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제목처럼 나는 능숙하지 않다.
중학교에서 7년 근무했고, 고등학교에 온지도 올해로 3년차이다. 10년차 교사라고 하면 대개 전문성을 기대하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직도 수업 준비가 오~~래 걸린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육아 휴직 후, 고등학교로 복직했을 땐
너무 떨려서 목에서 염소 소리가 나기도 했다.
발표 불안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수업 내용을 잘 모르는 것이 들통났다는 생각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 적도 많았다.
이상한 맞춤법 실수를 한 날도 있었고,
수업을 마치고 자괴감이 든 날이 많아졌다.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루하루를 견디듯이 힘겹게 버텼다.
언제쯤 준비 없이 능숙하게 수업할 수 있을까 바랐던 적도 있었다. 주변 선생님들은 항상 척척 잘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원 수업에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님 역시 발표 불안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수없이 노출되는 것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발표 불안을 겪는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는 방법은 결국 연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는 여태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잘하게 되기를 바라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 학기 대학원 발표 과제에서도 나는 목소리를 떨며 발표를 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 대본을 적고, 여러 번 말해 보고, 설명을 반복해서 정리했다. 그랬더니 발표 당일, 훨씬 안정된 목소리로 발표할 수 있었다.
발표를 끝마치고 나니 스스로가 만족스러웠다. 나는 여태 요행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준비 없이도 발표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능숙하게 말을 하고 싶다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이제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요즘은 전보다 작품 연구를 깊이 한다. 돌이켜보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는 매번 자신감이 부족한 채로 교실에 들어갔고, 작품을 잘 모른다는 불안은 수업에 여실히 드러났다.
뻔뻔하지 못한 성격 탓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포장하기도 하던데, 나는 왜 그렇게 투명하게 반응할까하고 속상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첫 수업 전에는 공책에, 태블릿에 판서 연습을 반복한다. 임용고시를 공부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
백지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내용들을 계속해서 적어보고, 이 부분을 설명할 때는 어떤 이야기를 덧붙일지 고민한다. 이 과정을 열 번쯤 되풀이하면 자신감이 조금 붙는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 앞에서 설명하는 내 모습이 떳떳했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에는 남의 지식을 읽어주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내 지식을 전달한다는 느낌이 든다.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을 자신있게 쳐다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세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도 수업 준비를 하다 잠깐 쉬면서 쓴 글이다.
지쳐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맞는 말이다.
나는 능숙한 교사가 아니다.
그래서 더 오래 준비한다.
이것이 요즘 내가 새롭게 교실에 서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