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로 설 때

희망, 잔인한 그 말

by 한아르미

조금씩, 티 나지 않게 정리하고 있다


어제부터

나는 티 나지 않게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두고 갈 것과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나누었다.


다행인 건지,

가져갈 것은 거의 없었다.

파우치 하나 정도였다.

아니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서랍 속 모아둔 논문이며 자료들을

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책상 위에 두고 키우던 수경 식물은

어제 집으로 데려왔고

아직 한 번도 쓰지 못한 2026년 다이어리도 챙겼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표지였다.


그동안 써왔던 다이어리를 포함한

명함책..

서랍 속 대부분은

아마 버리게 될 것이다.

정리라는 이름으로.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나갔다.

벤치에 앉아 쉬지도 않았고

식물원에도 들르지 않은 채

한강까지 걸었다.


매일 걷는 길인데도

하늘은 매번 달랐고

구름과 나무도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정말 덕분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는 달라지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던 시간이

아무 기대 없이 포기해 버린 시간보다

훨씬 길고, 훨씬 힘들었다.


그 희망을 내려놓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까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고양이와

그 시선을 모른 척하는 까치 한 마리.

친구인지,

아니면 기회를 엿보는 사이인지.


요즘 나는

이런 사소한 장면에 자주 멈춰 선다.


퇴근 후 집에 와

오징어를 데치고

남편이 구운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주말에 야채곱창을 시킬 때 따라온

마늘과 고추를 꺼내

초장에 넣어 먹었다.

왜 먹는지 몰랐던 맛,

이렇게 매운데 어떻게 먹는지 신기했던 맛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었다.


입이 맵고 속이 아린 것 같아도

끝까지 다 먹었다.

묘하게 개운했다.


마늘 맛이 변한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걸까.

아니면 무뎌진 걸까.


강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입맛은 줄지 않았고

체중도 그대로였다.

그 사실이 웃기기도 해서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영상을 트는데 우연히 흘러나오던 노래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너무나 유명한 노래였다.

엉엉 울었다.


아이가 나와 나를 안아주고

남편도 말없이 안아주었다.


울다 멈추다를

한참 반복했다.


아이가 말했다.

“이제 그만 울어.

엄마가 우니까 나도 슬퍼지잖아.”


잠시 가만히 있다가

울음을 그쳤더니

다시 물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꽁꽁 얼어 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린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출근길 버스 창밖으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황금빛 풍경이 아름답고, 아련했다.

이 풍경을 보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직 아무 결정도 공식적이지 않지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많은 것들을 끝내고 있었다.


다행인 건지,

아직은 외롭고 무섭다며

나에게 할 일을 만들어주는 아이를 핑계 삼아

느리고, 천천히 살아보려 한다.


남은 생은

한 40년쯤 되려나.


오늘은

이 속도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희망이 사라지고 나서야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던

나의 고민을 끝내고 멈춰 설 수 있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찾아왔다.

무언가를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더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렇게,

느리지만 회복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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