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영서의 초단편 03

by 영서

발을 동동 구르는 노란 털의 개가 내 옆에 있다. 개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발을 쉬 내려놓지 못한다. 앞을 못 보는 주인과 말을 할 수 없는 개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있다. 주인은 자기 몸을 한껏 웅크려 아래를, 개는 애타는 얼굴로 위를 보는것이다.

그는 몸을 숙여 정류장에 있는 장애인용 안내스피커버튼을 연신 눌러대는 중이다. 얼굴을 바짝 붙여 버튼에 코가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버튼은 고장이 났는지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주인이 할 수 있는 건 버튼을 누르며 씨씨거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의 오금엔 개의 코가 연신 부딪힌다. 짖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와 이건 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겠지. 아우시발 좀, 주인은 급한 제 마음을 몰라주는 개에게 와락 화를 낸다.

그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눈이 보인다. 말도 할 수 있으며 들리기까지 한다. 나는 손에 닿을 거리에 있지만 만질 순 없는,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볼 수 도 없는 그 개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나의 착한 개, 어렸을 적 내가 키우던 개는 10년을 공항에서 살았다. 어리고 총명하고 조용한 개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줄 수 있기까지 딱 그만큼이 걸린 것이다. 다 늙어버린 개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꾹 참은 탓이겠지. 뜨거운 바닥에서도 입천장만 푸르르 터는 거 말곤, 저 아이처럼 코를 주인에게 대볼 생각도 못하고 온순하게 참았겠지. 개는 안돼를 더 이상 안 들어도 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정신을 놓아버렸고 한 번도 내 본적 없는 큰 소리로 매일 울부짖어댔다.

나는 우는 개를 끌어안고 매일 밖을 돌아다녔다. 개를 데려온 아빠가 말했다. 거기에 늙어버린 개들이 더 있다고. 아빤 그중 가장 침을 많이 흘리는 개로 데려왔다. 그게 아빠의 자책의 범위였다. 너는 참지 마라. 참으면 미쳐버린다. 아빠의 말에 내 팔에 안겨서 꺼이꺼이 우는 개를 내려다보며 나는 왈왈 짖는 개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갑자기 그날 아빠의 말이 생각난 건 왜일까.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선 난 짖을 수 없겠다. 누굴 탓하기도 애매하니까.

그 개는 정말 까만 눈을 가졌었다. 갑자기 난 노란 털을 가진 저 개는 눈이 무슨 색일까 궁금해져 버렸다. 몰래, 내 발근처에 물을 살짝 부어보었다. 개가 고개를 돌린다. 밝은 갈색눈이구나. 개의 발근처로 물줄기가 줄줄 아스팔트를 타고 가 아주 얕은 축축함이 생긴다. 그러자 조용하고 천천히 발을 대는 게 보인다. 다시 앞을 보더니 모르는 척 그 위에 가만히 앉는다.

주인은 강아지가 조용해지자 허공을 둘러보다 이쪽을 정확히 쳐다보았다. 꼭 내가 보이는 것처럼. 저기 여기 어떻게 가는 거요? 몇 번 타시면 됩니다 버스 오면 알려드릴게요. 주인은 고맙습니다. 하더니 의자에 앉는다. 나는 개를 더 이상 쳐다보지 못했다. 그냥 둘이서 안전히 집에 잘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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