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_EP1.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던 이유

1장.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은 사실 멈춰 있지 않았다.

EP1.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던 이유EP1.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던 이유

결혼 후 약 6개월 동안 우리는 주말부부로 지냈다.


나는 결혼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출퇴근을 했고, 평일의 일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에 남편을 만나는 일이 더 낯설었다.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을, 약속을 잡아 만나는 기분으로 만났다.


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좋아했고, 잘하기도 했고, 그만큼 인정도 받았고 욕심도 있었다.

일을 통해 나를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했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혼자 살아가는 감각이 더 분명했다.


그 무렵 남편이 일본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주말부부로 지내며 매번 만날 때마다 싸우고, 다시 헤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 반복됐다.

이러다 결혼생활다운 결혼생활 한 번 못 해보고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다.

함께 살아보자는 선택이었다.


일본에서는 약 네 달을 지냈다.

이케다시 근처에서 살았고, 남편은 여전히 바빴다.

주말에도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한 번도 일을 하지 않고 주부로만 살아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매일매일 내 진로가 걱정됐다.

혼자 일본어를 공부하고 카페를 돌아다녔지만 즐겁지 않았다.

길에서 가족 단위로 걷는 사람들만 봐도,

내가 왜 혼자인지 알 수 없어 눈물이 났다.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남편의 직장이 있는 곳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곳은 내 생활이 만들어진 적 없는 도시였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 산전검사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떨떨하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바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다시 일을 못 하겠구나.

누가 임신한 여자를 채용해 주겠어.


결혼생활도, 내 마음도 힘든 상태에서 맞이한 임신이라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그래도 임신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했다.


임산부 합창단에 들어가 공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났다.

그 무렵 미술심리치료사 수업을 들었고, 자격증 하나를 땄다.


첫째를 낳고 5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맞는 옷도 없었지만 면접을 보러 갔다.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부모님들은 멀리 계셨다.

어린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내가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재택근무.


다행히, 내 일은 집에서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때는 코로나 전이었고,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결국 취업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조건이 어떤 의미에서는 욕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다 첫째가 8개월쯤 되었을 때,

지인의 부탁으로 국책과제 연차보고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한 업체의 보고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업고 밤을 새워 수정한 보고서는 통과되었고,

회사는 수억 원의 환수 위기를 넘겼다.


그 일을 계기로 재택근무 조건을 받아들인 채 취업을 했다.

최소 1년은 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구조가 엉망이던 내부 업무를 정리하느라 몇 달은 거의 매일 출근했다.


정리가 끝나고 이제 정말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왔을 때,

사장은 갑자기 재택근무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급한 불을 꺼주고 나니 조건은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재취업 기간은 허무하게 끝났다.


이후 다시 보고서를 써달라며 회사 이사가 집까지 찾아왔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일을 그만둔 그 달,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꼈다.

나는 이제 정말 취업을 할 수 없겠구나.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이를 맡기지 않고,

집을 지키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이 아이들만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을 텐데.

남편의 부담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어디로 이어질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