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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Jul 01. 2024

항상 달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영화 <라라랜드> 서평


내용:

!스포일러 주의

미아(엠마스톤)는 배우를 꿈꾸는 배우지망생이다. 카페에서 일을 하며 기회마다 배우 오디션을 보고 있다. 세바스찬(라이언고슬링)은 자신만의 재즈클럽을 열고 싶은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이 둘의 첫 이야기는 아름답지는 않았다. 세바스찬은 재수 없는 놈이다. 그가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에 맞춰 가지 않는 미아를 향해 경적을 울린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미아는 제법 그가 끌렸나보다. 그 첫 만남은 그 둘은 알지 못했다. 그 재수없는 놈이 세바스찬이며, 도로에서 멈춘 비매너가 미아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아는 또 다른 우연한 파티에서 키보드를 치는 그에게 선의의(?) 작업을 건다. 세바스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파티가 끝난 후, 밝은 겨울 날 밤 그들은 야경을 관객 삼아 춤을 췄다. 그 후로 그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뭐, 그런 사이가 된 듯하다. 달달한 봄이다.


그들은 같은 꿈을 꾼다.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멋진 재즈클럽을 열고, 미아는 그곳에서 1인 연기를 하는 꿈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키이스가 세바스찬에게 밴드의 피아니스트를 제안한다. 키이스는 재즈를 현대화하려는 세바스찬의 옛 친구로, 재즈 밴드 "맴버스"의 수장이다. 키이스는 세바스찬과 재즈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른 듯 보인다. 평소 재즈의 전통에 대해 고집이 있는 세바스찬이었지만 미아의 조언에 따라 이 제안을 받아드린다. 하지만 이게 발단이었다. 여름은 짧았다.


짧은 여름이 지나고,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세바스찬은 밴드를 따라 순회연주를 하게 된다. 반면 미아는 그가 항상 곁에서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갔음 싶었던 것 같다. 첫 순회 공연을 앞두고 미아와 세바스찬은 싸우게 된다. 서로의 꿈이었던 재즈클럽은 세바스찬의 눈에서 벗어나고, 미아는 그들의 꿈에서 멀어지는 세바스찬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고 다음 날, 그들의 관계는 정점을 찍는다. 그녀의 꿈이었던 1인 연극에 세바스찬은 밴드의 스케줄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그녀의 1인 연극에는 지인 이외 아무도 오지 않았다. 스태프조차 그녀의 연기에 비아냥 댔다. 세바스찬이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녀의 연극부터, 연극에 대한 그녀의 마음까지.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녀는 세바스찬의 탓을 하기 보단 자기에게 재능이 없다며 "그만"을 외친다.


이제는 모든 게 끝났다. 미아는 이제 그녀의 꿈이 싫다.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그의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녀만이 끝났다고 되는 건 아닌 듯 싶다. 세바스찬은 우연히 미아의 캐스팅 면접 전화를 받게 된다. 세바스찬은 캐스팅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그녀를 찾아낸다. 캐스팅 담당관은 그날 미아의 연극에서 그의 연극을 보고 캐스팅 제의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캐스팅 면접을 본 후, 성공하게 된다. 세바스찬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 둘은 각자의 꿈을 위해 헤어진다.


5년이 지났다. 또 다른 겨울이 찾아왔다. 미아는 다른 이와 결혼을 했다. 딸도 있다. 또한 성공적인 배우 활동을 쭉 이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 세바스찬은 밴드를 마친 후 자신의 꿈인 재즈클럽을 오픈하려고 한다. 드디어 미아, 세바스찬 각각은 꿈을 이룬 것 같다. 하지만 그 둘은 남남이 되었다. 각자의 평온한 삶이 계속되는 어느 날, 미아와 그의 남편은 약속에 가기 전 어느 재즈 카페에 들르게 된다. 그 카페의 이름은 "셉스(seb's)". 세바스찬과 그녀가 꿈을 꾸던 날, 그녀가 만들어준 "seb's"라는 로고가 보인다.  



에필로그:


도대체 왜 내가 덩달아 기분이 춤을 추는지 모르겠다. 내용 자체가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내가 직접 경험해본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감정적으로 둔탁한 나에게도 오랜만에 월광이 드리운 것 같다.


만약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둘은 항상 행복했을까 아니면, 행복이란 것과 그 둘은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영화의 마지막은 그 둘의 해피앤딩을 꿈으로 그려진다. 꼭 미국의 마블(MCU) 드라마 "완다비전" 같다. 완다는 고아인 자신이 비전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꿈을 꾼다. 완다는 이를 실제화 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조종하여 하나의 마을을 만든다. 하지만, 이는 완다의 능력으로 만든 허상이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렇게 행복은 항상 꿈으로 묘사되며, 현실엔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왜 반대되는 것이었을까. 영화에선 꿈과 사랑은 결코 함께 이뤄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운명인 꿈과 사랑이 있을까. 인연조차 이를 "붙잡을까, 아니면 붙잡지 않을까"라는 선택지가 따라 붙는다. 만남은 정말 인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는 붙잡지 않는다면 모른다. 많은 경우 인연은 그저 우연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붙잡은 모든 인연이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라라랜드는 "완다비전"과 같은 결말일 수도, 완전히 다른 결말일 수도 있다. 인연이었던 세바스찬은 결국 운명은 아니었다. 반면 배우라는 꿈은 미아에게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같은 결말, 이룬 꿈은 다른 결말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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