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을 놓친 대가
나는 다행히, 여태까지 총에 맞을 뻔한 순간은 여러 번 있었어도
실제로 맞은 적은 없다.칼에 찔린 적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기 때문에 응급실에 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County Public Health Outreach Center다.
겉으로 보면 비교적 평화로운 건물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접수를 하고,
대기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직원들은 조용히 이름을 부른다.
병원처럼 긴급한 분위기도 아니고,
내가 다운타운과 여러 우범지대에서 겪어 온 현장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굳이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곳들이 100이라면 여기는 1처럼 느껴질 만큼 조용한 곳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이곳을
조금은 편한 곳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로 와서 나름 편하게 일한다고 느끼는 사이,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게 하나 있었다.
이곳은 조용해 보여도
결코 가벼운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각국에서 온 난민들부터
저소득층 주민들까지,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든다.
누군가는 건강 검진을 받으러 오고,
누군가는 상담을 받으러 오고,
누군가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채로 이곳을 찾는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실제로는 수많은 접촉이 이루어지고,
그만큼 감염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스크도 있었다.
장갑도 있었다.
지켜야 할 규칙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몰라서 못 지킨 게 아니라,
알면서도 느슨해졌다는 데 있었다.
Rookie
(자막: 신참)
시절에는 오히려 더 철저했다.
순찰을 돌 때도,
사람을 상대할 때도,
현장에 들어갈 때도
기본을 절대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경찰 일이라는 건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특히 몸수색을 할 때나
가방수색을 할 때는 더 그렇다.
손을 넣는 순간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숨겨진 바늘,
깨진 유리,
뾰족한 금속 조각.
그 한 번의 방심으로
간염 같은 혈액매개 감염은 물론,
여러 감염성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Rookie(신참) 시절에는
그걸 몸으로 외우다시피 했다.
손을 넣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만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접촉이 생기면 바로 정리하는 습관이 그때는 몸에 배어 있었다.
그게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잠깐 잊고 있었던 현실이 있다.
얼마 전,
카운티 잔디 둔턱을 차로 들이받고 도주했던 무식한 모질이 놈들을
현장에서 붙잡은 적이 있었다.
그런 검거는 영화처럼 깔끔하지 않다.
몸이 부딪히고,
바닥에서 뒹굴고,
고함이 오가고,
서로 밀고 당기고,
끝까지 버티는 몸을 억지로 눌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침과 땀, 체액이 얼굴에 튀기도 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 검거할 때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취약해진다.
그때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고 나면,
얼마나 많은 접촉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을 더 철저히 지키려고 한다.
마스크,
장갑,
손 씻기,
그리고 몸에 묻은 것들을 바로 처리하는 습관.
그건 괜히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이상하게 변한다.
특히 이번에 내가 그랬다.
익숙해지고,
반복되고,
큰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쌓이면
경계는 조금씩 닳아간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잠깐인데 뭐.”
“맨날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그렇게 기본이 조금씩 빠진다.
루키 때는 철저히 지키던 것들을
경험이 쌓였다는 이유로
하나씩 놓치게 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원래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루키든,
베테랑이든,
이 일을 하는 한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나는 그걸
이번에 제대로 배웠다.
이번 감기는
살면서 겪어본 감기 중 가장 독했다.
양쪽 코가 거의 100퍼센트 막혔다.
계속 기침이 터져 나오면서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입으로 겨우 숨을 쉬며 버텨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코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먹고는 살아야 되다 보니 억지로 물이나 음식을 넘기다가
자꾸 기도로 잘못 넘어가는 느낌이 왔다.
결국 숨 쉬는 게 더 불편해지고,
기침과 목 자극이 심해지고,
가슴 쪽까지 이상해져서
응급실까지 가게 됐다.
음식물이나 물이 기도로 잘못 들어가
흡인이 생겼고,
그게 폐 자극이나 감염으로 이어지면서
초기 흡인성 폐렴(aspiration pneumonia) 단계까지 갔었다.
심한 기침,
호흡곤란,
흉부 불편감,
발열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응급실에서는 산소 공급과 항생제 치료까지 받았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건
항상 큰 사고만은 아니라는 것.
사람은 꼭 크게 다쳐야만
교훈을 얻는 게 아니다.
가끔은
숨 쉬는 일 하나가 불편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코가 막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잘못하면 폐까지 탈이 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직접 겪고 나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예전에는 농담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진짜 무식한 건
몰라서 겁이 없는 게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안 지키는 것이었다.
갖고 있으면서도 안 쓰는 것이다.
지켜야 할 이유를 알면서도
익숙함을 핑계로 기본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용감한 게 아니라
방심이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여긴 오늘도 여전히 평화로워.”
하지만 평화로워 보인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
여긴 오히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고,
각자의 건강 상태와 사정을 안고 들어오는 공간이고,
그만큼 보이지 않는 감염 위험도
늘 함께 흐르는 곳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이번에 제대로 교훈을 얻었다.
마스크 하나.
장갑 한 켤레.
손 한 번 더 씻는 일.
한 번 더 조심해서 만지는 습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 사람을 지키는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그런 기본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쓰고 싶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II
정확히는, 난
용감했던 게 아니라
알고도 안 지킨 대가를
무식하면서 용감하게 몸으로 배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