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위버멘쉬 지침서>-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

by 번뇌즉보리

언제나 어깨가 무거운 건담 신작, 이번에야말로?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프랜차이즈는 벌써 사람으로 치면 5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서브컬처 판에 있어서는 할아버지를 넘어 대장로라고 해도 좋을 격이며, 지팡이 굿즈가 출시될 나이가 된 시리즈(마징가, 겟타 로보, 철인 28호)와 연배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과 건담 시리즈의 다른 점은 역시 갖은 후속작들과 그 히트로 인한 롱런입니다. '슈퍼로봇대전' 원년 멤버인 마징가 Z와 겟타 로보는 그 신작이 팬들의 추억과 그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반면 건담은 여전히 서브컬처 시장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럴 만한 요소가 있는 작품이며, 그렇기 때문에 팬들의 지지가 몇십 년이나 이어지는 것이겠죠. '기동전사 건담'이 쌓아 올린 기라성 같은 가치와 업적은 분명 모든 서브컬처의 귀감입니다. 하지만 뭐든 너무 높게 쌓으면 점점 더 쌓기 부담스럽고 위태로워집니다. 불과 몇 년 전의 건담 시리즈는 그러했으며, 어쩌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일 수 있습니다.



지쿠악스 이전의 TV 시리즈 건담은 철혈의 오펀스와 수성의 마녀입니다. 두 작품 모두 건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세계관인 우주세기에서 벗어난 작품입니다. 어차피 우주세기는 <기동전사 건담 UC> 이후 마땅히 영상화할 작품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제작해 봤자 리메이크나 외전 작품의 형태가 됩니다. 그야 F91을 거쳐 V건담까지 우주세기의 장대한 서사는 큰 줄기째 막을 내렸으니까요. 좌우지간 철혈의 오펀스는 흥행과 작품성 두 부분 모두에서 썩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저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밈으로 접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 역시 작품을 본 적 없기에 무어라 섣불리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수성의 마녀는 철혈의 오펀스에서의 실패를 개선하고 새로운 건담 시리즈를 개척하기 위한 도전적인 시도였습니다. '전쟁과 청소년'이라는 건담 시리즈의 핵심 요소에서 '전쟁' 쪽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으나 그 비중을 많이 축소시켰습니다. 물론 청소년들의 내면과 정신적 성장,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을 다루며 그것에 전쟁이 얽혀 있다는 큰 골자는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필두로 시리즈 사상 전례가 없었던 GL 커플링을 밀어 주는 것, 새로운 시도가 잔뜩 들어간 주역 기체 에어리얼의 디자인, 우주세기며 은하 전체를 아우르는 전쟁에서 벗어난 서사, 그리고 당시 초 인기 가수 YOASOBI를 데려다 오프닝을 제작한 것까지 기존 건담 시리즈와 상당히 다른, 이색적인 시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시리즈의 기존 팬인 저 같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건 '작정하고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큰 결심을 했구나'입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며, 작품과 나아가 스폰서며 기업들이 존속하기 위해서 당연한 일입니다. 저 또한 제가 좋아하는 작품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실제로 수성의 마녀의 초반 화제성은 굉장했습니다. 건담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로봇 만화로 생각될 법한 오늘날, 건담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시리즈 기존 팬들을 위한 요소도 잊지 않았던 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수성의 마녀를 보면 기존 건담 시리즈에서 나온 대사나 플롯, 캐릭터의 오마주가 상당 부분 존재합니다. 건담 시리즈를 통틀어 존재하는 '가면을 쓴 사람'의 클리셰를 제외하고도 기존 팬들이라면 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요소가 가득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수성의 마녀는 기존 팬들과 신규 팬들 모두를 챙겨 작중 주제였던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을 시사하듯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한 작품이었습니다. 건담 시리즈의 전통과 서브컬처 콘텐츠로서의 혁신을 동시에 챙기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성의 마녀 역시 후반부 들어 비판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다양한 말들이 있지만 결국 철혈의 오펀스와 비슷하게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시리즈에 기대하는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이겠죠. 사람마다 비판하고자 하는 점이 다르니 제가 일일이 읊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제성과 흥행은 별개의 요소입니다. 수성의 마녀는 도전, 시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만 역시 초반의 열풍을 후반까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철혈의 오펀스나 수성의 마녀의 대대적인 흥행 실패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건담 시리즈는 우주세기를 다시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팬들이 원하는 것이 우주세기이니 응당 그렇게 하여야 마땅한 것이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우주세기라면 어느 정도의 안정을 갖고 들어가는 것이니 앞으로도 우주세기 작품은 꾸준히 나올 것입니다. 다만 우주세기니 비우주세기니를 차치하고 위 두 작품의 선례 이후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시리즈 자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대답은 오늘 리뷰할 <기동전사 건담 GquuuuuuX>를 통해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해결책은 멀티버스?!



