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길에서 미술을 보다.

아마벨의 잔해 미학

by Euri 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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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벨의 잔해 미학

포스코센터 앞 〈아마벨(Amabel)〉은 1997년, 포스코의 의뢰로 스텔라가 제작한 약 7m 높이의 공공조각이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잔해를 절단·용접해 폭발하듯 피어난 꽃송이 형상을 구현한 이 작품은, 세계 철강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서울의 도시풍경을 위한 조형물로 계획되었다.

이 구조물에는 실제 비행기 잔해 수백 점이 사용되었고, 꽃의 이름을 가진 한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잔해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상실이 예술로 피어나는 모순적 아름다움이다.
멀리서 보면 한 송이 꽃봉오리처럼 부드럽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용접 자국과 녹슨 금속 표면이 사고의 폭력성과 파괴의 흔적을 낱낱이 드러낸다.

파괴의 재료가 꽃으로 재탄생하는 이 과정은, 스텔라의 후기 스타일처럼 평면성을 넘어 극단적인 입체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반사면은 도시의 유리와 금속 외벽과 어우러져, 정지된 조각임에도 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 꽃 앞에 서면 이제는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라 아버지의 병실이 먼저 떠오른다.
항암 치료 후 야윈 몸으로 돌아오던 겨울, 차창 사이로 보이지 않던 하늘과 빌딩 사이의 빈틈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마벨〉의 날카로운 선들은 병원의 CT 화면처럼 삶의 날것을 드러내며 나를 붙잡는다.
도시가 숨기려던 예술의 날카로움이, 삶의 연약함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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