에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고요함에 감탄하였다.




분실물 창구의 불이 켜졌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가가 전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고 말했다. 직원이 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무슨 서류에 쓰는 것도 아니고 대뜸 물어서 당황했다.

"내 이름이요???? 정인 홍....."

그러자, 직원이

"뎡인?! 뎡인?!"

하며 웃었다. 뭐지?


"이거 네 거구나?"

직원이 가리킨 곳을 보니 익숙한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이름이나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해 물건들을 꺼내 확인 중이었다고 했다. 내 여권을 찾아낸 직원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땡큐!!!'를 연발하며 감격의 비명을 질렀다. 직원이 하사해주시는 가방을 두 손으로 공손이 받아 들었는데,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다. 마치 새해 선물 증정의 현장 같았다. 나는 세상 진실된 '해피 뉴 이어' 인사를 하고 왔다.


새벽에 해맑게 인사하고 나섰던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추가 숙박비를 드려야 한다. 비행기표는 날려먹었다. 그런데 그게 다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세상 일은 그냥 다 상대적인 것이라는 깨달음도 추가된 것 같다.


나 아까 되게 초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지금 되게 행복하다.




덧)

예전에 그렇게 자기 물건 안 챙기고 자주 깜빡하는 학생이 있어서 뭐라 잔소리 많이 했었는데... 반성하게 되었다.

그럴 수 있다. -_-;

역시 사람은 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학생으로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이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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