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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May 11. 2024

4. 바람 맞은 뒤의 청국장

방향을 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에 식용 곤충 농가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농가에 사정이 생겨 방문이 취소됐다. 그러니까, 바람 맞았다. 꼭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사정이 생겨 나중으로 미뤄야겠다고. 농가들은 바쁘다. 특히 나는 농번기에 농사를 짓는 영상들을 찍고 싶지만 그런 때에는 더더욱 손님을 맞이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회사 측에서도 당장 그런 영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정으로 내가 찍으려고 했던 포멧의 영상을 미루게 되었다.


그럼 이곳에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남아 있는가. 재계약도 2주 정도를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흐지부지되고 싶지는 않다. 하늘이 엉성해도 솟아오를 구멍은 있는 법. 다른 할 일을 찾기로 했다. 이왕 내가 농가에 가서 "인터뷰" 영상을 찍는데, 소식지를 발간할 때 쓸 인터뷰 내용도 내가 만드는 건 어떨까 싶다. 내가 찍고 싶은 생산 과정 영상과는 조금 멀어지지만 어찌됐든 농부들은 찍을 수 있지 않은가. 일단 앞에 있는 일만 쳐낸 다음 바로 건의해보리라.


오늘은 청국장을 만드는 농가(?)에 방문했다. 농산물을 생산하지 않기에 농가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지역에서 만드는 콩으로 지역에서 청국장 등을 만드니 로컬푸드 맞다. 이곳은 청국장,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만드는 농가(?)이다. 우리나라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곤 내가 아는 제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프라인 대형 마트를 보면 거의 보면 대기업 제품이다. 아마 나는 요리를 하지 않아 발벗고 찾으려 하진 않는데, 그래서 대형 마트에서 보이는 것만 알고 있는 듯하다.




청국장 농가는 직접 키운 콩으로 청국장과 된장 등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듯하다. 나는 내 지역에서 나온 청국장 등이 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일부러 찾아보지만서도 일부러 숨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지경이다.


장인 분(농부님이 아닌 장인이라 칭하겠다.)은 이 청국장과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직접 원료를 만드는 것부터,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데에 말이다. 자세하게는 설명해주셨지만 내가 알아들을 순 없었다. 만드는 과정을 아예 모르니 그 말이 어떤 단계에서 무엇을 하는 것을 가르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가볍게 먹는 것 같은 음식조차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다니. 다음 번에 콩을 수확하거나 장을 담글 때 다시 불러달라고 말씀드렸다.


처음 방문하기 전에 조금 긴장했었다. 그분이 어떤 성격이고 분위기는 어떨지,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리실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예 정보를 모르고 찾아갔고 그분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니 (이때까지만 해도 질문지조차 만들어서 보내드리지 않았다.) 막막하셨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쁘다고까지 하셨으니, 내가 시간을 빼앗는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편안했다. 도착하자마자 장인 분이 직접 만드신 복분자를 먹었다. 장인의 남편 분께서도 먼저 다가오셔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제품을 만드는 곳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부터, 제조하는 공간을 확장한다는 이야기, 후계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장인 분이 다른 일을 보고 있을 동안 말동무가 되어 주셨다. 장인 분이 할 일을 끝마친 후, 장인 분과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일단 인터뷰를 할 아늑한(?) 장소가 필요했다. 지금의 인터뷰 대상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장을 담그시니 당연히 장독대 앞 아니겠는가. 하우스 안엔 수십 개의 장독대가 있었고 하우스 안인 덕분에 천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주변은 파랗게 빛이 났다. 분위기는 좋고.


장인 분의 남편 분이 태양 볕이 강렬한 곳을 추천해주셨다. 영상이니만큼 햇볕이 좋아야 한다고. 장인 분은 그건 직원 분이 알아서 할 거라고, 전문가가 알아서 하니 방해 말라고 하셨는데... 죄송해요. 저도 처음인지라. 추천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결국 장인 분께서 골라주신 그 장소는 피해 그늘진 곳을 정했다. 인터뷰 내내 햇볕에서 있어야 하니 말이다.


또, 남편께선 서있으면 불편하니 내 의자도 가져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하하, 좋은 대접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이번엔 영상의 결과물을 떠나서 10점 만점에 거의 10점이다. 장인 분 또한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질문에 성심성의껏 응답해주셨다.





이번에도 사전에 농가와 직접적인 컨택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대신에 이제부터는 사전 질문지를 방문하기 이틀 전쯤부터 드릴 예정이다. 원래는 인터뷰에 힘을 쏟을 생각보다는, 내가 찍고 싶은 1인칭 시점의 생산 과정 영상에 한 눈을 팔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할 일도 보이겠다, 소식지도 내가 맡게 된다면 여기에 더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나는 질문지를 들고 가면 그대로 읽게 되서 일부러 질문지를 작성하지 않았다.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나와의 느낌에 따라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으면 했다. 이렇게 하니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막상 영상이나 인터뷰지를 만들 때보면 꼭 질문해야 했던 내용들이 한 두개씩 빠져있었다.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다 그냥 큰 틀만 잡아놓는 방향을 택했다. 질문의 목적에 따라 분류를 하여 중요한 카테고리는 좀 더 세세하게 질문을 설정했다.


전에는 내 질문 자체를 불신했던 탓도 있다. 어차피 내가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면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물흐르듯이, 질문의 요지와는 상관없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해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맞다. 나는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더 좋아한다. 오히려 즐거운 일은 예기치 못한 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영상을 찍는 목적은 그게 아니다.


이렇게 질문을 건내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어떻게 하면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도 고심했다. 괜히 내가 준비해온 질문에 집중하느라 그 전에 이야기 나눴던 내용과는 다른, 뚱딴지 같은 질문들을 하면 이상하지 않겠나. 만약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라고 했는데 갑자기 바로 "향후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아마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리라.


여하튼 이번에는 좋은 기분으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준비를 제법 해온 덕분일까, 아니면 편안하게 하는 스킬이 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인터뷰이가 인터뷰에 진심이어서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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