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
제2장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원시 지구
46억 년 전 형성된 지구는 지금 우리가 아는 푸른 행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다는 뜨겁게 끓어올랐고, 하늘은 짙은 구름과 유독한 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 화산은 시도 때도 없이 폭발했고, 하늘에서는 번개가 내리꽂혔다. 말하자면, 상상 속의 지옥과도 같았다.
원시 지구의 대기 또한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산소가 거의 없었고, 대신 메탄(CH₄), 암모니아(NH₃), 이산화탄소(CO₂), 수소(H₂) 같은 단순한 기체가 풍부했다. 바다에는 철, 황, 인 같은 광물이 녹아 있었다. 여기에 화산의 열과 태양 자외선, 번개 같은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지구 전체는 거대한 화학 실험실과도 같았다.
밀러의 실험
1953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대학원생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 와 그의 지도교수 해럴드 유리(Harold Urey)는 ‘원시 지구의 대기 속에서 생명에 필요한 유기물이 스스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려고 실험을 했다. 실험장치는 크게 4부분인데, 상단 플라스크에는 원시 대기층을 모사하기 위해 메탄(CH₄), 암모니아(NH₃), 수소(H₂), 수증기(H₂O) 혼합해 넣고, 하단 플라스크에는 원시 바다를 무사하기 위해 물을 끓여 수증기를 발생시켜 상단 플라스크로 보냈다. 그리고, 번개를 대신하여 상단 플라스크에 전극을 연결하여 고전압의 스파크를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대기와 바다의 순환을 재현하기 위해 냉각장치를 사용하여 상단의 기체를 냉각하여 다시 하단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실험은 약 1주일간 계속 되었는데, 플라스크 안의 맑은 물이 차츰 갈색으로 변하였다. 생성된 용액을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글리신, 알라닌 등 아미노산 5종과 요소, 포름산, 시안화수소 등의 간단한 유기물이 검출되었다.
기체들의 구성면에서 원시 대기 상태와 크게 달라서 그 모사가 부적절했다는 유력한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원시 지구에 존재하였던 무기물들로부터 생명체의 기본 구성 성분인 유기물, 특히,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아미노산과 단백질은 속된 말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고, 다시, 단백질과 생명은 또다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밀러의 실험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다만, 생명이 초자연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지구의 물리·화학적 조건 아래에서 자연적으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혹은 그 단서를 최초로 실험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밀러의 실험으로 흥분한 과학자들과 대중들은 오래지 않아 실험실에서 생명을 창조될 것 같은 기대로 들떴지만,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생명의 출현까지의 수억년의 세월을 실험실 조건에서 대체할 수는 없다.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는 이론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유다.
RNA 세계 가설
생명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존속’과 ‘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는 대사작용을 통해 스스로 생존해가며, 복제를 통해 자신과 거의 동일한 자손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종을 유지한다.
아무리 간단한 원시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대사와 번식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들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하다.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단백질들, 대사반응에 필요한 여러 효소들, 생명정보의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 등이 정교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생명을 구성하는 이런 수많은 요소들이 운 좋게도 한 곳에 모여 있다고 가정하여도 그것들이 우연히 제대로 조립된다는 것은 마치 보잉 747 비행기의 조립에 필요한 부품들을 들판에 늘어놓았는데, 강한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친 후 비행기가 조립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야 하고, 그 구성요소들이 각 순서와 위치에 맞게 정확히 결합되어야 하고 그 결합에 필요한 화학 반응들이 제 때 일어나야 한다. 이런 일이 자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그 확률이 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확률이 0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낮은데도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났다면, 그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게 된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통 속에 1부터 100까지 새겨진 공들을 넣고 통을 흔들어 공을 하나씩 꺼낼 때 1부터 100까지 숫자가 새겨진 공들이 숫자 순서대로 차례대로 빠져 나올 확률은 1/100!이다. 그런데, 1부터 50까지 새겨진 공을 미리 순서대로 끈으로 연결해두고, 다시 51부터 60까지의 숫자가 새겨진 공을 끈으로 연결해두었다면 그 확률은 1/42!이 된다. 