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목격한, AI 시대 생존자들의 3가지 코드
지난 글에서 저는 "안정된 은행 부장 자리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지인들이 묻더군요. "그래서 도망친 그곳(IT 업계)은 낙원이던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습니다. 국내 최대의 클라우드 기업인 A사와 블록체인 스타트업 B사의 임원으로 일하며 마주한 현장은 은행보다 훨씬 처절했습니다. 기술은 매번 바뀌었고, 어제 "이게 정답입니다"라고 제안했던 솔루션이 오늘 아침엔 "틀린 답"이 되어버리는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혼란스러운 파도 속에서 저는 낙원 대신 '서핑 보드'를 발견했습니다. 모두가 AI라는 쓰나미에 휩쓸려갈 것이라 공포에 떨 때, 오히려 그 파도의 힘을 이용해 더 빠르게 나아가는 사람들. 저는 47세에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생성형 AI 산업공학' 박사 논문을 쓰며 그들을 추적했고, 현장에서 그들의 생존 방식을 목격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야생에서 발견한, AI가 절대 복제할 수 없는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의 3가지 생존 코드>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AI는 세상의 모든 '텍스트(Text)'와 '법전'을 학습했습니다. "이 사업이 한국의 현행법상 가능한가?"를 물으면 AI는 판례와 조항을 근거로 완벽한 듯한 답을 줍니다. 하지만 AI에게는 치명적인 결핍이 있습니다. 바로 "시장의 맥락(Context)'을 읽고 판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기업 B사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회사는 STO(토큰 증권) 및 RWA(실물 연계 자산)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경영진은 리스크 검토를 위해 챗GPT와 법률 AI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AI의 답변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정확했습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토큰 증권 발행은 아직 법안 마련 중입니다. 별도의 샌드박스로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스타트업이 직접 발행하는 것은 불법 소지가 높으며, 금융규제 샌드박스 승인이 필수적입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에 분위기는 침울해졌습니다. "샌드박스 승인받으려면 1년은 걸릴 텐데, 사업 접어야 하나?" 하는 순간, 전략팀 박 과장이 나섰습니다.
"AI는 '발행(Issuance)' 규제만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시장의 맥락은 다릅니다. 지금 증권사들은 법이 통과되기만을 기다리며, 미리 'RWA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습니다. 우리가 증권을 직접 발행하는 '금융업'을 할 게 아니라, 증권사들에게 RWA 인프라를 깔아주는 'IT 솔루션(B2B SaaS)' 사업으로 정의를 바꾸면 됩니다. 이건 규제나 인가가 필요 없는 영역입니다."
이 한마디가 회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우리는 규제와 싸우는 대신, 규제를 피해 돈을 버는 '기술 공급자'가 되기로 했고, 그해 큰 매출을 올렸습니다.
AI는 '규정된 정답'을 주지만(때때로 아닌 경우도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관점의 전환'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의 업무가 매뉴얼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는 일이라면 대체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라는 벽 앞에서 "그럼 옆문으로 들어가면 되지"라고 우회로를 찾아내는 '해석 능력'이 있다면, 당신은 대체 불가능합니다.
클라우드 기업 A사에서 근무할 때, 기술적인 지식은 얕은데도 매년 매출 1등을 놓치지 않는 김 전무님이 계셨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뒤에서 수군댔습니다. "전무님은 클라우드 아키텍처도 모르면서 어떻게 영업을 하는 거야?"
저도 그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는 고객에게 '기술'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객의 '불안'을 해소(解消)해 주었습니다.
