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라는 동질감

언어보다 중요한 문화의 결

by 적응형이방인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이런 장면을 꿈꿨다.


유창한 영어로 미국인들 사이에 섞여 웃고 떠드는 모습.

그런 장면이야말로 이곳에서의 삶이 무사히 자리 잡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이 문제는 영어의 유창함이 아니라 ‘문화의 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동네에서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이웃집 일본계 미국인 엄마다.

그녀의 외모는 아시안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라 일본어 한마디 못하는 뼛속까지 '아메리칸'이다.


하지만 우리 집 현관을 넘어서는 순간, 그녀에겐 묘한 변화가 생긴다.

아이에게 먼저 신발을 벗으라고 나직이 이르고, 식탁 위 한식을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먹는다.


나는 그녀에게 “너는 너무 아메리칸이야”라고 놀리고, 그녀는 나에게 “너는 너무 아시안이야”라고 농담한다.


그녀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를 보고 자라

아시아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미국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입학한 아이 프리스쿨에서 나는 항상 혼자였다. 언어의 문제보다도 견고해 보이는 그들 사이로 먼저 걸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미국인 엄마들 곁에서 나는 늘 조금 떨어진 채 아이를 기다렸다.


그 정적을 깨고 먼저 말을 걸어준 건 대만계 이민 2세대 엄마였다.

이미 프리스쿨 졸업파티를 기획할 만큼, 꽤 ‘인싸’였다.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분주하게 차에 타려는데,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졸업파티 초대장 봤지? 일정 없으면 꼭 와!”


그 이후로도 집으로 나를 초대하고 항상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아이의 학교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꼭 문화적 공통점을 가진 아시안이 아니더라도

‘이방인만 아는 동질감'이 있다.


중동, 히스패닉, 아프리카, 동유럽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미국으로 온 친구들.

언어와 종교, 문화는 달라도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


이 먼 땅에서 자리 잡느라 고생 많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위로의 눈빛이 있다.

서로의 서툰 발음보다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한다.




물론 다정한 미국인 이웃들도 있다. 감사한 일이다.

직접 만든 애플잼을 문 앞에 두고 가고, 맥주 파티에 초대하는 그들의 호의는 진심이다.


하지만 마주 앉아 대화하다 보면 언어의 장벽보다 더 큰 ‘멈춤’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왜 파티와 홀리데이 시즌에 그토록 진심이고, 슈퍼볼 경기에 열광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가 왜 매해 김치를 담그고, 명절마다 음식을 준비하며 가족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친절하지만 깊어지기 어려운 미국인과,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가족처럼 끈끈해지는 한국인.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살아온 시간이 만든 깊은 골일 뿐이다.




한때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이 미국인들 사회에 섞이지 못할까.

부족한 영어 때문일까 하며 자책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어쩌면 꼭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이류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왔고 비슷한 무게의 하루를 버텨낸다.




그저 나와 같은 온도로, 내 진심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이 먼 땅에 있다는 것.

그것은 참 소중한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알고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것.

그것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이곳에서 충분히 잘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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