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그냥 아는 사람이었다.

추신. 나는 몰랐어. 그때부터 너의 시선 속에는 다른 마음이 있었다는걸.

by 그 소년

중학교 2학년, 나는 그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떠들고,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돌아다니고, 체육 시간엔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 방송부실이 있는 복도는 가끔 지나가는 길이었다. 체육관 옆이라 체육 시간 전후로 지나가기도 했고, 친구가 그쪽 화장실을 가자고 하면 따라가기도 했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자료실에 갈 때도 그 복도를 거쳐야 했다. 그냥, 학교의 복도였다. 그런데 그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방송부실 문이 열려 있으면 안을 한 번 쳐다보게 됐다. 호기심이었다. 방송부라는 게 뭔가 특별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 늘 같은 남학생이 있었다.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조용해 보이는 아이였다. 기계 앞에 앉아 뭔가를 만지작거리거나,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거나. 가끔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아이는 화들짝 놀란 듯 시선을 피했다. 마치 들키면 안 되는 걸 하고 있었다는 듯이.


'뭐지?'


처음엔 그냥 웃겼다. 왜 저렇게 놀라는 거지? 나한테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별생각 없이.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서,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방송부실 안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아무도 안 보고 있었지만, 분명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친구와 웃으며 복도를 걷다가 문득 창문 너머로 방송부실 쪽을 봤다. 그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눈이 마주쳤고, 그 아이는 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저 애 알아?"

친구가 물었다.


"아니, 모르는데."

"방송부 애 아니야? 맨날 저기 있던데."

"응, 그런가 봐. 근데 왜?"

"아니, 그냥. 너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착각이겠지."


하지만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방송부실 앞 복도를 지나갈 때면 괜히 의식이 됐다.


'또 보고 있으려나?'


그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방송부실 쪽을 보게 됐다.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지나갔고, 문이 열려 있으면 안을 슬쩍 봤다. 그 아이는 늘 거기 있었다. 그리고 늘, 나를 보고 있다가 시선을 피했다.


'왜 저러는 거지?'


귀찮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이상했다.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신경 쓰이는 정도?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행정실에 다녀오는 길이었고, 나는 혼자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 복도는 점심시간이면 유난히 조용했다. 복도 끝에서 방송부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가 나왔다. 우리는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피할 곳이 없었다. 좁은 복도에 우리 둘뿐이었고, 지나가려면 서로 마주쳐야 했다. 나는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 아이는... 얼어붙어 있었다.


'뭐야, 진짜.'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서.


"아."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그 아이는 움찔했다.


"방송부 맞지?"


그래, 이참에 물어보자. 왜 맨날 나를 쳐다보는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맨날 여기 있길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사실 그 뒤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왜 맨날 나를 보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괜히 민망해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 아이가 너무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 더 이상 말을 걸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갈 때 방송부실 안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이제는 피하지 않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냥 아는 사람이 된 거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달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 너 요즘 방송부 애한테 인사하더라?"

"응, 그냥 아는 사람이야."

"어떻게 알게 됐는데?"

"그냥... 복도에서 마주쳐서."


친구들은 키득거렸다.


"야,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인사 한 번 했다고."

"아니, 근데 맨날 너 쳐다본대. 우리 반 애들도 다 안다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들 알고 있었던 거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조금 불편했다. 그냥 아는 사람인데, 왜 자꾸 이상하게 만드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애가 정말 날 좋아하는 건가?'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 아이와 마주치는 게 어색해졌다. 복도를 지나갈 때 일부러 친구들과 떠들며 지나갔고, 방송부실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신경이 쓰였다.


'아, 몰라. 그냥 신경 쓰지 말자.'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 아이는 그냥, 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특별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뭔가는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몰랐다.

그 조용한 시선 하나가

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