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모든 생물의 족보
모든 생물의 가장 간단한 역사
원시 바다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작은 세포 하나. 그 세포는 무력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지구 생명의 역사를 이끌어갈 가장 강력한 힘이 숨어 있었다. 그 힘은 바로 진화다. 진화는 마치 보이지 않는 작곡가와 같다. 악보를 직접 쓰는 것도, 연주자를 지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연한 변이와 환경의 선택이 만나면, 마치 의도라도 있는 듯 질서 정연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생명의 설계도는 유전 정보다. DNA(또는 초기에는 RNA)가 스스로를 복제할 때, 조금씩 다르게 복제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것을 변이라고 부른다. 변이는 대부분 무해하지만 가끔은 해롭다. 예를 들어, 단백질을 망가뜨리는 변이는 세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그 생명체의 존재하는 곳의 환경에 더 잘 맞는 변이가 일어나면 진화의 재료가 된다.
변이가 진화로 이어지는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nature)이다. 변이는 무작위지만 자연의 선택을 받는 것은 무작위가 아니다. 생명은 환경 속에서 시험받는다. 어떤 세포는 햇빛을 더 잘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어떤 세포는 독성 물질을 더 잘 견디며, 어떤 세포는 더 빨리 번식한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변이의 후손은 점점 많아지고, 그렇지 못한 변이는 사라진다. 이 과정을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적자생존이다.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에는 넣지 않았으나 나중에 이 용어를 받아들였다.) ‘적자(適者)’는 환경에 가장 잘 맞는 개체를 뜻한다.
변이 과정에 중요한 개념이 있다. ‘공생’이다. 각 개체가 각기 다른 길로 진화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행로는 교차로가 있다. 그것이 생명체의 복잡성의 비밀이다.
약 20억 년 전, 지구 생명사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작은 세포 하나가 다른 세포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보통이라면 잡아먹고 끝났을 일이었지만, 이들은 이상하게도 함께 살아남았다. 그 결과, 작은 세포는 오늘날의 미토콘드리아가 되었고, 광합성을 하던 세포는 엽록체가 되었다. 이 공생 덕분에 세포는 이전보다 수십 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가 많아지자, 생명은 비로소 복잡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하나의 세포가 아니라 여러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들이 모여 개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세포 생명체가 태어났다.
약 5억 4천만 년 전, 바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과 수천만 년 사이에 수많은 동물 문(門)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이를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부른다.
화석 기록은 이 시기에 눈, 껍질, 다리, 입 같은 구조가 처음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경쟁이 시작되면서, 진화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이 시기는 진화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수많은 새로운 몸체 구조가 등장했고, 그중 일부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우리가 아는 척추동물도 이때 등장했다.
초기의 척추동물은 바다에서 유영하는 작은 생물이었지만, 몸속에 단단한 막대 같은 구조—척삭—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근육이 더 강하게 붙을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나 척삭은 더 정교한 척추뼈로 진화했고, 이로써 몸은 더 유연하면서도 튼튼해졌다. 척추동물은 바다를 누비는 지배자가 되었고, 이후 육지로 올라와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다양하게 갈라졌다.
이 무렵, 신경계도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빛을 감지하는 원시적인 눈,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반사 행동. 이 모든 것은 변이 → 선택 → 누적이라는 진화의 필터를 통과하며 자리잡았다. 이 때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이미 생겨나 있었다. 먹이를 보면 쫓아가고, 그림자를 보면 도망가는 단순한 행동은, 나중에 새의 노래와 뻐꾸기의 탁란 같은 복잡한 본능으로 이어질 기반이 되었다.
모든 생명체의 간단한 족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 1개의 공통조상(LUCA)에서 진화해왔다.
생명체는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이라는 3개의 도메인으로 구분된다.
생명의 공통조상 (LUCA)
├── 세균 (Bacteria)
├── 고세균 (Archaea)
└── 진핵생물 (Eukarya)
세균이나 진핵생물(DNA가 핵막에 둘러싸인 핵 속에 들어 있는 생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생명체인데, 고세균은 뭘까?
고세균은 1977년 미국 미생물학자 칼 우즈(Carl Woese)가 리보솜 RNA(16S rRNA) 서열을 비교 연구하다가 기존 세균과 전혀 다른 계통의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세균은 모양은 세균과 유사하지만 내부 구조는 진핵생물에 더 가까운 존재다. 고세균은 지구 초기의 극한적 환경, 보통의 생물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환경에서 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최초 생명체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호열성 고세균은 온천이나 열수공과 같이 섭씨 80도 ~ 120도의 고온에서 발견되고, 호산성 세균은 ph 2 이하의 강산성 환경에서 발견된다.
