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가 되기는 싫지만 조언을 주입하고 싶을 때,
나는 술집에서 홀서빙을 하는 알바생(?)이다. 벌써 나이는 20대 끝을 달리고 있지만, 많은 손님이 내게 학생이라고 부르니 아직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5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현재는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려고 할 때 신분증을 달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서로 좋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이렇게 덕담까지 하사하다니... 이 경우처럼 대부분의 손님들은 친절하며 좋은 기억이 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무례함으로 무장하거나, 짜증을 기본적으로 탑재한 사람들도 아주 가끔은 있다. 사흘 전, 벨을 누른 방향으로 가자마자 내게 카드를 툭 건내며 "야 계산"이라고 한 손님이 있었다.
무의식 중에 의도하지 않은 불쾌함이 쏟아졌다. 과거엔 이를 가지고 하루 동안 씨름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감정에 물드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에게나 같은 서비스를 주는 것이 사명인 홀서빙 직원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의 서비스는 일관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감정에 물들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다. 내게 그 불쾌함이 지속되는 것은 여러모로 내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언짢은 느낌이 지속되면 그 날 하루의 일진이 사나운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손님들의 몸짓, 행동이 자꾸 거슬리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고, 나를 경멸하는 표정에 어쩔 줄 모른다. 알고 보니, 냅킨이 부족해서 다시 갖다 달라는 눈빛이었다.
여기서는 나쁜 이들이 내 기분을 나쁘게 할 때 쓸 수 있는 2가지의 전법을 설명하겠다. 이 전법으로 타인의 행동이 바뀔 수도, 또 내 기분이 조금은 풀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전법은 궁극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항상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다. 나쁜 자극을 주는 이를 바꾸는 것도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이 전법은 나의 감정에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또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미운아이 떡하나 더 주는 전법
일단 2가지 전법을 설명하기 앞서 이 둘의 공통적인 특징을 설명하겠다. 그것은 이는 타인에게 자신의 행동을 전가하는, 일종의 던지기 기법이다.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니 내가 그 감정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부정적인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무례함이 내게 영향을 주게 하지 말고, 한번 그에게 무례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던져보자.
첫 번째, 내가 다른 손님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것과 같이 평상시대로 그 이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방법이다. 이름하여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기 전법이다. 나는 이 전법으로 무례한 이의 행동을 바꾼 적이 여럿 있다. 보통 그의 무례함을 견디고 반대로 공손함으로 되받아치면 그 이는 자신이 무례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부끄러워하며 공손한 태도로 바뀐다. 반대되는 거울 전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의 전법으로 모든 사람의 행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간혹은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래도 나름 좋은 결과로 바뀐 경우는 꽤 있다. 나의 적극적인 친절함이 그를 굴복시킨 적도 있었다. 처음엔 반말로 이것저것 시켰지만, 그 이는 결국 내게 "참 예의가 바라"라고 한 마디 던졌다. 비록 그 이의 행동을 바꾸지 못했지만, 결국은 그가 나와 같이 이심전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도 나쁜 의도로 한 것은 아니니 이 정도면 만족한다.
그렇지만 이는 어느 정도의 미덕을 갖춘 이에게만 통하는 방법이다. 내가 더욱 공손해질수록 더욱 무례해지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그런 이를 상대하기 위한 방법도 있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이름하여 "아...예.." 전법이다.
"아...예..." 전법
바야흐로 2주 전, 오자마나 내가 안내해드린 자리에 불만을 가진 손님이 있었다. 손님은 사람도 없는데 더 넓은 자리를 앉으면 왜 안 되냐고 했고, 내가 여러 번 설명드렸지만 결국은 본인이 앉겠다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웬만하면 좋고 넓은 자리를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여건상 손님 수의 맞는 자리를 안내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양해를 구하지만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분의 경우가 그랬다.
"저 손님은 예전에도 자리 때문에 싸움이 났었으니 그냥 저기 앉혀드려."
사장님께서도 아는 손님이었나보다. 이는 내가 말한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전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 이는 내가 자리에 대해 한 번의 거절을 한 터라 그런지 그 이후에도 나를 괴롭혔다.
그이는 자리를 앉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는데, 나는 그가 언제 부르나 예의 주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손님이 왔으면 주문 받으러 와 봐야지 왜 안 오고 있냐"고 하는 것 아닌가. 음식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릴 수도 있기에 벨을 누르시거나 직접 불러야만 오고 있다고 했으나 그 이는, "서비스직을 하면서도 그렇게 눈치 없게 있으면 어떡하냐, 그렇게 눈치 없으면 사장한테 혼난다"며 나를 꾸짖었다. 비로소 나는 그 이가 내 마지막 전법을 써야 할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나는 줄곧 "아...예..." 이상으로 그 이에게 다가가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그 이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먹고 갔다.
이렇게 나는 다른 이의 무례함을 그에게 던지려고 하고 있다. 내가 그의 무례함에 영향을 받아 내 감정이나 행동에도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미쳐서다. 잘못한 것은 그인데 왜 내가 그렇게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분명 다른 사람들도 나와는 다른 각양각색의 방법이 있을 테다.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례함을 무례함으로 받아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를 응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오히려 화만 부추길 뿐이다. 대신, 그 사람의 무례함을 그에게 긍정으로 받아쳐라. 그리고 받아쳤으면 그 무례함을 더 이상 생각 말자. 그의 일방적인 행동이 나를 어찌할 수 없도록 되받아 치고 그 무례한 몫을 그에게 던졌다고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