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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Apr 23. 2020

회장님 방문을 두드리다

익숙한 직장 생활과의 결별, 호기로운 도전과 새로운 출발

서른 몇  즈음, 제가 모시던 회장님 방을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있던 회사는 회장님의 여러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신설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은 거의 매일 아침 회장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회의를 하는 장소로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미 환갑이 넘으셨던 회장님의 카리스마 가득한 방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매우 긴장되는 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비서를 통해 허락을 받고 문을 두드리며 “회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최 팀장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맞아주시는 회장님께 미리 준비해  말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장님, 지금 저희 회사의 일은 투자를 계속해도 내재화되는 것이 매우 약한 사업입니다.

계약에 따라 언제라도 사업상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는 판매 채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외국산 콘솔의 유통을 벗어나서,  기계에서 호환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핵심 사업을 해야 합니다."

 명의 후배와 전날 밤을 새워 만들어  사업계획서를 (그것도 출력을 해서 들고 가서) 넘겨가면서 설명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장님은 당돌하게 찾아온 젊은 팀장이, 이제 설립한  얼마  되는 신설 회사의 사업 방향의 한계를 지적하며 들고 온 사업 계획서 내용을 찬찬히 귀담아 들어주셨습니다.

 

 들으신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최 팀장,  내용 구체적으로 보완해서 다시 이야기해 주게.”

힘차게 대답하고 뒤돌아 나오면서 긴장이 풀리고 긍정적인 반응에 속으로 환호를 불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뒤로    회장님 방을 찾아가서 보고를 드리고, 크고 작은 우여곡절 끝에 저는 제가 제안한 사업을 담당하기 위한 새로 설립한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는 하나둘씩 계획을 현실화해가면서 외부 협력회사와 계약도 맺고 개발 프로젝트도 시작하며 경쾌한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경쾌하다고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초반  자리를 잡아갈 무렵, 제가 우려하던 대로 유통사업에 근본적으로 비전이 없다는 판단을 하시고 회장님께서 비디오 콘솔 관련 사업의 전반적인 철수를 결정하시게  것입니다.

기업군의 신규 계열사로 출발한 회사는, 사업 철수 결정에 따라 함께 폐업을 하는 것이 당시로는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덩치가  유통사업을 철수하면서 신규로 덧붙여 진행한 소프트웨어 관련 작은 계열사를 별도로 가져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의욕을 가지고 위에 언급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겪으며 시작한 새로운 사업이 허무하게 중단되는 일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물론 함께  당시의 직원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제가 직접 투자해서 운영하는 본격적인 사업으로 전환해서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을 회장님께 다시 의논드리게 되었습니다.

내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회장님이 다시  의견을 수긍해주셔서 월급쟁이로서가 아닌 실제 사업의 오너로 운영하는 본격적인 사업으로서의 출발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설립  그때까지 집행했던 사업 비용을 정산하지 않으시고, 제가 새로운 출발을 홀가분하게 이어가도록 배려해주셨던 회장님께는 지금까지도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저는 비디오 콘솔을 통해서 ‘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거실문화를 만들자라는 것으로 사업 모토를 정했습니다.  

공부에 부담 속에서 휴식시간에도 마땅한 놀이문화가 없는 어린 학생들이 PC방에서 많이 하던 온라인 게임보다는, 잠시 짬을 내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거실 공간에 함께 모여 향유할  있는 즐거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비디오 콘솔이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어릴 적에 즐겼고 지금은  아이까지도 함께 즐기는 슈퍼마리오와 같은 오랜 역사의 게임 시리즈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파티를 열어 친구들이 함께 모이면 자연스레 비디오 게임을 함께 즐기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러나 ‘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거실문화를 만들자 우리 회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거실의 TV 퇴근한 아버지가 독점하던 당시 우리의 문화에서는 매우 낯선 주장이자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PC 온라인 게임으로  수익을 얻었던 당시 불모지와 다름없던 비디오 콘솔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를 국내에서 꾸려나가는 것은 외롭고 힘든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회사는  이후  10  동안 소니와 닌텐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여러 비디오 콘솔을 통해서  30 개에 다양한 소프트웨어 타이틀을 국내와 해외 시장에 정식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익숙하고 편한 직장생활의 틀에서 벗어나는  호기가 필요했었지만,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30대를 그냥 보냈더라면   후회가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벗어나,  다소 무모하지만 큰 용기를 내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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