진핵생물은 다시 원생생물, 식물, 균류, 동물로 분류된다.
진핵생물 (Eukarya)
├── 원생생물
├── 식물
├── 균류
└── 동물
식물, 균류, 동물은 익숙한 이름들이다. 원생생물은 뭘까?
“원생생물(Protist)”은 ‘가장 원시적인 진핵생물’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진핵생물의 조상 격인 생물군이다. 진핵생물의 가장 단순한 형태, 즉 핵은 있지만 복잡한 기관계가 없는 생물들을 말한다. 핵이 있는 단세포 생물이거나 기관계가 없이 핵과 세포소기관(미토콘드리아, 엽록체 등)을 가진 단순한 다세포 생물이다. 대부분 단세포 생물이고 갈조류와 같이 다세포 생물도 있다.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식물형(유글레나, 클로렐라, 갈조류, 홍조류), 동물형(아메바, 짚신 벌레, 말라리아 원충) 및 균류형(점균류, 수생균)이 그것이다.
이들은 지구 생태계에서 어머어마한 역할을 수행한다. 조류는 해양 및 담수생태계의 1차 생산자이고, 점균류는 죽은 유기물을 분해한다. 일부 조류는 산호와 공생하며 해양 생태계를 수호한다. 물론 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말라리아 원충과 같이 해로운 기생자들도 있다.
모든 동물의 족보
진핵생물 중 동물계는 가장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군이다.
생물 분류의 기본 단계는 계(界) → 문(門) → 강(綱) → 목(目) → 과(科) → 속(屬) → 종(種)인데, “동물계(Animalia)” 아래에 약 30여 개의 문(Phylum) 이 존재한다.
동물계 (Animalia)
├─ 무척추동물
│ ├─ 해면동물문 (해면)
│ ├─ 자포동물문 (해파리, 말미잘, 산호)
│ ├─ 편형동물문 (촌충, 플라나리아)
│ ├─ 선형동물문 (회충, 선충)
│ ├─ 환형동물문 (지렁이, 거머리)
│ ├─ 연체동물문 (달팽이, 조개, 오징어)
│ └─ 절지동물문 (곤충, 거미, 새우, 게)
│ └─ 극피동물문 (불가사리, 성게)
└─ 척삭동물문
├─ 어류 (상어, 송사리)
├─ 양서류 (개구리, 도룡뇽)
├─ 파충류 (뱀, 거북, 도마뱀)
├─ 조류 (참새, 독수리, 펭귄)
└─ 포유류 (사람, 고래, 사자)
동물 진화의 흐름을 보면, 최초의 동물은 해면동물로 세포 수준의 동물이었다. 신경계 출현은 자포동물, 양측대칭 출현은 편형동물, 체강 및 분절 구조는 환형동물, 외골격·관절 발달은 절지동물, 내부 골격과 신경계 발달은 척삭동물 등으로 진화해왔다.
영장류의 공통 조상
오늘날 존재하는 영장류, 즉, 인간, 침팬지, 고릴라, 여우원숭이 등은 모두 하나의 조상 종으로부터 진화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화석과 분자생물학 연구를 종합하면, 영장류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등장 시기 : 영장류의 공통조상은 약 6,000만~7,000만 년 전(백악기 후반~팔레오세 초반) 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공룡이 멸종한 뒤, 작은 포유류들이 나무 위 생활에 적응하며 분화하기 시작하면서 영장류의 조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본다.
형태적 특징 : 초기 영장류의 공통조상은 크기가 작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포유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다람쥐나 작은 설치류 정도이고, 손가락 끝에 손톱이 있고 움직여지는 엄지손가락과 움켜 잡을 수 있는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각보다 시각이 발달하였고, 상대적으로 큰 대뇌피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곤충과 과일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었을 것으로 본다.
현존 동물로는 여우원숭이(lemur)나 안경원숭이(타르시우스 tarsier)가 가장 근사한 형태일 것으로 본다. 타르시우스는 동남아(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 서식하는데, ‘영장류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운다.
공통조상에서 시작하여 다세포 동물이 생겨나고 척추동물이 나타나 결국 영장류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도표화할 수 있다.
생명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원시생명체, 자연계에서 존재하고 번식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런 다른 존재감도 없는 공통조상에서 복잡한 기관과 심지어 지능까지 가진 영장류가 도대체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제4장 진화의 엔진 - 변이와 자연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