한번은 대기업 고객사와 미팅을 하는데, 고객사 담당 임원이 신기술 도입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AI라면 "비용 효율성이 30% 높으니 도입하십시오"라고 데이터를 들이밀었겠죠. 하지만 김 전무님은 미팅이 끝난 후, 그 임원과 조용히 차를 한잔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상무님, 솔직히 이번 프로젝트 실패하면 내년 임원 인사 때 곤란해지실까 봐 걱정되시는 거죠? 기술적인 방어는 저희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워서라도 완벽하게 막겠습니다. 상무님은 그냥 '혁신을 주도한 리더'라는 성과만 가져가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상무님 입지를 안전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수십억짜리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이 임원에게 필요했던 건 정교하고 확실한 IT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심리적 안전장치'였던 겁니다.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AI가 데이터를 연결할 때, 여러분은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셔야 합니다. 상대방의 두려움과 KPI(성과지표)를 읽고, 안심시켜주는 능력. 이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고차원적인 비즈니스 스킬입니다.
마지막 생존 코드는 '태도(Attitude)'입니다. 제가 박사 논문 연구를 위해 직장인들을 인터뷰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생존자들은 AI를 마법봉처럼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AI를 '아주 똑똑하지만, 눈치 없는 신입 사원'처럼 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후배 최 차장은 마케팅 기획자인데, 그는 챗GPT가 쓴 글을 절대 그대로 보고하지 않습니다. "부장님, AI한테 시키면 초안은 1분 만에 나오는데요. 그건 그냥 '재료'일 뿐입니다. 우리 브랜드 톤앤매너랑 전혀 안 맞거든요."
그는 AI에게 초안 작성을 시켜 3시간 걸릴 일을 10분으로 줄입니다. 그리고 남은 2시간 50분을 노는 게 아니라, 그 초안을 '수정(Editing)'하고 '윤색(Polishing)'하는 데 씁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더하고, 회사의 최신 이슈를 반영합니다.
"예전에는 '0에서 1'을 만드는 데 야근을 했다면, 지금은 '1을 10'으로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덕분에 결과물의 퀄리티는 올라갔고, 저는 더 전략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게 진짜 생존자의 태도입니다. AI를 쓴다고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일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남들이 AI가 쓴 기획안을 그대로 복사해서 낼 때, 그 위에 자신만의 통찰을 한 숟가락 얹어 '명품'으로 만드는 사람. 그 '한 끗'의 차이가 평범한 직장인과 대체 불가능한 인재를 가릅니다.
저는 50세가 되어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제 서핑 보드는 '금융 소외 계층을 돕는 기술'이었습니다. AI와 블록체인이라는 차가운 기술을 이용해, 사람을 돕는 따뜻한 금융을 만드는 것.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제 남은 커리어를 걸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서핑 보드는 무엇입니까?
혹시 여전히 "내 일자리가 없어지면 어쩌지?"라는 공포 속에 웅크리고 계신가요? 아니면 "이 거친 파도를 타고 어디로 가볼까?"라는 설렘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기 시작하셨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저 역시 매일 흔들리고, 매일 배웁니다. 하지만 혼자 고민하면 '걱정'이 되지만, 함께 이야기하면 '전략'이 됩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고민을 나눠주거나 메일로 질문해 주세요. "저는 15년 차 영업맨인데, AI 시대에 뭘 준비해야 할까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 챗GPT를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질문이든 좋습니다. 제가 20년간 금융맨과 컨설턴트로서 IT 야생에서 구르며 얻은 흉터들을 바탕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생존 지도'를 그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졌기에, 반드시 살아남을 것입니다.
박주원 (Ph.D. / CEO)
Identity: 차가운 기술을 뜨거운 언어로 통역하는 'AI 휴머니스트'이자, 현장을 누비는 '실전형 경영자'
Career: (현)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이사, (전) 블록체인 기업 상무, 클라우드 기업 이사, 시중은행 부장.
Message: "불안은 공부하라는 신호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생존합시다."
[Notice]
2026년 1월, 저서 <생성형 AI 시대, 기업이 살아남는 법>이 출간됩니다. 브런치에서 다 못한 구체적인 실무 매뉴얼을 담았습니다.
강연 및 비즈니스 협업, 혹은 진로 고민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 이메일: fintech119@gmail.com
� 링크드인: [박주원 박사 프로필 바로가기]
#직장인생존 #AI시대 #커리어피벗 #4050재취업 #RWA #STO #핀테크 #디지털전환 #인사이트 #박주원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