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다. 부모님 뵙고 형제들 만나는 건 좋은데, 솔직히 말하면 지갑 걱정이 앞선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뱃돈 줄 조카가 스무 명이다.
형제가 다섯이다. 위로 형 둘,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 부모님 세대는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 형제들이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조카가 끝없이 늘어났다. 거기에 조카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체 몇 명인지 세기도 힘들다.
세뱃돈 액수도 달라졌다.
내가 어릴 때는 천 원짜리 한 장 받아도 감격했다. 그 돈 모아서 문방구 가고, 떡볶이 사 먹고, 그게 설날의 큰 재미였다. 오백 원짜리 동전 받아도 좋았다. 돈의 액수보다 "세배 잘 받았다"는 어른들 말씀이 더 기분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다르다.
초등학생한테 만 원 주면 작다는 소리 듣는다. 중고등학생은 최소 3만 원, 대학생이면 5만 원은 줘야 체면이 선다. 취업 안 한 조카한테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기준도 애매하다. 작년에 대학 졸업한 조카한테 안 줬더니 형수가 서운해하더라.
설 연휴가 다가오면 나는 슬쩍 계산기를 두드린다.
큰형네 아이 셋, 둘째 형네 아이 둘, 남동생네 아이 둘, 여동생네 아이 둘. 여기까지가 1차다. 그런데 큰형 큰아들이 결혼해서 애가 둘이고, 둘째 형 딸도 결혼해서 하나 낳았다. 점점 복잡해진다.
다 합치면 스무 명 가까이 된다. 평균 3만 원만 잡아도 60만 원이다. 여기에 부모님 용돈, 형제들 선물, 차례 음식 장보기까지 하면 설날 비용이 백만 원을 훌쩍 넘긴다.
이전 직장 다닐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보너스도 있고, 명절 상여금도 있었다. 그걸로 메우면 됐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 사정도 예전 같지 않고, 아이들 학비에 대출 이자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래도 세뱃돈은 줄일 수가 없다.
작년에 줬던 것보다 적게 주면 "삼촌이 형편이 안 좋은가 보다" 소리 듣는다. 그게 싫어서 없는 살림에 쥐어짜서 똑같이 맞춘다. 체면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며칠 전 아내가 한마디 했다.
"올해는 좀 줄이면 안 돼요? 우리도 빠듯한데."
틀린 말이 아니다. 아내는 매년 이맘때면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 막상 설날 되면 나도 아내도 결국 봉투를 챙기고 있다. 줄이자고 해놓고 막상 조카들 얼굴 보면 차마 적게 줄 수가 없다.
아내 말이 이어졌다.
"형님들이랑 의논해서 정하면 안 되나요? 다 같이 만 원씩만 주기로 하자고."
해봤다. 예전에 형들한테 그 얘기를 꺼낸 적 있다. 큰형은 "그래, 그러자" 했는데, 막상 설날 되니까 큰형 큰며느리가 조카들한테 5만 원짜리 봉투를 돌리고 있더라. 나만 바보 됐다. 그 뒤로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세뱃돈의 원래 의미가 뭘까.
어르신께 세배하면 덕담과 함께 주시는 복돈이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담긴 거다. "올해도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어른의 바람이 그 봉투 안에 들어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세뱃돈이 거의 의무가 됐다. 안 주면 예의 없는 사람 취급받는다. 조카들도 세배하러 온다기보다 세뱃돈 받으러 오는 것 같다. 절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봉투 열어보는 아이들 보면 씁쓸하다.
내 어릴 때는 절이라도 제대로 했다.
큰절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고, 어른들 말씀 경청하고. 덕담 듣는 것도 설날의 중요한 순서였다. 지금 조카들은 절하는 법도 모른다. 공수가 뭔지, 큰절과 평절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봤자 듣지도 않는다.
작년 설날에 있었던 일이다.
둘째 형 막내아들이 세배하고 봉투를 받아갔다. 한 시간쯤 지나서 그 녀석이 슬쩍 다가오더니 이러더라.
"삼촌, 저 작년에 5만 원 받았는데 올해는 왜 3만 원이에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작년에는 대학 합격 축하한다고 좀 더 줬다. 그런데 그걸 기억하고 따지다니. 기특한 건지 얄미운 건지 모르겠다. 결국 2만 원 더 줬다. 주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저 녀석 당신 월급이 얼만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텐데."
쓴웃음만 나왔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아예 세뱃돈을 안 받겠다고 하는 집도 있다더라.
"아이들 교육에 안 좋아요", "돈 가치를 모르게 돼요"라면서 세뱃돈 대신 책이나 작은 선물을 원한다고 한다. 좋은 말이긴 한데, 막상 그러면 또 그것대로 신경 쓰인다. 뭘 사줘야 할지, 취향에 맞을지. 차라리 현금이 속 편할 때도 있다.
세뱃돈 문화가 사라지면 어떨까.
솔직히 지갑은 가벼워지겠다. 그런데 또 허전할 것 같다. 조카들이 "삼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절하는 그 모습, 그게 없으면 설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은 부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족이구나' 싶은 느낌이 있다.
올해 설날도 곧 온다.
벌써부터 ATM 앞에 줄이 길어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다들 신권 뽑으러 가는 거다. 나도 조만간 은행 가서 새 돈으로 바꿔와야 한다. 빳빳한 신권으로 봉투 채우는 그 정성까지가 세뱃돈이니까.
스무 명 몫의 봉투를 준비하면서 생각한다.
이것도 언제까지일까. 조카들이 다 결혼하고 취직하면 내가 받는 쪽이 될까. 아니, 우리 세대는 끝까지 주기만 하다 끝날 것 같다. 조카들이 나중에 내 아이들한테 세뱃돈 줄까? 글쎄, 그때쯤이면 세뱃돈 문화 자체가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올해도 줄 거다.
투덜대면서도, 부담스러우면서도, 결국 봉투를 채울 거다. 그게 삼촌이니까. 그게 어른이니까. 지갑은 얇아져도 정은 그렇게 주고받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봉투 속 5만 원보다, 그 봉투 건네는 손의 온기를 조카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늙어서 세배받을 일 없는 노인이 되더라도, "그때 삼촌이 챙겨줬지"라는 말 한마디쯤은 들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