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캐나다 밴쿠버로 날다

by 하얀 나비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출산의 고통을 잊을 때쯤 둘째를 가졌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조금 덜 힘들게 세상에 나왔다.

남편도 같이 병원에 갔다.

아들이었다.



딸과 아들을 다 키워 보고 싶었는데 바라던 대로 되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남편은 시아버님의 도움으로 30명쯤 되는 직원을 데리고 대리점 사업을 하고, 큰아이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마저 수영교실에 다니면서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매주 한번 백화점 문화센터에 나가서 교수님이 가르치는 그림을 배웠다.


오전시간에는 집 근처 에어로빅 교실에


일요일만 빼고 매일 나가서 땀을 흘렸다.


백화점에서 세일하는 애들 옷도 샀다.


작은 행복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온 선생님이 가르치는 쉽게 그리는 그림을 알게 되었다.


몇 달 동안의 수업을 마친 후 세계 어디서든 그림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땄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회사의 그림교실에서 매주 그림을 가르쳤다.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 분들과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다.


어느새 나의 호칭이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박람회에도 나가서 그림을 홍보하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사람들이 재빠르게 그려지는 그림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들 모임에서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내가 그곳에 가서 그림을 가르치는 일이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서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함께 왔고 내가 일하는 동안


밖에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시간을 보내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아직 안 끝났는데 갑자기 강의실로 아이 둘이

"엄마"

하며 뛰어들어 왔다.



아휴~


나는 당황했고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남편이 한눈파는 사이에 애들이 들어온 것이다.



한 달만 그림을 가르치고 끝냈다.


학원 원장님들은 한두 번의 수업 만으로도 나보다 훨씬 더 그림을 잘 그리셨다.



그즈음 남편은 또다시 이민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의 큰 누나는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있었고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영어도 한마디 못 하는데 무슨 이민이야”


나는 그저 안주하고 싶었다.


어렵게 얻은 이평안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이민 신청을 했고 뜻밖에도 통과가 되었다.



시부모님은 막내아들의 결정을 막지 못하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 아침까지도 우리는 정말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시아버님이 심한 대상포진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기 때문이다.


신경을 많이 쓰셔서 그런 것 같았다.



“괜찮다 어서 가라.

비행기 놓칠라”



아버님의 말씀에 무거운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가까스로 비행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제 긴장이 풀리고 실감이 났다.


우리가 정말 낯선 땅으로 가는구나.


피곤이 몰려와 깊이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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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이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이주공사와 우연히 알게 된 한국 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집을 구하고 아이들 학교 등록도 마칠 수 있었다


.


우리가 서울을 떠난 후 시부모님은 큰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끼셨다.


착하고 순한 막내아들을 시부모님은 사랑하셨다.



항상 보호가 필요한 자식이라고 생각하셨기에 이민을 보내놓고 난 뒤 마음은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셨다.



1년 뒤 시부모님도 캐나다로 짐을 싸고 오셔서 투자 이민을 신청하셨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많은 조언들을 해 주셨다


배워 가면 좋을 것들을 알려 주셨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중요했다



나는 재봉틀을 하나 구입하고 그 회사에서 제공하는 강의에 참여하였다


너무 쉽고 재미있었다


당장 옷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캐나다는 머리를 깎는 게 비싸다고 해서 미용 학원에서 속성으로 기술을 배웠다


남편은 자동차 정비와 요리를 배워 가면 좋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남편은 배우지 않았다



캐나다에 도착한 후 이민자를 위한 무료 영어 교실에 참여하여 영어도 배웠다


일단 언어가 중요해서 대학에 영어학과를 들어가려고 입학 허가까지 받았지만 내가 영어 공부를 하려고 캐나다에 온 것이 아니었고


몇 년을 학교에서 보낼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미용 학원에 등록을 했다.


어떤 사모님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자기 딸이 미국에서 의사인데 미용사가 자기 딸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하셨다.



모두가 외국 사람인 미용학원에서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아침부터


오후 3시 4시까지 배웠다.


밤에는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 두꺼운 책을 잠들기 전까지 공부했다.



미용학원은 아주 싼 값에 손님들을 받았고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먼저 학생들이 시술을 한 뒤에 원장이 마무리를 해 주었다.



원장은 미용인 협회 회장인가 부회장이라고 했다. 그는 가끔 학생들을 웃겼다.


가위로 남자 손님의 귀를 실수로 자른 것처럼 수건으로 감싸고 연기를 했다. 처음엔 큰일 났구나 했는데 장난이었다.



보통 손님들은 할머니들이었고 가끔 머리가 여자처럼 긴 거리에서 사는 남자들이 들어왔다.



어느 날 원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머리가 하얀 백인 할머니가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몹시 긴장되었다.


