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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Feb 21. 2023

르코르뷔지에와 김수근, 철거 위기에서 회생의 길로..

빌라 사보아와 공간 사옥의 같은 듯 전혀 다른 결의 운명

2013년 공간 사옥을 둘러싸고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

1월 공간 건축사무소가 최종 부도 처리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법정관리인단은 자산 유동화를 위해 사옥의 매각 추진을 추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경제 상황과 건물의 활용이 제한적이어서 공개 경매는 유찰되기에 이릅니다.

한때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인수를 검토했으나, 추후 보존 문화재로 등록될 경우 개발이 제한된다는 이유로 모두 매입 검토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등재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공간 사옥의 설계자인 김수근의 후배인 승효상 선생과, 박찬욱, 유홍준 등 문화 예술계 인사들도 민간 매각 반대 및 공간 사옥의 보존을 주장하며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김수근 문화 재단은 구체안으로 소셜펀딩을 통해 기금을 조성해서 공간 사옥을  매입한 후 공공재로 보존하자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일정 기간 내 공매가 계속 유찰될 시 법원의 강제 경매로 전환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관심과 여러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시간이 경과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세운 것은 민간에 매각이 곧 건물의 훼손이라는 우려를 해소하며 공간 사옥의 백기사로 나선 아라리오 그룹이 미술관으로의 용도를 발표하며 150억 수의계약이 극적으로 체결되기에 이릅니다.


오늘 계동의 공간 사옥은 아라리오 미술관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물론 건물의 원형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외벽의 오랜 세월 관록을 지닌 담쟁이넝쿨들도 해를 거듭하며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간 사옥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있습니다.‘공간 사옥과 거의 쌍둥이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수근의 또 다른 하나의 설계작 때문입니다. 바로 박종철 열사가 고문 끝에 유명을 달리하신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그것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설계 : 김수근)

연행자들이 정확한 위치를 모르게 하기 위한 창호 배치라던가, 밀폐된 고문실 등을 감안한 설계로 처음부터 목적을 감안해 만들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라는 이유로 김수근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공간 사옥의 존치 캠페인에는 시민들의 호응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읽은 책, ‘ #르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을 읽으며 공간 사옥을 떠올려봤습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건축주의 손자가 할머니집을 회고하며 자료를 모아 출간한 책입니다.

빌라 사보아도 철거의 위기에서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보존 노력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과거가 있습니다.

원래 사보아 패밀리의 별장으로 당시 젊은 시절의 르코르뷔지에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건축한 빌라 사보아.

이후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한때는 나치에 점거당하기도 하고,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쓰다가 거의 낡아 주거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망가진 건물을 후에는 건축주 유제나 사보아 여사가 농장 일을 하기 위한 농구 창고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주거 공간으로 사용할 때에는 책 제목처럼 찬란한 시간도 있었던 이 건물은 후에 프랑스 교육청으로부터 강제 수용되어 철거된 후 부지에 학교 건물이 들어서는 계획이 잡히게 됩니다.

이때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를 비롯 많은 건축, 문화계 인사들과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이 보존 캠페인을 벌이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인간의 조건의 작가이자 당시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전폭적인 지지로 빌라 사보아는 살아남게 되고 국가 소유가 되어 관리되고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지정되며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공간 사옥과 빌라 사보아의 경우는 다소 다른 결의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건물의 존립 여부가 뜨거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파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의 빌라 사보아를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의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주거성으로 건축주들은 누수와 각종 하자, 추위와 불편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알려진 곳,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국가적 관리를 받고 있는 그곳을 가까운 시일 내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생각난 김에 계동 아라리오 뮤지엄에 엄태정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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