계산해보면, 그 확율이 10의 106승 만큼이나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생명 출현 이전에 생명체의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 구성체가 미리 형성되어 지구상에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고, 지구에 광범하게 존재하지는 않지만 일부 지역에서나마 간혹 출현하는 어떤 구성체가 생명 구성에 필요한 것이라면 생명 출현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약간이라도 확률이 높아진다면, 그리고, 수억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여러 구성체들이 간혹 조우하게 되고 간혹 지열, 화산, 번개 등의 에너지원으로부터 촉진된 화학반응을 수시로 겪게 된다면 그 확률이 0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생명 출현 이전에 생명체의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 구성체가 미리 형성되어 지구상에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유력하게 제시된 가설이 <<RNA 세계 가설>>이다. Alexander Rich는 1962년에 RNA 세계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고 Walter Gilbert는 1986년에 이 용어를 만들었다. RNA는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복제할 수 있고, RNA로 만들어진 효소(리보자임)는 생명에 필수적인 화학 반응을 촉매할 수 있으므로 리보자임이 단백질로 만들어진 효소보다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성질 때문에 “원시 생명의 주인공은 DNA가 아니라 RNA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원시 바다 어딘가에서, 무수한 화학적 조합 중 우연히 자기 복제를 부분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RNA 분자가 등장했을 것이다. 이 RNA는 불완전했지만, 더 잘 복제되는 RNA가 자연스럽게 더 많이 남게 된다. 바로 여기서부터, 생명과 진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RNA가 광범하게 존재하여 RNA 세계가 펼쳐지려면 안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다 속 RNA 분자는 언제든 파괴될 수 있으므로 보호막이 필요하다. 지방산 같은 분자는 물속에서 저절로 뭉쳐 작은 주머니를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이 원시적인 세포막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안에 RNA를 가둔 원시적 세포막이 점점 더 안정화되었다면 복제된 RNA 개체들을 점점 더 개체가 늘어나게 되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RNA 분자가 안정된 주머니 안에 갇혀 외부로부터 보호받으면서 내부에서 복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주머니는 반투과성을 가져서 에너지나 영양분은 들여보내고 불필요한 물질은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면, ‘대사를 통한 존속’과 ‘복제를 통한 증식’이 가능한 개체, 즉, 최초의 원시 세포(proto-cell)가 탄생한 것이 된다.
생명의 탄생 - 불가능성이 가능성으로 전환되기 위한 경로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주요 구성요소 내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도표화해볼 수 있다.
위 도표만 놓고 보면, 최초의 생명이 출현하는 것이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의 구성 요소 가운데 단백질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단백질은 수백 개의 아미노산이 정확한 순서로 결합해야만 기능을 발휘한다. 단 하나의 아미노산이 엇갈려 결합해도 단백질은 기능을 잃는다. 이는 ‘사전의 모든 글자를 무작위로 섞어서 시 한 편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 확률적으로는 거의 0이다. 그런데 생명은 이런 ‘시’가 하나가 아니라, 수십억 편이 동시에 완성되어야만 작동한다.
유전 물질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유전분자(RNA든 DNA든)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수백~수천 개의 염기가 정확히 배열되어야 한다. 염기 하나의 선택 확률이 1/4이라면, 100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RNA가 우연히 완벽한 배열을 가질 확률은 1을 우주의 원자 수(약 10⁸⁰개)로 나눈 숫자보다도 작은 수치이다. 그런 배열이 수십억 년에 걸쳐 반복된다고 해도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낮은 확률이다.
이와 같이 절망적인 확률인데도 생명이 탄생했다면, 그 이유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맞춘 것이 아니라 미리 만들어진 조각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생명의 구성요소 일부가 이미 자연 속에서 부분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이 조각들이 특정 환경(해저 열수분출공, 점토 표면, 번개 등)에서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경로가 있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경로의 하나로 주장되는 것이 RNA 세계 가설이다. 이 가설이 역사적 진실과 부합하는지는 확증되지는 않지만, 생명의 탄생이라는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은 그것이 완전한 우연이 아니라 부분적 질서가 이미 존재하였던 자연의 경로를 밟아 불가능성이 조금씩 가능성으로 이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모든 생물의 유일한 조상
식물, 동물, 세균 등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단 1개의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조상(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현대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통합적 결론 중 하나다. 이것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유전학·화학·지질학의 수많은 증거를 토대로 주장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근거는 유전 암호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the Genetic Code)이다.
