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구조를 바꾸는 인간

우라는 같은 지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나?

by 이수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반복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결국 비슷한 결론으로 돌아오는 경험. 이미 알고 있음에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결국 다시 그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반복은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의 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탓한다. 왜 또 이렇게 되었는지, 왜 아직도 바뀌지 못했는지, 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지.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우리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어떤 상황에서 설명해야 하는 사람으로, 어떤 관계에서는 먼저 맞춰주는 사람으로, 어떤 갈등에서는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으로.

그 선택들은 처음에는 의식적인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익숙해질수록 더 이상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별다른 저항 없이, 마치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반복한다.

이 익숙한 방식, 반복되는 반응의 형태를 우리는 ‘자동성’이라 부를 수 있다. 자동성은 단순한 습관과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의 판단 이전에 작동하는 흐름이고, 상황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하나의 구조다. 그래서 우리는 알면서도 반복한다. 알고 있음에도,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반복은 여기서 만들어진다.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자동성으로 굳어진 구조 안에서

우리가 다시 작동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구조는 혼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환경 속에 있고,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다. 특정한 사람 앞에서 더 많이 설명하게 되고, 어떤 관계에서는 더 쉽게 양보하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더 빠르게 감정이 올라온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라기보다, 그 관계와 상황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우리의 방식이 맞물리며 만들어진 결과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관계에서는 안정적이고, 어떤 관계에서는 반복적으로 무너진다.


그래서 반복은 나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반복은 어떤 특성을 가진 내가 어떤 구조 속에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된다. 이 반복을 끊을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는 하지 않겠다고, 다르게 행동하겠다고, 다시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반복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뀌려고 하지만, 여전히 같은 구조 안에서 움직이려 한다. 그래서 변화는 시작되지만, 반복은 계속 유지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친다. 변하려 했지만 돌아왔고, 노력했지만 다시 반복되었고, 결국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그 질문은 냉소로 변한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 내리기 위해 이 과정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반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른 방향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반복을 끊는 대신,

반복을 다루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반복을 없애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반복 속에서 개입할 지점을 찾는 것은 가능하다. 자동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그 흐름 안에 작은 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갈등이 생기면 항상 먼저 설명하려 한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혹은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서 자신의 입장을 계속해서 설명한다. 그 설명은 처음에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면서 하나의 방식이 되었고,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는 안다. 지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설명하게 된다.

이것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자동성의 작동이다.

그렇다면 이 반복을 끊을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은 가능하다.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명의 양을 줄이는 것. 바로 반응하지 않고 조금 늦추는 것. 모든 것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일부는 남겨두는 것. 이 작은 차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변화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조 안에서는 다른 흐름을 만든다. 이것이 반복에 대한 개입이다.



우리는 반복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조정과 유지를 반복한다.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철학의 핵심이다. 우리는 더 이상 반복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반복 속에서 어디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본다.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지, 어디에서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어디에서 이전과 다른 선택을 끼워 넣을 수 있는지. 이 개입은 크지 않고 오히려 작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반복은 점진적으로 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구조 안에서 조금씩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거의 차이가 없고, 여전히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들이 쌓이면서

반복의 결이 바뀐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경험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한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이동이다. 그리고 이 이동은 다시 우리를 선택의 자리로 데려온다. 자동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위에 선택을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그저 반복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반복 속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존재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의 방향을 바꾼다.


우리는 이제 안다. 반복은 우리의 결함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방식의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그 반복은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정될 수 있는 흐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복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반복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선택을 시작한다.


당신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정말 피해야 할 반복인가,

아니면 아직 조정되지 않은 반복인가. 그리고 지금 그 반복 속에서, 당신은 어디에 하나의 선택을 놓을 수 있는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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