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Jan 06. 2024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만 들으면


"교사도 결국은 서비스직이라서, ‘감사합니다’ 한 마디만 들으면 섭섭한 거 다 풀리는데, 그 한마디를 안 하더라고요! “


오래전 졸업생이 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더니 술자리에서 고래고래 외친 말이다. 많은 것을 쏟아붓는 것에 비해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푸념하였다. 학생일 때는 선생님들한테 그렇게 툴툴대더니만. 속으로 피식 웃으며 술을 따라 주었더랬다. '서비스직'이라는 단어는 졸업생에게서 듣기에는 좀 씁쓸했다.


사실 나도 한동안 '감사' 따위에 매달리며 서운함과 섭섭함에 잠겨 살던 때가 있었다. 몸과 마음을 소모하는 나를, 누군가는 알아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사는커녕 불만과 민원이 난무하는 학교는 극한직업의 현장일 뿐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아이들은 제 삶이 버거워 남을 볼 겨를이 없다. 때맞춰 생애전환기를 겪는 학부모는 신경이 곤두서있다. 수업을 하러 온 강사는 혀를 차며 학교를 탓한다. 무엇하나 손해 보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고충을 말하느라 학교에는 원기(怨忌)가 쌓인다. 그 원망과 토로를 받아내는 것이 내 역할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섭섭함은 억울함이 되고 슬픔이 되었다. 그 마저도 웃으며 받아내야 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목소리에 기운이라도 빠지면 '대안학교 교사 같지 않으시네요' 같은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비스직의 고충이랄까.


시간이 흐를수록 감사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나만큼의 애정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편으로는 일종의 포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깊이 마음 쓰지 않고 적당히 눈을 감으며 차라리 나를 보호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지난달, 졸업식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누구 하나 인사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시대가 달라지는 것인지, 학교 특성의 차이인지 아무튼 다들 부리나케 흩어졌다. 오래전 졸업식날이면 학부모님들과 정신없이 인사하고,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울며불며 헤어지던 기억이 살짝 떠오르긴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남은 교사 몇이 모여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편의점의 저렴한 와인을 사고 학교 주방에 남아 있는 과자 몇 봉지를 뜯어 기분을 냈다. 한 해의 온갖 아쉬움과 실망은 해소되지 못하고 그냥 남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감사를 받으면 황송해지는 서비스직 교사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평온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졸업한 아이들 중 몇은 새해를 맞아 성인이 되었다. 모여서 작정하고 술을 마실 생각에 들떠 오래전부터 그 계획을 이야기하곤 했다. 어디서 어떻게 모여 무슨 술을 마시겠다 하며 계획들이 거창했다. 뒤늦게 들어보니 결국은 한 방에 모여 과일향 저알콜 맥주를 홀짝이며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대망의 날에 함께 야심 차게 수행한 결과물을 들고 오래간만에 학교에 나타났다.


바로, 감사 편지였다......


한껏 높은 목소리로 내놓은 편지를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읽지 못했다. 나중에 조용해진 때를 기다려 조심히 펼쳐보았다.


"...... 감사합니다."


한 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아. 나는, 사실은 이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사실은 그동안 섭섭하고 서운했었나 보다. 깊이 마음 쓰고 있었나 보다. 애정을 쏟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미워하고 있었나 보다. 평온한 게 아니었나 보다......

아직 멀었나 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글자를 꼭꼭 눌러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자들이 앞으로의 인생까지 거론하며 감사를 표하는데, 가슴이 웅장해진다. 술기운에 감성적인 기분이 되어서 쓴 것일까. 내막은 모르겠지만, 각자 등지고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 보고 있었다고 아이들이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말하고 있었다. 원망 가득한 이곳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그 끈적하고 짙은 애정에 숙연해지고 만다. 눈물이 뚝 뚝 깊은 곳까지 떨어졌다.


결국 한 마디의 말이 다시 나를 살리는 것을 실감하였다. 함께한 시간에 대한 감사가 오늘 이후의 삶을 만들고, 나도 몰랐던 내 존재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감사를 바라며 괴로워하는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혹사하면서 상대에게 그만큼의 애정을 원하는 것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적당히 내려놓고 적당히 떨어져 살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옭매듭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외로움도, 슬픔도, 섭섭함도, 모두 풀어지게 한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닫고 말았다.


여태, 이런 걸 새로 배우느라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 교사가 활동지를 만들 때 중요하게 담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