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를 만든 거인의 어깨
2026년 지금, 우린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파도 한가운데 서 있다.
ChatGPT, Gemini, Claude, Grok, DeepSeek...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이 '미지의 종족들'이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지 않은가.
"거품이다"라는 우려와 "혁신이다"라는 기대 사이.
이 혼란 속에서 답을 찾으려면, 기술이 걸어온 길을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래는 언제나 과거의 거울이니까.
혹은 인류의 역사가,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선상에서 흘러갈 것이라 믿고 싶으니까.
그 긴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
감히 '모든 것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는 곳, 바로 벨 연구소(Bell Labs).
1947년 12월 23일, 뉴저지주 머레이힐의 벨 연구소 건물 1층.
눈이 소복이 내리는 화요일 오후, 물리학자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뭔가를 보여주려 한다는 소문에 연구원들과 경영진이 모여든다.
두 사람이 작은 게르마늄 조각에 금박을 입힌 뾰족한 접촉점 두 개를 플라스틱 쐐기로 고정한, 조잡해 보이는 장치 앞에 서서 스위치를 켜는 순간, 목소리가 증폭되어 스피커를 울린다.
"이게... 정말로 작동하는 거야?"
방 안은 환호로 가득 찼지만, 둘의 상사인 윌리엄 쇼클리만큼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특허권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다는 사실은, 자존심 강한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호텔 방에 틀어박힌 쇼클리는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하여, 보란 듯이 더 강력하고 안정적인 '접합형 트랜지스터' 이론을 4주 만에 완성해 낸다.
반년 후, 뉴욕 타임스는 이 소식을 46면의 '라디오 뉴스' 칼럼 맨 끝에 몇 줄 정도로 다뤘다고 전해진다.
이 발명이 훗날 '트랜지스터'라 불리는, 모래를 이용한 연금술의 태동이란 사실을 대부분 아직 알지 못했다.
1956년, 세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
시상식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바딘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브래튼은 쇼클리와 말도 섞지 않았다.
사진 속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상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고 한다.
빅테크의 많은 CEO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IF'가 있다.
"타임머신을 탄다면 내 첫 행선지는 1947년 12월의 벨 연구소일 겁니다."
도대체 그곳엔 무엇이 있었길래?
클로드 섀넌이 발표한 '디지털 통신의 바이블'.
역사학자 제임스 글릭이 "트랜지스터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평했을 정도다. 인터넷, 넷플릭스, 그리고 지금의 AI(LLM)까지 모든 데이터 전송의 수학적 기원이 되었다.
현대 IT 생태계의 척추.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가 만든 이 걸작은 아이폰(iOS), 갤럭시(Android), 클라우드 서버 등 오늘날 작동하는 모든 시스템의 뿌리가 되었다.
우주 시대를 활짝 연 쌍두마차.
인류가 지구 밖에서 에너지를 얻고, 우주를 통해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지구촌' 시대를 열어젖혔다.
심지어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됐다는 증거인 '우주 배경 복사'를 찾아낸 곳도 벨 연구소.
노벨상만 9개.
'기술 문명의 고향'이라 불러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전화기를 만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서 AT&T가 1925년 세운 벨 연구소는, 설립 철학이 아주 낭만적이었다.
"통신이랑 조금이라도 관계있으면, 뭐든 연구해도 좋아."
자금은? 걱정 없었다. AT&T는 당시 미국 전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대륙 횡단 전화 한 통에 1달러를 받았는데, 그중 3센트가 벨 연구소 연구비로 들어왔다.
그 결과 금속학자, 수학자, 심리학자... 당대의 천재들이 다 모였다.
연구원들은 "회사가 왜 이런 연구에 돈을 주는지 모르겠는데?" 하고 농담할 정도.
천재들이 모인 벨 연구소는 조직 문화도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연구원 모두에게 나눠준 200페이지짜리 노트에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적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뒀다. 재밌어 보이면 동료가 사인을 남기고, 훈수도 두면서 아이디어를 키워갔다.
칸막이 없이 천재들의 지혜가 실시간으로 섞이니, 혁신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트랜지스터도 이런 협업의 산물.
브래튼의 1947년 12월 15일 실험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접촉점을 아주 가깝게 붙였더니 전압 증폭은 약 2배 정도 됐는데, 전력 증폭은 안 됐어."
8일 뒤, 그들은 문제를 풀었다.
IT 성지 '실리콘밸리'도 따지고 보면 벨 연구소의 유산 중 하나.
트랜지스터를 (공동) 발명한 쇼클리 박사가 1956년 고향인 캘리포니아 팔로알토로 가서 '쇼클리 반도체'를 차렸는데,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성격이 좀 독단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천재형 인물이라고나 할까?
직원들에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강요하는 등 괴팍한 행동을 일삼았는데, 그걸 못 견딘 젊은 천재 8명이 1957년 뛰쳐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만든다.
(이들이 그 유명한 '8인의 배신자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그 후 인텔(Intel)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으로 파생된다.
결국 벨 연구소의 DNA가 서부로 건너가 말 그대로 "실리콘밸리"라는 거대한 반도체로 된 골짜기를 이룬 셈이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는 법. 벨 연구소의 운명도 역사의 파도를 피할 순 없었다.
1984년 모기업 AT&T가 반독점법으로 쪼개진 후, 대륙 횡단 전화 요금에서 나오던 든든했던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AT&T에서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로 떨어져 나왔는데, 이때부턴 "돈 되는 것만 해"라는 압박이 심해진다.
결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도 닷컴 버블 붕괴로 휘청이다가 알카텔과 합쳤고, 지금은 핀란드의 노키아의 산하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AI의 시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벨 연구소의 유산이 곳곳에 숨 쉬고 있다.
섀넌은 1948년 발표한 "정보를 비트로 잰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지금 ChatGPT나 Gemini 같은 LLM은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0과 1로 인코딩해서, 다음에 올 단어의 확률을 예측하고 언어를 재구성한다.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 개념이 없었다면 트랜스포머도, 토큰화도, 지금의 AI 혁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엔비디아 최신 GPU에는 2,08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다.
딥블루부터 알파고, ChatGPT까지, 모든 AI 이정표 뒤에 트랜지스터 기술이 있었다.
1969년 벨 연구소의 톰슨과 리치가 만든 UNIX, 1972년 탄생한 C언어.
세상의 수많은 서버는 UNIX의 후손인 리눅스 위에서 작동하고, 딥러닝 프레임워크의 핵심 엔진은 C++로 짜여 있다.
벨 연구소가 우리에게 남긴 건,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태도" 일지도 모른다.
단기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인내.
천재들을 모아놓고 칸막이를 허무는 용기.
세상을 바꿀 발견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관대함.
AI의 파도 위에 선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당장의 이익을 좇고 있는가, 아니면 미래를 만들고 있는가?"
최대한 신중하게 조사하고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옥에 티를 발견하신다면 너그럽게 댓글로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조언이 모여 더 좋은 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