TAAGTTGGGAGAGTTTGATCCTGGCTCAGGATGAACGCTGGCGGCGTGGTTTGCCTCGGCAGGCTTAACACATGCAAGTCGAACGCGTCTGCTGGTGTATGGCGGCGGTGCATGGTTATTAATAGTGGACTCAACGACGAAGACGGCTACCTTGTTACGACTTCAACAGTGGGAATTATTGGACAATGGATGAGGTTGATCCTGTTTGCTCAGACGGATGACTAGAGGTTCGTCTTGGCTTAATCTAGAGTCACACACGGGATTAGCTGGTACCTGCCACTGTTGGTGGTGCCCTTCGGGGTGTAAGCTAACGCTGGCGGCGTGTATGGTTATTAATAGTGGACTTAACGACGTGCTGACGACGAAGACGGCTACCTTGTTACGACTTCAACAGTGGGAATTATTGGACAATGGATGAGGTTGATCCTGTTTGCTCAGACGGATGAC
DNA는 네 가지 염기, 즉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으로 이루어져 있다. RNA는 이 중 T(티민) 대신 U(유라실)을 사용한다. 위에 제시된 문자열은 인체 기생 아메바의 공개된 게놈 정보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실제 유전정보는 이러한 염기 문자가 끝도 없이 이어진 긴 코드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처럼 비교적 단순한 생명체의 DNA 정보조차 책으로 옮기면 서너 권 분량에 달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명활동(대사작용)에 필요한 단백질을 동일한 유전 암호 체계로 만들어낸다. 즉, DNA → RNA → 단백질로 이어지는 유전정보 전달 체계(중심원리, Central Dogma) 를 공유하고 있다.
각 생명체의 DNA에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RNA가 그 정보를 읽어 전달하면 단백질이 합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세포의 구조 형성, 효소 작용 등 다양한 생명활동을 수행한다.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긴 사슬이며, DNA의 염기는 세 개씩 묶여 한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이 세 개의 염기 묶음을 코돈(codon)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DNA 서열이 <ATG TTT TGC …>라면, RNA는 이를 <AUG UUU UGC …>로 읽는다. 여기서 AUG는 메티오닌(Methionine), UUU는 페닐알라닌(Phenylalanine), UGC는 시스테인(Cysteine)을 의미하므로, “단백질 사슬에 메티오닌–페닐알라닌–시스테인 순서로 넣으라”는 명령이 된다.
참으로 놀라운 점은 세균, 식물, 동물, 인간 모두가 동일한 코돈 체계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간 세포의 리보솜이 ‘AUG’를 읽으면 메티오닌을 붙이는데, 세균의 리보솜도 ‘AUG’를 읽으면 똑같이 메티오닌을 붙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통조상을 가진다고 해석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유전 암호의 보편성(universality of the genetic code)’ 이다.
세균, 식물, 동물, 인간 모두 같은 규칙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유전 암호 체계를 가진 ‘하나의 조상’에서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언어가 같다면, 그 언어를 만든 조상이 하나였다는 뜻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모두 공통 조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둘째, 세포 구조의 공통성 (Cellular Unity)이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cell) 를 기본 단위로 한다. 세포막은 인산지질 이중층(phospholipid bilayer)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세포 내부에는 리보솜, 효소, 핵산, 단백질 합성 시스템 등 유사한 기본 구성요소를 가진다.
세균(Bacteria), 고세균(Archaea), 진핵생물(Eukarya) 모두 에너지 대사와 단백질 합성의 기본 메커니즘이 거의 동일하다. 즉, 생명이라는 ‘기계’의 기본 설계도는 모두 같다.
셋째, DNA와 단백질의 유사성 (Molecular Homology)
전혀 다른 생물 사이에 공통된 유전자 정보가 존재하는 점이다.
서로 다른 종의 DNA 서열을 비교하면, 염기 서열의 상당 부분이 일치하거나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어, 인간과 침팬지 DNA는 98% 이상 일치하고, 인간과 바나나도 50% 이상의 유전자 유사성이 존재한다.
또한, 특정 단백질(예: 시토크롬 c, 리보솜 단백질 등)은 세균부터 인간까지 거의 같은 아미노산 배열을 가진다. 이런 유사성 혹은 공통성은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유전자가 조금씩 변형되어 온 결과로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넷째, 리보솜 RNA 계통수 분석
1970~80년대 칼 우즈(Carl Woese)가 리보솜 RNA(rRNA) 염기서열을 비교 분석한 결과, 모든 생명체는 크게 세 영역(Domain) 으로 나뉜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균 (Bacteria), 고세균 (Archaea), 진핵생물 (Eukarya)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전자 서열의 계통도(tree of life) 를 그리면, 모든 가지가 결국 하나의 뿌리로 수렴한다. 세 그룹 모두 하나의 공통된 조상(LUCA)에서 분기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섯째, 생화학적 경로의 공통성 (Biochemical Pathway Conservatism)
모든 생명체는 ATP(아데노신 삼인산)를 에너지 통화로 사용한다. 어떤 세포든 에너지가 필요하면 ATP를 ‘지불’해서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해당과정(glycolysis), TCA 회로(시트르산 회로), 단백질·핵산·지질 합성 경로가 모든 생명체에서 거의 동일한 효소 반응을 거친다. 이런 복잡한 대사경로가 서로 다른 종에서 독립적으로 우연히 동일하게 생겨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다.