살살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기고 세팅 롤을 말고 또 풀고 빗질을 하고 모양을 잡고 끝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머리가 예쁘게 잘 나왔다. 할머니가 팁을 몇 불 주셨다.


자신이 뿌듯했다.


그러나 같이 배우는 여자애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 할머니가 나가면서 너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원장한테 말했어.


나는 순간 수치심을 느꼈다.


내가 긴장했던 탓에 입이 바짝 말랐을 테고 아침에 먹은 김치도 생각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할머니들은 머리에 거의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마사지하면서 감겨 드려야 시원해하고 좋아하신다고 했다



나는 몇 개 안 남은 머리가 혹시라도 빠질까 봐 조심조심 살살했었다.


초보라는 표시가 그런 거라고 했다.



원장은 머리에 상처가 난 할머니가 많다며 학생들에게 손톱을 동그랗게 깎아서 상처가 안 나게 하라고 말했었다.



내가 미용학원에 다닌다는 말을 들은 동네 교회 분들이 머리를 하러 우리 집으로 오셨다.


두 아들을 데리고 박사님이 오셨다 나는 정성껏 머리를 깎아 드렸다.


그리고 돈을 조금 받았다.



나를 믿고 소중한 머리를 맡기고 의자에 앉아 계시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내가 나의 실력을 못 믿는데 나를 믿고 앉아 계신 상황이 그랬다.


박사님은 내가 이사해서 멀리 갈 때까지 두 아들을 데리고 매달 오셨다.



스타일이 마음에 드시냐고 하면 언제나 아주 좋다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마침내 시험 날짜가 되었고 나는 필기시험에서 92점을 받았다.



원장이 다른 수강생들에게 영어를 잘 못해도 이렇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수강생들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실기 시험에 또다시 백인 할머니를 모델로 모시고 가서 합격하였다.


그리고 미용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러나 미용실을 낸다는 것은 적어도 10년 정도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미용사 자격증 비를 몇 년 동안 내다가 멈추었다.



지금 28년간 가족들의 머리를 책임졌으니 많은 돈을 절약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머리도 혼자서 깎았다.


어느 날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고 왔더니 남편이 말했다



“아니 우리는 머리가 이 꼴인데 자기만 멋있게 하고 왔네.



나는 한참 웃었다.



우리는 사업을 해야만 하는 조건부 기업이민으로 왔기 때문에 사업체를 찾고 있었다.


한 부동산을 소개받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운명이 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그를 대접했고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기도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러 사업체를 보러 다녔다.


섬에도 가보고 다운타운에도 가보고 몰에도 가보고 많은 가게를 보았다.


그런데 다운타운 빼고는 가는 곳마다 한가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 부동산이 강력 추천하는 몰 안에 자리한 프랜차이즈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를 사기로 했다.


며칠을 지켜보니 주말에만 바빴다.



부동산은 그 가게는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다.



프랜차이즈 매니저를 잘 알아서 특별히 우리에게만 소개하는 사업체니까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말했는데 그 사람이 먼저 와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너무 고마워서 더 밥을 잘해주었다.



계약을 준비 중이었는데 몰에서 우리에게 서명을 원하는 문서가 있다고 했다.


그 가게 위치가 바뀔 계획이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동산은 이것은 그냥 몰에서 형식적으로 매매할 때마다 사인을 받는 것이고 만약 옮기더라도 본점에서 다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사인을 했다.



왠지 그가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초조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처음 이민 왔을 때 도와주셨던 분에게 사업체를 찾았다고 말씀드렸다.


부동산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무슨 서업인지는 말하지 않고 시장에 나온 물건은 아니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게 좋은 물건이면 시장에 내놓고 좋은 값에 팔텐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팔겠냐고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는 부동산을 확실히 믿었기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기로 한 바로 전날 나는 운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께 우리가 사업을 찾았다고 말씀드렸고 그래서 그쪽으로 가는 길로 운전 연습을 했다.



사업체 이야기를 하는 중에 몰에서 사인을 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건 형식적으로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 했더니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당장 취소하라고 하셨다.



가게 위치를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면 인테리어 비용만 해도 엄청나다고 했다. 본점에서는 1불도 절대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위치를 옮기면 인테리어를 본점에서 원하는 대로 해야 하고 그 비용이 비싸서 감당하지 못하고 그냥 손 털고 맨손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셨다.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뭔가 석연찮았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잠을 설치고 이튿날 우리는 계약을 위해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서 변호사를 만났다.


안 되는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다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담담하게 그러면 2500불을 내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쉽게 말했다.


그 자리에서 수표를 써주고 일을 진행하고 있을 때 부동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분통이 터져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눈치를 살폈다.


