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by 한그루


수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리아와 티토가 나를 반기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수료를 축하한다는 카드와

리셉션에서 일하려면 이제 보이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식기를 닦다가 다 망가져버린 내 손톱들을

다듬을 수 있는 네일 바우처를 선물해 줬다.


나도 마리아처럼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길.


홀가분했다!

다시 무직 상태로 돌아왔지만,

왠지 빨리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전화가 울렸다.


"Good morning, could I speak to Misong please?

"안녕하세요. 미송씨와 통화 가능할까요?


응? 누구지?


"Good morning, that's me"

"안녕하세요. 전데요?"


"Oh! Hi Misong, I am ooo calling from Novotel London West. I have seen your profile in the reception academy."

"안녕하세요. 노보텔 런던 웨스트에 ㅇㅇㅇ입니다.

리셉션 아카데미에 프로필 올라온 것 보고 전화했어요."


그렇다.

리셉션 아카데미에 등록하면 인재 풀처럼

학원 홈페이지에 구직하고 있는 학생들의 정보를

올려준다.

호텔에서도 이왕이면 교육기관에서 정식으로 교육받은 리셉셔니스트를 원할 테니까

아카데미 홈페이지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이 분이 내 프로필을 보고 연락한 것이다.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물었다.


"Just wondering if you are still looking for a job at the moment."

"혹시 아직 구직 중인가요?"


"Yes, I am indeed"

"네, 그럼요."


그렇게 면접은 이틀 뒤로 잡혔다.

친절했던 그녀는 우리가 통화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줬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


Cathelijn

카탤리진? 캐틀린?


노보텔 런던 웨스트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교통비가 안 나가는 장점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답사를 갔다.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리셉션은 어디인지를 미리 알아 놓기 위해.


프런트 데스크가 잘 보이는 라운지에 앉아

스파클링 워터 한 병을 주문하고

직원들의 서비스를 관찰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했었던

미스터리 쇼퍼 스킬을 이런 데서 또 써본다.


그렇게 바쁘지 않은 시간에도 리셉셔니스트가

3~4명이 상주하고 있는 큰 호텔이다.

객실이 630개, 대형 컨퍼런스를 할 수 있는

회의장이 다수 있는 규모 있는 호텔.


규모에 압도되어 사실 무섭기도 했다.


'인터뷰 가지 말까? 그래도 가야지.

어떻게 온 기회인데, '


다음 날, 리셉션 아카데미에서 알려준 드레스 코드대로 정장을 입고 프런트 데스크를 찾았다.

마치 바비 인형처럼 예쁜 니콜이 나를 맞이했다.


"Good morning, I am here for an interview with Cathelijn?"

"오늘 카탈리진? 과 면접이 있어서 왔습니다."


흔히 알려진 이름이 아니라서 그런지,

구글에 발음을 아무리 검색해도

찾지 못해 내 방식대로 불렀다.

그때 ChatGPT 같은 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니콜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웃어 보이며 말했다.


"Ah, You meant Cathelijn? of course. please take a seat."

“아! 카탈라인 이요? 잠시만 앉아 있어요.”


아. 카탈라인이라고 읽는구나.


어제 본 대로 직원들은 몹시 프로페셔널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여성분이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파란 눈 여성분.

바로 그 '카탈라인'이다.


내가 어제 앉았던 라운지로 나를 안내했다.

똑같은 자리에.


그녀는 나에게 아주 가볍게 마치 숨 쉬듯 물었다.


"Oh, by the way

Is your name Misong or Mysong?"

"네 이름이 미송이야? 마이쏭이야?"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렇게 물어보면 되는 거였는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망설였을까.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는 거지.


"Ah!!! It's Misong. it's not really common name here, is it"

"아! 미송이라고 해요. 여기서 흔한 이름은 아니죠. 하하하"


역시, 모르면 물어야 한다.


그리고 오퍼레이션 매니저, 데런이 왔고

면접이 시작됐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 떨렸다.

말도 버벅거리고 망했다 싶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퍼레이션 매니저가 물었다.


"Have you been to our hotel before?"

"우리 호텔 와본 적 있어요?"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어제 와서 이 자리에 앉아

프런트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갔다고,

너무 다정하고 프로페셔널한 친구들이라

꼭 같이 일하고 싶다고.


오퍼레이션 매니저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났고 데런이 카탈라인을 데리러 갔다.


기다리는 동안 빌 수 있는 신에게는 다 빌었던 것 같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령님,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카탈라인과 매니저 데런이 웃는 얼굴로 다시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So, Misong, when would you be able to start?

We have a training for new starts next week,

can you join us?"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

다음 주에 입문 교육이 있는데, 가능해요?"


"Of course I can. Thank you so much."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데런이 인터뷰에 대한 피드백을 했다.


"The fact that you even came by yesterday to see how we work shows how seriously you prepared for this interview.
We wouldn’t want to miss someone like you.

Thank you for coming in today, we’re really looking forward to working with you.”

"어제 답사까지 와서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갈 정도로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다면,

우리도 절대로 당신을 놓치면 안 되죠.

인터뷰에 와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잘해 봐요."


나의 집요함이 때로는

이렇게 빛을 다져다 주기도 하는구나.


밖으로 나가는 길,

아까 카탈라인을 불러준 니콜과 마주쳤다.


"How was the interview?"

"인터뷰 잘 봤어요?"


"I think I have got a job"

"네, 저 합격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I knew that! well done you!”

"와! 너무 잘됐어요. 나는 당신이 잘 해낼 줄 알았어요."


그렇게 나는 바로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2017년 7월, 런던의 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던 런던.

이 도시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너는 피어나는 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