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만드는 사람(Maker)'의 시대는 끝났다

AI 시대, 당신의 연봉을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

by 박주원 박사

우리는 오랫동안 '장인 정신(匠人精神)'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한 땀 한 땀", "뼈를 깎는 노력", "1만 시간의 법칙". 이런 단어들은 직장인들에게 성경과도 같았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전략부서 배치 후 초임 시절, 선배들은 늘 이렇게 말했죠.


"박 대리, 보고서는 엉덩이로 쓰는 거야. 자료 조사부터 네 손으로 직접 다 해봐야 진짜 네 실력이 되는 거야."


그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엑셀 칸 하나하나를 직접 채우고, 밤을 새워 PPT 줄 간격을 맞췄습니다. 그 성실함이 저를 전략기획팀장으로, 디지털전략부 부장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장인 정신'이 이제 당신을 배신할 것입니다.


생성형 AI 시대에 무언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는 '메이커(Maker)'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1. "제가 직접 썼습니다"가 무능함(?)의 증거가 될 때

최근 제가 운영하는 핀테크 회사 '링크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규 서비스 보도자료를 작성해야 해서, 두 명의 직원에게 초안을 부탁했습니다.


직원 A (성실파): 3시간 동안 끙끙대며 한 줄 한 줄 직접 썼습니다. 오타도 없고 정성스럽지만, 문장이 다소 평이하고 밋밋했습니다.

직원 B (AI 활용파): 10분 만에 챗GPT와 클로드(Claude)에게 5가지 버전의 헤드라인과 본문을 뽑게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50분 동안 그 5개 중 가장 좋은 문장들을 골라 조립하고, 우리 회사의 톤앤매너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결과물은 어땠을까요? 냉정하게 말해 직원 B의 압승이었습니다. 글의 구조, 어휘의 다양성, 그리고 무엇보다 '투입된 시간(ROI)'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직원 A가 "성실하다"고 칭찬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경영자인 제 눈에는 이제 다르게 보입니다. "왜 10분이면 끝날 일을 3시간이나 붙잡고 있어? 회사의 리소스를 낭비하는 거 아냐?"


잔인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의 가치는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밤새워 썼습니다"는 자랑이 아니라, AI라는 도구를 쓸 줄 모른다는 '무능함의 고백'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에디터(Editor)의 눈: '안목'이 곧 실력이다

그렇다면 AI가 다 해주니까 인간은 할 일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AI는 1분 만에 10개의 기획안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10개 중 어떤 것이 우리 회사의 상황에 맞는지, 어떤 것이 시장에서 먹힐지, 어떤 것이 리스크가 있는지는 AI가 판단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편집장(Editor-in-Chief)의 눈'입니다. 잡지사 편집장은 직접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써온 수많은 원고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고(Curation)', '방향을 수정하고(Direction)', 최종적으로 '승인(Approval)'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이 갖춰야 할 능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선별(Selection): AI가 내놓은 A안, B안, C안 중 우리 조직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내는 '직관'.

조율(Tuning): "A안은 너무 공격적이고 B안은 너무 보수적이네. A안의 아이디어에 B안의 안정성을 섞어보자"라고 믹스(Mix)할 수 있는 '응용력'.

책임(Responsibility): "이 문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빼자."라고 데스크를 보는 '리스크 관리 능력'.


이제 여러분의 연봉은 '타자 속도'나 '엑셀 함수 실력'이 아니라, 이 '안목(View)'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3. 안목은 어디서 오는가? (당신의 짬밥은 헛되지 않았다)

여기서 희소식이 있습니다. 많은 4050 직장인분들이 "나는 AI 기술을 모르는데 어쩌나" 하고 불안해하십니다. 하지만 '안목'은 기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경험(Experience)'에서 나옵니다.


신입 사원에게 챗GPT를 쥐여줘도, 그들은 무엇이 좋은 기획안인지 구별해내지 못합니다.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하고 넘어가죠.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여러분은 보입니다. "이거 문장은 화려한데 실현 가능성이 없네." "이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전략이야." "우리 사장님이 딱 싫어할 스타일인데?"


여러분이 지난 10년, 20년 동안 현장에서 깨지고 구르며 쌓아온 그 노하우의 '암묵지(Tacit Knowledge)'가 바로 AI 시대 최고의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AI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은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술을 모른다고 주눅 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훌륭한 편집장이 될 자격을 갖췄습니다. 단지 그동안 '직접 쓰느라' 그 능력을 쓸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4. 지금 당장 '빨간 펜'을 들어라

내일 출근하면 당장 업무 방식을 바꿔보십시오.


백지 공포증을 버리세요: 제발 빈 화면에 커서를 깜빡이며 고민하지 마십시오. 무조건 AI에게 초안(Draft)을 시키십시오. 엉망이어도 좋습니다.

빨간 펜을 드세요: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출력해서(혹은 모니터에 띄워두고) 데스크를 보십시오. 가차 없이 긋고, 고치고, 덧붙이십시오.

지시자가 되세요: "다시 써와", "좀 더 감성적으로", "표로 정리해"라고 끊임없이 피드백(Prompting) 하십시오.


저는 20년 간 금융맨, IT컨설턴트, 신기술 회사 임원 생활을 하며 수많은 보고서를 썼지만, 지금은 단 한 줄의 코드도 직접 짜지 않습니다. 대신 AI 개발자와 대화하며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회사는 인도네시아 금융 시장을 뚫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작가는 고독하지만, 편집장은 위대합니다. 이제 '만드는 손'을 내려놓고, '지휘하는 눈'을 뜨십시오. 그것이 AI라는 거인을 부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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