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어나는 꽃이니까,

by 한그루


호텔에서 기물을 닦으며

앞에 있는 동료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어?”

“나? 거의 3년.”


3년을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아직 식음료 보조라고?

그 이야기는 한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스를 여행하며 나는 생각한 게 있다.


영국까지 와서 기물만 닦다가 집에 갈 순 없다고,

그렇지만, 호텔 프런트오피스에서 손님 응대를 할 만큼

내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적당한 시간이라는 건 언제 올까?’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붙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막연했지만,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관련 교육을 수료했다고 하면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을까?


나는 런던에 있는 교육기관들을 검색했다.

리셉션 아카데미 한 달 수강료는 대략 800파운드.

그 당시 환율로는 우리 돈 116만 원 정도.

역시 작은 돈은 아니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신용카드 12개월 할부로

쿨하게 거래했을 텐데,

돈 귀한 줄 모르고 폭주했던 나의 씀씀이는

자급자족 할 수밖에 없는 해외생활을 하며 많이

고쳐진 듯했다.


그리스에서 돌아온 날,

마리아는 나에게 따뜻한 저녁을 요리해 줬다.

그리스 와이너리에서 사 온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며 얘기했다.


면접에서 떨어진 이야기,

오랜 꿈을 정리한 이야기,

그리고 프런트 오피스로 가서 남은 시간 동안

호텔 환대산업에 관한 일을 더 깊이 배워볼 계획.


“정말 좋은 생각이다. 잘 결정했어!

너는 식음료보조로만 일할 아이가 아니야. ”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그때 빌린 300파운드,

조금 더 있다가 드려도 될까요? “


마리아가 말했다.


"아! 무슨 소리야.

300파운드는 그냥 잊어버려.

난 처음부터 받을 생각 없었어. “


그리고 마리아의 눈엔 이내 눈물이 고였다.


“미송, 너의 젊음이 부럽구나.

나는 이미 지는 꽃이지만 너는 한참 피어나고 있잖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이 멋진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 “


마리아의 진심에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스산 와인 한 병 비우고,

내친김에 포르투갈산 레드 와인도 한병 더 열었다.


와인의 색만큼 우리의 우정도 점점 짙어졌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바로

리버풀 스트리트 근처에 있는

리셉션 아카데미를 찾았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수료식엔 호텔 채용 관계자들이 와서

실제로 현장에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고 했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호텔 식음료 매니저 마크에게는

리셉션 코스를 듣고 싶어

당분간 오전 출근만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제 영어가 걱정이에요."


말을 잘 들어주던 마크에게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리셉션 코스를 듣는다고

과연 프런트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가 갑자기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미송이랑 대화할 때 어려웠던 적 있었어? “


나는 당황했고 다급하게

‘하지 마, 하지 마!’ 하는 손짓으로 마크를 말렸다.

마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봐! 다들 없다고 하잖아,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그런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리셉션 아카데미에서는

4주간 호텔 운영 시스템 이해하기,

체크인·체크아웃 진행하기, 전화 응대하기,

손님 대면 응대하기, 객실 예약하기 등

실무에 꼭 필요한 내용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통과해야 수료할 수 있었다.


역시 쉬운 건 하나도 없다.


현지 영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손님을 만나고 체크인·체크아웃이라니.

막막했지만 수업에 참여하며 점점 더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4주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수료를 했다.


물론, 수료식에서 기적적으로 스카웃 되는

K드라마식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대단했다.


리셉션 아카데미 수료와 함께

나는 런던에서의 첫 직장이었던

힐튼 유스턴을 떠나기로 했다.


작별인사 중 한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미송, 너 결혼했어? 아이는?”

“아니, 아직 안했어. 아이도 없어.”


그 직원은 말했다.


“얼마나 좋아, 어디를 가든 뭘 하든

아무런 제약이 없잖아.

하고 싶은 것 하며 인생을 즐기길 바랄게. “


2017년 7월,

그렇게 나는 그곳을 떠났다.

무직 상태로, 용감하게.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화, 수, 금, 일 연재
이전 08화산토리니에서 기쁜 나의 젊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