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기러기 아빠의 헌신

by 영현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내가 겪은 결핍을 아이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나은 기회를 잡게 해주고 싶은 열망은 숭고하다. 하지만 이 맹목적인 사랑이 '기러기 가족'이라는 기형적인 구조와 결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희생이 아니라 참혹한 '재무적 자해'이자 가족 해체의 서막이 된다.


앞선 1화부터 7화까지, 우리는 미국, 중국, 유럽, 그리고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도피성 유학이 얼마나 처참한 투자 수익률(ROI)을 기록하는지 확인했다. 이번 장에서는 시선을 해외가 아닌 한국으로 돌려보려 한다. 그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탱하기 위해 한국에 남아 뼈를 깎고 있는 자본의 공급책, 바로 '기러기 아빠'들의 현실이다.


1. 월급 기계로 전락한 가장: 감가상각 되는 삶


기러기 아빠의 경제적 현실은 냉혹하다. 대기업 부장, 중견기업 임원, 심지어 전문직 종사자라 할지라도 해외로 송금되는 교육비와 체재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일반적으로 기러기 가족의 해외 체재비는 연간 최소 7,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에 달한다.


가장의 세후 소득 중 70~80%가 매달 태평양을 건너간다. 남은 돈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을 극단적으로 축소한다. 번듯한 아파트를 처분하고 좁은 오피스텔이나 원룸으로 거처를 옮긴다. 식비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과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자식은 해외의 쾌적한 환경에서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코스를 밟고 있지만, 정작 그 자본을 대는 아버지는 영양 불균형과 주거 환경의 급격한 하락을 겪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빠르게 감가상각 된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다. 기업으로 치면 핵심 기술 개발이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는 방치한 채, 언제 수익이 날지 모르는 부실 해외 자회사에 회사의 명운을 걸고 모든 현금흐름(Cash Flow)을 쏟아붓는 배임 행위와 같다.


2. 정서적 단절: 가족이라는 이름의 서류상 결합


물리적 거리는 반드시 정서적 거리를 수반한다. "요즘은 영상 통화도 있고 메신저도 발달해서 괜찮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위안이다. 인간의 유대감은 일상의 사소한 공유와 물리적 접촉에서 형성된다.


아내는 타국에서 아이의 매니저이자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며 현지의 삶에 동화된다. 아이는 외국어로 사고하고 현지의 문화를 흡수하며 자란다. 반면, 한국에 남은 아버지는 오로지 '송금표'로만 가족과 연결된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오거나 아버지가 휴가를 내어 현지로 갔을 때, 그들은 서로가 너무나 낯선 타인임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배제되어 훈육의 권위를 상실하고, 아내와의 공감대는 증발한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청춘과 건강을 갈아 넣었지만, 정작 가족 내에서 그의 자리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목적을 상실한 맹목적인 송금의 끝에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위태로운 가족 관계만이 남는다.


3. 고독사: 가장 비극적인 청구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건강과 생명의 위협이다. 40~50대 중년 남성은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 등 만성 질환에 가장 취약한 시기다. 그러나 홀로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는 질병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거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전무하다.


불규칙한 식생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그리고 무엇보다 텅 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밀려오는 극도의 외로움은 우울증을 유발하고 알코올 의존도를 높인다. 실제로 기러기 아빠들의 돌연사나 고독사 뉴스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이, 가족의 든든한 기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욱 잔인한 현실은, 가장이 쓰러지고 송금이 끊기는 순간 해외에 구축해 놓은 모래성 같은 삶도 즉각 붕괴한다는 점이다. 리스크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가족 전체를 담보로 한 무모한 도박의 끝이다.

8부 삽화.jpg


4. 투자금 회수 불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노후


앞선 장들에서 분석했듯, 이렇게 가족의 생살을 찢어가며 투자한 유학의 결과물은 처참하다. 아이는 글로벌 엘리트가 되지 못한다. 어설픈 이중언어 구사자에, 뚜렷한 전문 기술 없이 한국의 취업 시장으로 돌아와 겉돌거나, 현지에서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수 없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는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부모의 노후 자금 고갈이다. 한국의 중산층이 은퇴 후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주 주택과 안정적인 연금, 그리고 현금 흐름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러기 생활 10년은 이 모든 기반을 증발시킨다. 아이의 '경험'과 '스펙'을 위해 부모의 '생존'을 팔아넘긴 꼴이다. 훗날 빈털터리가 된 부모를, 어중간한 유학파로 자라난 자식이 부양할 수 있을까? 냉정하지만 불가능하다.


[해결 방안: 맹목적 헌신에서 합리적 자본 배치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의 무조건적인 헌신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를 찢고, 차가운 자본주의의 논리로 가족의 재무와 미래를 재설계해야 한다.


첫째, '가족 분리형 유학'을 원천 차단하라. 유학을 가야만 한다면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이민 형태가 되어야 한다. 가장을 한국에 남겨두고 현금흐름만 뽑아가는 기조는 시작조차 해선 안 된다. 가족의 물리적 결합을 해치는 투자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함께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둘째, 교육비 명목의 매몰 비용을 '자본 수익'으로 전환하라. 기러기 생활로 허공에 날릴 5억~10억 원의 자본을 아이의 머릿속이 아닌 '자산'에 투자하라. 유학 갈 돈으로 우량 주식의 지분을 모아주거나,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부동산을 취득하여 증여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Big Deal'이다. 불확실한 해외 학위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쥐여주는 든든한 자본 수익이 아이의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하고 확실한 무기가 된다.


셋째, 부모의 경제적 독립이 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물임을 각성하라.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원은 해외 명문대 타이틀이 아니라, 늙고 병들었을 때 자식에게 경제적 짐을 지우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자녀 교육비로 노후 자금을 탕진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자녀에게 부양이라는 더 큰 부채를 떠넘기는 이기적인 행위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유학은 부모의 희생을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밑 빠진 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배제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라. 그것이 진짜 가족을 지키는 길이다.


화요일 연재
이전 08화7부. 동남아 귀족 놀이: 환율로 쌓아 올린 '모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