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 속에 다가온 조용한 독립
생일이 되었다.
생일 때마다 항상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사실 나 스스로는 언젠가부터, 아마도 서른 중반 이후쯤부터, 생일을 그리 챙기는 편이 아니다.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하루인데 괜히 유난을 부리고 싶지 않아서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싶다.
생일 아침에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고 화내시고, 무언가를 오히려 바라시는 분들.
헌신적으로 나를 키워주신 건 맞지만, 뼛속까지 유교 정신이 박힌 시골 노인들을 나는 점점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몇 번의 사건 이후로 부모님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이번에도 생일 아침이 되었고, 의무감과 후환이 두려운 마음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낳아주신 감사함보다는 분명 저러한 감정이 더 컸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바쁘신가 보다 하고 나도 이런저런 일정을 보냈는데 오후까지 콜백이 없었다.
그래서 오후에 다시 양쪽 부모님과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으셨다.
최근에 외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신 상태라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근처에 사시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 왈,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으시고 엄마와도 한두 시간 전에 통화를 했다고 했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서 그냥 카톡으로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전화했냐고 묻길래 생일이라서 했다고 하니, 본인들은 찜질방에 왔다면서 또 왜 전화했냐고 물으셨다.
평소에도 귀가 밝은 편은 아니어서 대화가 원활하진 않았는데, 카톡도 보냈고 생일이라고 말했는데도 이상한 대답을 하시니 좀 짜증이 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뭔가 이상한 촉을 느꼈는지, 본인이 엄마에게 한번 전화해 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고부간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그 점은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저녁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으니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고, 아내가 먼저 받았다.
사실은 전화를 별로 받고 싶지 않아서 아내에게 받게 한 것이다. 옆에서 통화를 들으니, 내 생일인 줄 잊어버렸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뒤늦은 어색한 생일 축하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내 생일은 삼일절이라 사실 웬만하면 잊기가 힘들다.
그런데 내 생일을 잊으셨다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그분들과 벽을 쌓듯이 그분들도 나와 벽을 쌓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 생일을 잊을 정도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신 건가 싶기도 했다.
두 번째는 여러 이유로 아직은 그런 때가 아님을 나름 확신해서, 첫 번째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생일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처갓집에서도 받는 축하를 친정에서 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니 좀 섭섭했나 보다.
게다가 아예 잊고 있었다고 하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또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도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분들에게서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된 것 같다는 생각.
유교 사상에 빠져 말도 안 되는 효와 복종을 강요하던 분들이, 이제는 나를 조금 내려놓고 본인들의 삶에 집중해 가시는 것 같았다.
그게 서운하기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줄어든다면, 나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분들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의무감이나 죄책감이 아닌,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어쩌면 그게 우리 사이에 가능한 가장 건강한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를 불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멈칫하게 된다.
부모님과 기나긴 서사와 사건들이 있고,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서도 좀 더 가벼운 마음과 객관적인 태도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왠지 나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 주저가 된다.
다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고,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가 있다.
모든 부모 자식 관계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일 때도 있다.
이런 가정도 있구나, 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생일이라는 하루가 지나고, 내 나이는 한 살 더 늘었다.
나를 옭아매던 감정과 부담이 한 꺼풀 벗겨지는 기분이다.
축하받지 못한 생일이 오히려 나에게 작은 자유를 선물해 준 셈이랄까. 씁쓸하지만, 그래서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녁에 아내가 차려준 미역국을 먹으며 아이들의 축하 노래를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또 평범한 하루가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