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추억하며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 우리보다 앞서 프로야구가 자리 잡았던 일본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고 일본 리그에서 뛴 선수와 감독들이 대거 한국 리그에 참여했었습니다.
서울이 연고였던 MBC 청룡은 일본 출신 백인천 감독이 직접 4번 타자를 맡아 4할대의 경이로운 타율로 시즌을 마감할 정도로 한일 간의 프로야구 수준의 격차가 컸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이 고향이었던 저는 프로야구 첫 시즌에 장남 된 도리로(?) 아버지의 고향 충청도가 연고였던 대전 OB 베어스의 회원에 가입했었습니다.
당시 감독은 한국말조차 어눌했던 재일교포 출신 김영덕 감독이었고, 박철순 투수, 윤동균, 김우열, 신경식 선수 등 걸출한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야구장 외야석에 리틀 OB 베어스 회원 특별가로 티켓을 끊고 입장해서 목이 터져라 원정 온 베어스팀을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격수가 잡아 던진 공을 학다리처럼 쭉 벋는 다리로 잡아 아웃카운트를 늘리던 1루수 신경식 선수며, 구레나룻 멋졌던 김우열 선수, 그리고 다승 1위를 했던 리그를 통틀어 제일 잘생겼던 박철순 투수 등등..
주력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이하게 구천서, 구재서 쌍둥이 선수가 베어스에 같이 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열띤 응원에 화답하듯 OB 베어스는 그 해 리그 최종 우승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없어진 정동 MBC 주차장에서 두산그룹 자회사에서 만든 우승 기념 특전인 곰돌이가 새겨진 유리컵을 받아왔었습니다.
프로야구를 출범한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되기는 했지만, 당시 중학생 꼬마인 저에게 OB의 프로야구 원년 우승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축구 4강만큼이나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원년의 우승을 위해 박철순 투수를 휴식기 없이 연속 기용해서 무려 22연승을 했던 것에 대한 비판이 후에 있었지만, 지금의 잣대로 당시의 프로야구 운영 시스템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을 만큼 미숙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연고도 서울로 바뀐 지 오래되었고, 당시만큼 프로야구에 대한 저의 관심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누군가 프로야구 어떤 팀 응원하냐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두산 베어스라고는 하게 됩니다.
오늘 그런 OB 베어스의 원년 우승을 이끌었던 김영덕 감독님이 향년 87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나서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의 투수로 활약한 뒤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 1964년에 온 뒤 국내 실업리그에서 길고도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김영덕 감독.
특히 1970년부터는 한일은행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뛸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그였기에, 국내 프로야구 첫해에 초대 감독이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영덕 감독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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