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제 나 좀 놔줄래?
나는 여러 가지 죽음을 봐 왔다. 그리고 너무 어린 나이에 총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한 번이 아니었다. 총성이 여러 번 겹쳐 울릴 때마다 귀는 한동안 멍해졌고, 세상의 소리는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멀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소리가 멈추면 모든 것도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떤 소리는 멈춘 뒤에야 비로소 사람 안에 남는다.
경찰이 된 뒤 사격 훈련을 할 때는 당연히 귀 보호대를 낀다. 하지만 급한 상황에서 귀 보호대를 먼저 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순간에는 살아남는 게 먼저고, 대응하는 게 먼저다. 지금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처음부터 정상적인 소리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오른쪽 귀의 이명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데 나만 듣는 소리.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더 또렷해지고, 밤이 되면 더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 내가 계속 노래를 틀어놓는 이유도 결국 그것 때문이다. 귀 안에 다른 소리가 계속 흘러야만, 이명이 잠시라도 거기에 가려지는 것 같아서다.
침묵은 내게 쉼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고통에 가깝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이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비싼 최신 보청기까지 권했다. 나도 믿고 큰돈을 들여 사 봤다. 이 나이에 보청기를 끼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고, 어딘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믿고 싶었다. 정말 나아질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소용이 없었다.
의사들은 말했다. 귀에서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뇌와 귀 쪽 신경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설명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된다고 해서 괴로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봤다. 유명하다는 ENT도 다녀봤다. 좋다는 말은 다 들어봤고, 좋다는 마사지와 음식도 찾아 해 봤다.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그런데도 이 소리는 아직까지 내 오른쪽 귀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을 꾼 기억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자고 나면 꿈 이야기를 한다. 누굴 만났다고, 어디를 갔다고, 웃었다고, 울었다고, 때로는 악몽에 시달렸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 좀처럼 끼어들지 못한다.
내 밤은 늘 비슷하다. 잠들기 오래전부터 이명이 먼저 찾아와 머릿속을 채우고, 세상이 조용해질수록 그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밖은 분명 잠들었는데, 내 안에서는 끝내 아무것도 잠들지 못한 채 가느다란 비명 같은 소리만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는 건 언젠가 소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니, 차라리 그 이명 소리를 즐기라고. 하지만 내게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고통의 모양도 모르는 사람이, 고요를 잃은 밤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보다 멜라토닌에 더 자주 기대어 본다. 억지로 의식을 눕히듯 겨우 눈을 감는다.
어디선가 읽은 의학 자료에는 사람은 대부분 꿈을 꾸지만, 깨어난 뒤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인지 모른다. 어쩌면 나 역시 매일 밤 수없이 많은 장면들 사이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침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물에 젖은 잉크처럼 번져 사라져 버리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으로 꿈을 꾼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꿈이든, 악몽이든, 남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스쳐 지나가는 그 ‘꿈’이라는 것을 나도 단 한 번만이라도 또렷하게 붙잡아 보고 싶다. 잠든 사이 정말 다른 세계를 다녀온 사람처럼, 눈을 뜬 뒤에도 한동안 가슴속 어딘가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얼굴 하나, 장면 하나, 감정 하나를 나도 품어 보고 싶다. 꿈속에서라면, 지금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내 안 어딘가에서 이름 없이 그리워해 온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꿈속에서는 이명 없는 세계에 가 보고 싶다. 아무 소리도 나를 따라오지 않는 곳. 내 머릿속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그 소음조차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하는 곳. 고요가 고요로만 존재하는 곳.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망가진 회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조용한 밤 속에서 편안히 숨 쉬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가 꿈을 바라는 이유는 무언가 대단한 장면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이명 없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잃어도 볼 수 있는 너무도 평범한 인간으로 잠시 살아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귀에서 나는 소리는 나를 미치게 한다. 컨디션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어떤 날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이명이 정말 심할 때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 오마하 상륙작전에서 톰 행크스 옆에 포탄이 터진 뒤 귀에서 삐— 소리가 울리고 한동안 세상이 멍하게 잠기는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소리는 분명 들리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고, 정신은 깨어 있는데 감각은 어딘가 멀어진 것 같은 순간. 그럴 때면 나는, 지금 내 귀 안에서 울리는 것이 단순한 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나는 왜 보통 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며 살아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가 들으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지나간 일인데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그날들의 소리는 여전히 내 귀 안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현실의 내가 말이 없고 차갑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지금까지 지나온 날들이 퇴적된 지층처럼 내 안에 쌓여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민의 안전과 법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지켜주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가끔은 나 또한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아무 걱정 없이 잠들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냥 펑펑 울고 싶을 때도 있다. 혹시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수년 동안 내 안을 맴돌며 나를 지겹도록 괴롭혀 온 이명도 마침내 나를 좀 놓아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오른쪽 귀를 떠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이명이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총성인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그날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귀는 아직도 그날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분명 살아남았는데, 어떤 소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오래된 소리를 향해, 마지막인 것처럼 같은 말을 묻는다.
제발, 이제 나 좀 놔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