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이라도 (2)

태국,푸껫(푸켓)

by 에트바스

겨우 오픈워터 자격증을 딴 애송이의 입장에서, 스쿠버다이빙의 핵심은 감히 숨쉬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겨우 익히고 나면 어느새 삭-삭- 하는 숨소리만 남는다. 우리는 3박 4일 내내 숨 쉬는 법을 배웠는데, 그것은 죽지 않는 방법과도 같은 거였다. 거대해진 숨소리가 온몸을 감싸면, 눈앞에는 전에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카오산로드에서 온 새벽을 보내자 어느새 해가 빼꼼히 나와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갈 다음 목적지는 푸껫. 9박 10일간 3개국을 여행하기로 한 터라 제법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애의 항공권 예약 솜씨가 아주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비행기 박사다. 그 무렵 그 애의 취미는 웹사이트에서 비행기를 구경하는 일이었는데, 그 애가 알려준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전 세계의 비행기가 어느 상공에서 어떤 방향으로 날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애는 값싸고 유용한 항공권 찾는 일에도 아주 능숙했기 때문에 나는 그 애를 비행기 박사라고 불렀다. 그와 친하게 된 뒤로, 자주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의 역할은 꽤 분명하게 나누어졌다. 비행기 박사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면, 나는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기와 회계를 담당했다. 적당히 예산을 짜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쭉 적은 다음, 새로 필요한 물건은 주문해두는 식이다. 물론 다녀와서의 정산도 내 몫이다.


여행 준비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비행기 박사는 우리가 탈 비행기가 어느 제조사가 만든 어떤 기종의 비행기 인지도 알려주었다. 이륙하기 전 탑승장에서 비행기를 구경하며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것도 매번 잊지 않는다.


내가

“아- 그럼 이것도 보잉이야?” 하고 물으면,


그 애는 단번에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는 체 하다가 몇 번이나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큰 비행기인지 작은 비행기인지 하는 심심한 질문만 되묻게 되었다. 한 날, 그 애는 언젠가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른 공부를 하는 처지이지만, 결심만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할 때마다 그 애는 너무 나이 들어버리면 어렵지 않을까? 하고 걱정의 말들을 덧붙이곤 했다. 비행기 박사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의 푸껫은 온통 스쿠버다이빙으로 채워졌다. 산소통을 메고 바닷속을 구경하는 그 다이빙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영에는 재능이 없지만, 지난 여행에서 체험다이빙으로 바다 구경하는 맛을 본 후로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지만, 기왕이면 배우기 편하고 이국적인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생각에 푸껫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 유속이 세서 초보자에게는 좀 어렵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도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물속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 행여 다이버들에게 산소통을 산소통이라고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정확히는 산소통이 아니라 공기로 가득 찬 공기통이기 때문이다.


* 체험다이빙은 라이선스(자격증)가 없는 일반인 다이버를 위한 다이빙 프로그램 중 하나다. 라이선스가 있는 다이버의 다이빙은 펀 다이빙이라고 부른다.



스쿠버다이빙은 오픈워터를 시작해 어드밴스드, 레스큐, 강사과정 등의 라이선스를 딸 수 있는 과정이 있는데 우리는 가장 초급 과정인 오픈워터 취득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푸껫에는 꽤 많은 다이빙센터가 있는데, 교육과정과 비용은 모두 비슷했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주는지 확인하며 골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 강사가 있는지였다.


체험다이빙을 하던 날, 우리 일행은 모두가 첫 경험이라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다이빙센터에서는 수영도 영어도 전혀 못해도 상관없다고 몇 번이나 우리를 안심시켰지만, 다이빙센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에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경험은 정말 짜릿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활동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푸껫에 도착하자 까맣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여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적당히 그을린 건강한 피부, 작은 키에 깡말랐지만 몸도 표정도 단단해 보이는 한국인이었다. 배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하는 동안 어떻게 다이빙 강사가 되어 이렇게 태국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다이빙이 좋아 강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면서, 푸껫에 오기 전에는 세계 곳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강사 활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밥벌이할 수 있는 삶이라니!)


그는 언젠가 크루즈를 타며 다이빙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건 아마 밤에 바다생물을 관찰하는 나이트 다이빙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건 정말 환상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단단히 빠져들었다. 언젠가 가보리라 꿈꿨던 갈라파고스 제도가 떠올랐다. 그곳에 머물며 밤에 다이빙하는 기분은 어떨까? 서울의 빌딩 숲 야경도 아름답지만, 갈라파고스에서는 전혀 다른 미관이 펼쳐질 것이다. 밤은 그 어느 곳보다 새까맣게 물들 테고, 까만 밤만큼 별이 수없이 반짝일 거였다. 그 밤, 그 바닷속에서 대체 어떤 풍경과 마주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푸껫에 머무는 동안 날마다 물속에서 숨쉬기를 연습하며 남국의 바다를 유영했다. 오후 2-3시쯤 하루 일정이 끝나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저녁거리를 찾아다녔다. 동남아 여행에서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매일 마사지도 빼놓지 않았다. 노곤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는 일도 잊을 수 없었다. 마사지로 곤한 몸을 풀어내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다음날이면 몸살 기운에 우리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 애와 나는 아직 완전히 친해지지는 못한 때라 적당히 내외하는 사이였으나, 배를 타는 동안 멀미를 이유로 동공이 풀린 채로 앉아있기, 몸살에 걸려 배 아무데서나 몸져눕기, 두세 번씩 바닷속을 오가며 초췌해진 얼굴에 엉겨 붙은 머리칼을 더한 얼굴로 마주 보기 등을 하는 동안 그 애가 이전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게 좋은 경험인지 나쁜 경험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된 애인, 혹은 얼마 안 가 애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감히 조언을 건넬 것이다. 성급히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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