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는 어떻게 '교수'가 되는가

진료과가 빚어낸 성격의 초상

by 박지숙

병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20년 넘게 흐르다 보면, 흰 가운 뒤에 숨겨진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전공의 시절, 그저 '착한 선배'였던 그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선택하고 교수의 자리에 오르면, 신기하게도 그 진료과의 질환을 닮은 캐릭터로 변해간다. 마치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환자와 질병이 교수의 성격이라는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것 같다.


심장내과와 중환자팀: 생사의 경계에서 빚어진 평화

심장내과 교수님들은 그들이 다루는 관상동맥 질환처럼 캐릭터가 명확하다. 막힌 혈관을 뚫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지만, 그 이면에는 환자의 심박동을 조절하듯 침착하고 단단한 기운이 흐른다.

반면, 중환자팀 교수님들은 사뭇 결이 다르다. 생의 가장 마지막 정거장에 도착한 이들을 가장 늦게까지 지켜봐서일까. 그들의 뒷모습에선 묘하게 종교적이고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여명의 마지막 순간을 수없이 배웅하며 얻은 달관인지,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전투적이기보다 경건하고 차분하게 환자의 곁을 지킨다.


혈액종양과 신경과: 친구와 무심함 사이

혈액종양내과 교수님들은 환자들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기를 자처한다. 긴 투병의 여정을 함께 걸어야 하기에, 권위의 벽을 허물고 환자의 손을 먼저 잡는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의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의 따스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에 반해 신경과 교수님들은 어딘지 모르게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아마도 치매나 인지기능 장애로 인해 본인의 의사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며 생긴 일종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툭툭 내뱉는 말투 너머에는 뇌라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그들만의 고뇌가 숨겨져 있다.


정신과와 감염내과: 열린 귀와 느긋한 걸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들의 방은 늘 고요하다. 그들은 입을 열기보다 귀를 여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들 같다. 환자의 엉킨 마음 타래를 풀기 위해 조용히 기다릴 줄 안다. 결코 공격적이거나 전투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치유가 된다.

마지막으로 감염내과 교수님들에게선 특유의 느긋함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단판 승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다. 느릿하지만 정확한 걸음으로 병동을 누비며, 눈앞의 폭풍우보다 그 뒤에 올 평화를 먼저 내다보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소아과: 아기 같은 미소로 병동을 밝히는 상냥함

소아과 교수님들은 그야말로 천진난만함과 따뜻함의 화신이다. 아기 같은 목소리와 상냥한 미소로 아이들의 두려움을 녹이고, 환자의 부모에게도 위안을 준다. 작은 손을 잡고 눈높이를 맞추며, 누구에게나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가는 모습은 병동을 밝히는 햇살 같다. 긴 하루 속에서도 장난기와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그들의 존재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꼭 필요한 온기를 더한다.


질병이 빚어낸 성격, 그 안에 담긴 사명감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 했던가. 착했던 전공의 선배들이 이토록 개성 강한 교수로 변해가는 것은, 결국 환자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결과일 것이다.

간호사로 근무하며 마주한 수많은 교수님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그 변해버린 성격의 밑바닥에는 환자를 향한 동일한 무게의 책임감이 흐르고 있었다. 진료과에 따라 성격은 변했을지언정,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생명'의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았음을 나는 믿는다.

이전 08화숨을 선물하는 시간: 루게릭 환자의 가래를 뽑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