여섯째, 화석과 지질학적 연속성 (Fossil and Geological Continuity)
가장 오래된 미세한 생명 흔적(남세균 화석)은 약 35억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다. 이후 복잡한 생명 형태들이 단계적으로 진화하는 연속적인 화석 기록이 존재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온천 속의 고온균
톰 브록(Tom Brock) 과 허드슨 프리즈(Hudson Freeze) 의 연구는,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진화적·분자생물학적 통찰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들의 발견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특히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생명 기원의 가능성을 훨씬 넓혀 놓았다.
“생명은 끓는 물 속에서도 산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100°C에 가까운 고온에서는 단백질과 핵산이 파괴되어 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미생물학자 톰 브록(Tom D. Brock) 과 그의 제자 허드슨 프리즈(Hudson Freeze)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온천(Hot Springs) 에서 놀라운 미생물을 발견했다. 이 미생물은 섭씨 70~8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살아가는 세균, 즉 고온균(Thermophilic bacteria)이었다. 그들은 이 생물을 Thermus aquaticus (뜨거운 물의 세균)라고 명명했다. “삶의 한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있다.” — Tom Brock
Thermus aquaticus는 DNA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효소(DNA polymerase)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효소는 고온에서도 변성되지 않고 기능을 유지했다. 이 효소는 훗날 Taq polymerase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1980년대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연쇄반응) 기술의 핵심이 되었다. 그들의 연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분자생물학, 유전학, 그리고 진화 계통 연구는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고온균의 진화학적 의미는 '생명의 보편성과 적응력의 증거'이다. 보다 자세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생명은 극한 조건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이 발견은 “생명이 오직 온화한 환경(예: 지표의 바다)에서만 탄생했다”는 기존 관념을 깨뜨렸다. 이후 연구자들은 심해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s), 화산 호수, 빙하 아래 등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다양한 생명체(극한미생물, extremophiles)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이는 곧 초기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2) LUCA의 생태적 성격에 대한 단서 제공
분자계통학적 연구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 공통조상(LUCA)은 열수 환경(hydrothermal environment)에서 살았던 고온성 원핵생물(thermophilic prokaryote)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브록과 프리즈의 발견은 “LUCA가 고온성 생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실험적 근거로 뒷받침한다.
“LUCA는 바다 밑 뜨거운 열수구에서 살았던 고온 미생물이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 생명기원 연구의 주요 결론 중 하나가 되었다.
(3) RNA 세계 및 생명 기원 연구로의 연결
고온 환경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초기 지구의 해저 열수분출공(black smoker) 환경에서 RNA, 단백질, 지질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반응할 수 있었다는 시나리오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즉, 브록과 프리즈의 연구는 “RNA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었던 지구의 열적 환경적 조건” 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후 여러 실험(예: Wächtershäuser의 철-황 세계 가설, Martin & Russell의 열수공 모델 등)에서도 이러한 극한 환경이 생명의 기원에 유리했음을 지지하게 되었다.
(4) 분자생물학적 파급력 — PCR을 통한 유전자 계통 분석
Taq polymerase를 이용한 PCR 기술은 생물 종 간의 DNA를 빠르고 정밀하게 증폭·비교할 수 있게 하였고, 유전자 서열을 통한 진화 계통수(Tree of Life) 연구를 폭발적으로 발전시켰다.
결국, “모든 생물이 유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명확히 입증하는 데 브록과 프리즈의 발견이 직접적인 기반을 톰 브록과 허드슨 프리즈의 발견은 단순한 미생물학의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보편성”과 “공통조상설”을 입증하는 분자생물학적 혁명이었다. 그들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생명이 극한의 환경에서도 태어날 수 있고,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열적 원시 생명계(LUCA) 로부터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훨씬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제3장 모든 생물의 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