변호사에게 설명을 듣고 우리를 따라 나오며 말했다.



그건 오해라며 우리가 캐나다에서 형식적으로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계속해서 말했다.


대꾸도 안 하고 집으로 왔다.



전재산을 날릴뻔하고 호랑이 입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왔다.


여러 달이 지난 후 요거트 가게는 위치가 바뀌었다.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부동산을 카페에서 봤는데 한 여자 고객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움찔했다.


“빨리 도망치세요”


그 여자분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 집에 와서 딸의 공부를 도와주는 예쁜 대학생 선생님이 계셨는데


가족 모두 이민을 왔는데 자기만 남았다고 했다.


부동산에게 사기를 당해서 우리보다 4배나 되는 전재산을 날리고 부모님이 한국으로 다시 가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밤마다 그놈을 죽이고 싶다고 하셔서 가족이 말리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나도 그 맘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작은 부동산 수수료를 받으려고 남의 전재산일지도 모르는 돈을 위험한 곳에 넣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얼마 후 고생스럽지만 그로서리가

먹고사는데 제일 나을 거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받아들여 우리는 부동산 없이 우리가 직접 가게를 찾아서 인수했다.



처음에는 영어가 서툴러 손짓 발짓으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담배 종류가 너무 많아서 담배 이름도 몰라 손님이 위아래로 손짓해 주고 우리가 맞히기라도 하면 “예이” 하면서 박수를 쳤다.



들어올 땐 “하이” 나갈 땐 “바이” 그리고 미소,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몇 년을 했는데 점점 눈에 보이는 게 하나 둘 생겼다.



계산대 앞에서 열심히 돈을 계산하는 동안 뒤편에서는 도둑을 맞았다.



비싼 물건이 잘 팔린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착각이었다.


우리나 직원 누구도 그 물건을 판 적이 없는데 비싼 면도기가 자꾸 없어졌다.



드디어 그중에 한 도둑을 잡았다.


그는 주머니마다 불룩하게 뭔가를 터지게 넣었고 티셔츠 안에도 넣어서


배가 불룩하였다.


계산하려고 줄을 섰는데 음료수 한 병만 들고 있었다.

그의 차례가 가까워 오자 심장이 쿵쿵거렸다.



내가 주머니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머리카락을 박박 밀어버린 머리와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그러나 끝까지 안 보여주고


음료수도 놓고 도망치듯 나갔다.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에 다시 안 오기만 바랬다.


.


어떤 아이는 판매대에 바짝 붙어 얼굴은 우리를 보면서 손은 따로 움직였다.


살 거라고 말하면 가게 안에서는 그만이었고 그냥 나가도 어쩌지 못했다.


약도, 물건도, 심지어는 상자째 사라지기도 했다.



가게가 마을 한가운데 있어서 손님들이 모두 동네 사람들이었다.


한 손님은 외상으로 사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박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도 들려줬고 친구가 되기도 했다.



학생이 일하던 날에는 강도가 한 달에 세 번이나 들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조건


“달라는 대로 다 주자” 했다.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강도가 들면 911에 신고를 해서 경찰이 오고, 사건 번호를 받고, 도둑맞은 물건을 계산해서 보험을 청구했다.



그런 일이 잦으면 보험료가 올라가거나 보험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안에서 손님을 보고 벨을 눌러 문을 열어주는 식으로 바꾸고 cctv도 달았다.


다행히 문을 그렇게 바꾸고 강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일하는 직원이 돈을 훔치는 게 cctv에 보였다.



직원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럼 해고시키세요”


당당하게 말했다.


우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믿을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사람을 구한 후에 교육을 시키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일단 우리가 보고 있음을 알았으니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얼마 후 그 직원은 교통사고가 나서 어차피 그만두었다.



365일 중 1월 1일 하루만 쉬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렌트비랑 비용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인건비 정도였다. 매일매일 신경 쓸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다.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이 늘어나며 아파트 렌트 구하기가 힘들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우연히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이곳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겠다”



아파트를 사기 시작했다.


돈은 없었지만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아파트 몇 채를 샀다.


아파트값이 정말 쌌다.



가게를 운영하니까 이 은행 저 은행에서 서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내 돈은 조금만 넣고 모두 은행돈으로 샀다.



번 사인을 한 뒤 남편은 빚이 무섭다며 혼자 가서 사인하라고 했지만 설득을 시켰다.


나는 확신이 있었다.



렌트비를 받으면 모든 비용이 커버되고도 조금 남았다.


원금은 계속 줄어들고 시간만 지나면 우리 아파트가 되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는 건 보너스다.



아파트 가격도 오르기 시작하고 렌트를 내놓으면 여러 명이 몰려왔다.


그제야 처음으로 이민의 땅에서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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