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진화의 엔진 - 변이와 자연선택
제4장 진화의 엔진 - 변이와 자연선택
눈먼 시계공
『이기적 유전자』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의 저서『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은 진화론을 옹호하고 창조설(지적 설계론)을 반박하기 위해 1986년에 출간한 유명한 과학 저서다. 도킨스는 마치 인간의 유전자(gene)와 같이 '번식'하면서 세대를 이어 전해져오는 문화 구성 요소인 밈(Meme) 개념을 처음 제창한 학자이기도 하다.
진화에 관한 대중적 서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눈먼 시계공”이라는 제목은 19세기 영국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의 고전적 창조론 비유를 비틀어 만든 것이다.
페일리의 주장(1802년, 『Natural Theology』)은 다음과 같다.
“들판에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가진 시계에는 반드시 시계공(watchmaker) 이 있듯, 생명체의 정교한 구조도 신(창조자)가 설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반박한다. “맞다, 생명은 마치 시계처럼 복잡하다. 하지만 그 시계를 만든 것은 눈먼(의식 없는) ‘자연 선택’이다.”
도킨스가 말한 ‘눈먼 시계공’은 의도나 목적 없이도 생명체의 복잡성을 만들어낸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비유한 것이다. 도킨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Darwinian Natural Selection)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생명은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설계되지 않았다. 복잡성과 적응성은 ‘설계자’ 없이 수많은 세대의 작은 변이와 선택의 축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눈먼 과정’이다. 어떤 목표나 목적이 없으며, “무엇이 살아남느냐”에 따라 구조가 정교해질 뿐이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지만, 선택(selection)은 비무작위(non-random)이다. 따라서 “무작위로 이런 복잡한 생명이 생길 수 없다”는 창조론자의 주장은 오해에 불과하다. 복잡한 생명은 누적 선택(cumulative selection)의 결과다. 한 번의 돌연변이로 복잡한 구조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작은 변이 → 선택 → 누적”의 반복으로 복잡성이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도킨스는 ‘바이오모프(biomorph)’라는 컴퓨터 그래픽 생명체를 이용해, 단순한 규칙으로도 복잡한 형태가 자연스레 진화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말한다.
“자연선택은 시계공처럼 정교한 복잡성을 만들지만, 그 시계공은 눈이 멀어 있으며, 계획도 없고, 의도도 없다.”
“진화는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화는 신의 설계 없이도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찰스 다윈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대영제국 군함 비글 호에 탑승한 것은 불과 22세의 나이였다. 이 여행은 무려 5년이나 걸렸고 항해의 대부분은 남아메리카 주변이었다. 이 때 다윈이 접한 광활한 대륙의 동식물과 화석은 20여년 후 『종의 기원』의 귀중한 재료가 되었다. 이 책은 1859년 11월 24일 출판 당일에 품절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다윈은 사육 동물들의 품종개량이 변이에 대한 육종가들의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와 유사하게 자연 속의 생물 종들이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과정에 주목했다.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각 생물들에게 어떤 유용한 변이들이 수천 세대 동안에 이따금씩 일어나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다른 개체보다 생존에 유리한 점을 가진 개체들은 생존과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반면 가장 해로운 변이는 가차 없이 제거될 것이다. 유리한 변이의 보존과 해로운 변이의 제거를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불렀다.
『종의 기원』제13장에서, 다윈은 그가 고찰한 사실들로부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 속, 과에 속하는 생물들은 각각 그것이 강 또는 군 안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고, 그 계통으로 갈라지는 과정에서 변형되었음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하였다. 다윈은 그 추론을 더욱 대담하게 확장하여 ‘나는 이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생물들은 생명이 첫 숨을 내쉬었던 이 하나의 원시 형태에서 유래했을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영웅적인 고찰과 추론은 오늘날까지 모든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 불멸의 진리로 인정되었다.
진화의 3요소 – 변이, 자연선택, 시간(누적)
진화의 3요소는 변이(variation),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시간(time)이다.
같은 종(種) 안에서도 개체마다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가 미세한 것도 있고 뚜렷한 것도 있다. 다윈의 표현에 의하면, ‘개체 차이’와 ‘변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집비둘기들이라도 부리의 길이나 깃털 색, 체구에 약간씩은 차이가 있다. 다윈은 이것을 개체 차이(individual differences)라고 불렀고, 이런 사소한 차이들이 품종 선택의 원료가 된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유전적 다양성(phenotypic variation)이다.
