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비
일을 미루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있다. 자책이다.
"왜 또 미뤘지? 나는 왜 맨날 이렇지? 의지가 왜 이렇게 약하지?"
이 자책을 동기부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다음에는 안 그럴 거라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나태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미룰 때마다 자책하고,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 다짐한다.
그런데 다음에도 미룬다. 그리고 또 자책한다.
자책이 효과가 있었다면, 우리는 진작 달라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심리학이 제시하는 답은 의외다. 스스로에게 더 친절해지라는 것이다.
"미뤘는데 친절하게 굴라고? 그럼 더 나태해지는 거 아니야?"
자연스러운 걱정이다. 하지만 연구는 정반대를 보여준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미국 텍사스 대학교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가 2003년에 체계화한 개념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힘들 때 스스로를 친구 대하듯 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쉽다. 친한 친구가 "나 또 일 미뤘어.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고 한다면, 뭐라고 말해줄까? "너는 원래 의지박약이잖아"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힘들었나 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자기자비는 그 말을 나에게도 해주는 것이다.
네프에 따르면 자기자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말로 나열하면 딱딱해지니까, 같은 상황에서 자책과 자기자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중요한 보고서를 미뤘다고 가정해보자.
자책하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한다. "또 미뤘네.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지." 스스로를 공격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이래." 자신만 유독 문제라고 느낀다. "아, 짜증나. 생각하기 싫어." 감정에 매몰되거나, 반대로 감정 자체를 외면한다.
자기자비를 가진 사람은 다르게 반응한다. "미뤘네. 힘들었나 보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해보자."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따뜻하게 대한다. 이것이 자기친절(self-kindness)이다. "일 미루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불완전함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걸 안다. 이것이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이다. "지금 불안하구나. 그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되, 거기에 휩쓸리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이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세 요소가 따로따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세 방향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도 힘들 수 있고(자기친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고(보편적 인간성), 지금 내 감정은 이렇구나(마음챙김)."
자기자비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이전 글에서 자책은 할 일 미루기를 악화시킨다고 했다. 자기자비가 이 악순환을 끊어줄 수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그렇다. 자기자비가 높은 사람은 일을 미뤄도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쾌한 감정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 과제에 "지난번에 미뤄서 자책했던 기억"이 들러붙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같은 과제를 마주해도 심리적 장벽이 낮다. 덜 피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덜 미루게 된다.
반면, 자기자비가 낮은 사람은 미룰 때마다 자책이 쌓인다. 과제는 점점 더 무겁고 불쾌한 것이 된다. 다음번에는 더 피하고 싶어진다. 더 미루게 된다. 4화에서 다뤘던 그 악순환이다.
2012년, UC 버클리의 줄리아나 브레인스(Juliana Breines)와 세레나 첸(Serena Chen)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거의 실패 경험을 떠올리게 한 뒤, 한 그룹에게는 자기자비적인 관점으로 그 경험을 바라보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기자비 그룹이 이후 과제에서 더 오래 노력했고, 자기 개선 동기도 더 높았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한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자기자비가 그냥 자기합리화 아닌가? "괜찮아, 다 그래"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덮는 거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다르다.
자기합리화는 문제를 부정한다. "사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어." "나는 원래 마감 압박이 있어야 잘하는 타입이야." 현실을 왜곡해서 불편함을 없앤다. 행동과 믿음이 충돌할 때 느끼는 불편함, 즉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자기자비는 다르다. 문제를 인정한다. "미룬 건 사실이야. 그리고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 다만 거기서 자책으로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야. 다음엔 다르게 해보자."
자기합리화는 변화를 막는다. "문제 없어"라고 하니까. 반면 자기자비는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있어. 그런데 그 문제 때문에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 거야. 다시 시도해보자."
그래도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왜 친절함이 동기가 되는 걸까? 엄격함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핵심은 안전감이다.
자책은 "실패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러면 실패가 자아를 위협하는 사건이 된다. 위협 앞에서 뇌는 회피를 선택한다.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자기자비는 "실패해도 나는 괜찮다"는 메시지를 준다. 실패가 덜 위협적이다. 위협이 줄면 회피도 준다. 시도해볼 용기가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해도 괜찮다고 느낄 때 오히려 실패를 덜 하게 된다. 일단 뭐라도 시도하기 때문이다.
자기자비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다. 연습할 수 있는 기술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것이다. 힘들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친한 친구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뭐라고 말해줄까?"
우리는 대부분 친구에게는 자기자비의 세 요소를 자연스럽게 실천한다. 친절하게 대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감정을 알아봐준다. 다만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갑자기 냉혹해진다. 스스로에게도 친구에게 하듯 말해주는 것, 그것이 자기자비의 출발점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친구에게 말하듯 나에게 말하기"를 더 체계적으로 다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라고 부른다. 나와 내 문제 사이에 심리적 거리를 두고, 마치 제3자처럼 나를 바라보는 기법이다.
Breines, J. G., & Chen, S. (2012). Self-compassion increases self-improvement motiv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8(9), 1133–1143.
Neff, K. D. (2003). Self-compassion: An alternative conceptualization of a healthy attitude toward oneself. Self and Identity, 2(2), 85–101.
Sirois, F. M. (2014). Procrastination and stress: Exploring the role of self-compassion. Self and Identity, 13(2), 128–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