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오래 보기 위한 다짐
어쩌면 내 고민의 대부분은 남의 과제로부터 나를 분리하지 못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만에 담임을 맡게 되었다.
주변에는 걱정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설렘을 감추기 위한 방어이기도 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불행이 따라올까봐 두려웠다. 2년간 비담임을 하면서 사무적인 행정 업무를 맡다 보니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속으로 '드디어 탈출!'이라고 외쳤다.
그래서인지 새학기에 만난 아이들이 참 귀엽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조금은 긴장되고 설레는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입가에는 미소가, 마음에는 적당한 긴장이 생긴다.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한 것은 아니지만 3년이면
이들보다는 이곳의 생활에 대해 아는 척할 수 있는 짬이 생긴 것 같아,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3월 중순이면
앞으로도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겠지만
가늘고 오래 보기 위하여
항상 이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서로 지킬 것은 지키되,
적당히 친밀한
딱 그 정도의 관계가 좋다.
물론 흔들리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러고나면 어김없이 왜 그랬지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상황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다시 그때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행동 코칭 전문가의 영상을 찾아서 본다.
그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감정적인 대응은 즉각적이며 어리숙하고,
이성적인 통제와 다정한 제안은 어른스럽고 성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자의 태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그때의 나에게 말한다.
담임반에는 잔소리할 일이 잦다.
하지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누군가를 지적하는 것은 늘 어렵게 느껴진다.
아이의 표정이 어둡거나 일그러지면
집에 와서도 그 얼굴이 머릿 속에 맴돈다.
저 아이가 내일도 같은 모습이면 어떻게 할지 미리 대안도 짜본다. 누군가의 변화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옭아맸다.
어떤 웹툰을 보다가 '과제의 분리'라는 댓글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더 찾아보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과제'이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그것까지 통제하려고 한다면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참 필요한 깨우침이었다고 감탄하며
이 이론을 이끌어낸 아들러님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하라는 조언은 가능하지만, 학생이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것까지 책임지려고 하면 상대의 과제를 침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스트레스 요인의 대부분은 상대의 과제를 내 과제처럼 여기고 좌지우지하려고 한 것에서 왔다.
생각이 정리되자
책상 정리를 한 것처럼
마음이 한결 깨끗해졌다.
말하는 태도도 간결하고 담백해졌다.
그건 내 과제는 다 했다는 후련함이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상대에게 더 책임을 돌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에 '과제의 분리'를 써서 붙여두려 한다.
깨달음이 흐릿해지려고 하면 연습장에 따라 적어보기도 할 것이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 생겼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책임은 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몫을 넘어서지 않도록 지켜볼 것이고
가늘고 길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나와 너를 응원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