미세하고 연속선 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차이를 개체 차이를 개체 차이라고 한다면, 이를 넘어서는 차이가 때때로 나타나 그 형질이 유전되는 것을 변이(variation)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구분은 명확한 것은 아니다.) 가축에서 새로운 털색이 나타나 유전되는 경우라든가 집비둘기의 꽁지 깃이 부채꼴 모양으로 바뀌어 나중에 공작 비둘기라는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되는 경우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개체가 동일한 실제 틀 안에 주물처럼 부어져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개체적 차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데 … 그것들은 자연선택이 작용하고 누적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한다 …”
“나는 유리한 개체적 차이들과 변이들의 보존 및 해로운 것들의 파괴를 자연선택이라 불렀다 …”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은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더 많은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특정 변이는 생존에 유리할 수 있고,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반면,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머지 않안 사라진다. 그 결과 유리한 형질이 집단 내에 점점 늘어나면서 세대가 지날수록 종 전체가 변화하게 된다.
진화는 몇 세대나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변이와 선택이 반복되어 누적 효과(cumulative effect)를 일으킨 결과 새로운 종(species)이 형성된다.
결국, [진화] = 변이 + 자연선택 + 시간의 누적이다
변이는 우연이지만, 자연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변이는 진화의 재료를 제공하고, 자연선택은 그 재료 중에서 유리한 것을 고르며, 시간은 그 선택이 누적되어 새로운 형태의 생명으로 발전하게 한다.
인간 선택과 자연 선택
가축이나 곡식의 품종 개량 과정은 진화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인위적 선택에 의해 다양한 품종들이 생겨나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그로부터 추론하여 자연선택의 원리를 설명한다.
다윈은 비둘기 애호가이자 실제 사육자들의 자료를 모아 여러 비둘기 품종들(공작비둘기, 사라센비둘기, 캐리어비둘기 등)을 비교했다. 이 모든 품종들은 원래는 야생종인 바위비둘기(Columba livia)로부터 유래했다. 사람들은 부리 길이, 꼬리 모양, 깃털 색, 자세 등을 기준으로 수 세대에 걸쳐 품종을 개량하였고 그 결과 마치 서로 다른 종처럼 보이는 비둘기 품종들이 생겨났다. 서로 다른 품종들은 대부분 특정 변이를 가진 개체를 계속 선택하는 방법으로 개량되고 간혹 서로 다른 변이를 가진 개체를 교배시키는 방법으로도 이루어진다. 작은 변이의 누적이 서로 다른 품종이라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증명했다.
한 야생 식물(Brassica oleracea)에서 출발했지만, 사람의 선택으로 양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일, 브뤼셀 스프라우트 등 전혀 다른 채소로 분화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원래 같은 야생종이라도, 인간이 잎, 줄기, 꽃, 싹 중 어느 부분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물이 만들어졌다.
다윈은 변이와 선택의 축적이 “새로운 종처럼 보이는 품종”을 만들어낸 사례로 제시하고, 자연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설명했다.
선택에 의해 변이가 축적되는 것은 인간 선택이든 자연선택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2가지 있다.
첫째, 인간 선택은 주로 눈에 보이는 변이가 기준이 되지만, 자연 선택은 생물체 내부의 기관의 변이를 포함하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변이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둘째, 인간 선택은 그 기준이 다양하지만 자연 선택은 선택 기준이 오직 하나다. 인간 선택의 기준은 다양한 쓸모, 효용, 호감에 따라 다양한데, 예를 들면, 크기, 아름다움, 깃털의 색상, 수확량, 낟알 크기, 탈립성(낟알이 쉽게 떨어지는 정도), 병충해에 대한 강인성 등이 변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원래 단 1개의 야생종에서 유래한 애완용 동물, 가축, 농작물 등은 매우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된다. 이에 비해 자연선택은 오로지 ‘생존투쟁에 유리한 강점을 가진 변이’라는 단 1개의 기준이 적용된다. 다윈의 표현대로, 어떤 종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지구를 뒤덮을 때까지 번식할 수 있지만, 생존 투쟁을 통해 한 지역의 지배종은 단 1개로 정리된다. 생존 투쟁에 유리한 강점이란 많은 새끼를 낳는 것, 상위 포식자로부터 회피 수단이 우수한 것, 식량 획득에 유리한 것, 질병에 유리한 것, 수명이 긴 것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해당될 수 있다.
제5장 변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