한동안 '멀티버스'라는 키워드가 영화계나 서브컬처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인기 많은 마블 작품에서 주구장창 다뤄지는 것, 그리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흥행 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리즈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 지쿠악스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화제성과 가치는 제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설명하고 있으니 제가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극장에서 본 입장에서는 뛰어난 작화와 좋은 서사, '멀티버스'가 주는 설렘과 즐거움을 백 퍼센트 표현해 낸 명작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대비와 채도가 강렬한 카툰 풍 컬러감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도 어쩐지 지쿠악스와 닮은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지쿠악스는 우주세기의 멀티버스, 대체역사물로 기획된 작품입니다. 현재 건담 시리즈에 있어 이보다 좋은 솔루션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잘 만든 캐릭터의 캐릭터성(아무로와 샤아)을 비롯하여 옛 작품 속 명장면과 가치에 힘입어 긴 세월 존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입니다. <기동전사 건담 UC> 속 시간 여행 장면에서 팬들의 가슴이 마구 뛰었던 것도,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에서 아무로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하사웨이의 마음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울렸던 것또한 그 증명입니다.



건담 시리즈는 '이제껏 자신들이 쌓아올린 훌륭한 작품성과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좋고 시리즈 팬들에게도 환영받는 양상입니다. 퍼스트 건담을 비롯하여 40년이 다 된 제타 건담이나 역습의 샤아는 지금 봐도 세련된 작품이며 이것이 시사하고자 하는 바와 캐릭터성, 세계관은 여전히 건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사람이란 연차가 오래될 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지기 마련이며 건담 팬들도 마찬가지이니 소위 말하는 '옛날 것이 좋았지'식의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럴 만한 마스터피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상황 속에서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우주세기, 그것도 퍼스트 건담의 멀티버스는 팬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기 충분한 주제였습니다. 당장 여성 주인공이 나오고 1화부터 동성 결혼이 튀어나오는 수성의 마녀보다도 건담을 탈취해 탑승하는 샤아가 훨씬 오타쿠들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샤아가 건담을 뺏어 탔다면?'이라니, 정말 팬들 사이에서 농담조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냈다는 점이 참 좋네요. 모든 창작의 시작은 이런 사소한 포인트를 캐치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노 히데아키와 츠루마키 카즈야 특유의 괴짜같은 성향이 멀티버스와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제타 건담 제작 비화에서 주인공 카미유 비단의 오디션에 참여했던 성우 토비타 노부오는 '건담은 이미 잘 끝난 시리즈인데 왜 후속작을 더 만들려고 하느냐'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가장 완벽한 건 퍼스트 건담이며 잘 쳐 줘도 제타 건담을 통해 우주세기 건담이라는 시리즈의 서사는 더 말할 것 없이 종결됐습니다. 스폰서의 요구를 비롯한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더블제타며 역습의 샤아 등 후속작이 제작됐습니다만 역시 그쯤에서 잘 끝났어야 하는 시리즈입니다. 작품성과 서사 모두 그렇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럼 잘 만든 서사랑 세계관 한번 더 쓰면 되겠네!'의 가장 훌륭한 접근 방식이 멀티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왜 GquuuuuuX를 그렇게나 기대한 건데?



본 리뷰에 앞서 저는 지쿠악스에 대해 엄청나게 호의적인 입장임을 밝힙니다. 그 이유는 글을 써내려가며 수도 없이 밝힐 것이지만, 글의 이 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로 똘똘 뭉쳤다'는 것입니다.


안노 히데아키(좌) 츠루마키 카즈야(우)


오타쿠의 바이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와 <프리크리>의 감독 츠루마키 카즈야가 동시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설렐 이유는 충분합니다. 실질적으로 안노가 참여한 부분은 작품 초반, 샤아가 제크노바로 사라지기 전의 UC 0079년 시점의 이야기라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애초부터 건담의 광팬으로 유명한 안노가 건담을 뺏어 탑승하는 샤아를 그리며 얼마나 즐거워했을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한편 본작의 감독 츠루마키 카즈야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속 일부 에피소드며 캐릭터 디자인(특히나 아스카의 아버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을 도맡은 것을 시작으로 프리크리나 톱을 노려라! 2 같은 훌륭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감독했습니다.


좌측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 <프리크리>, 타케의 일러스트


더하여 본작의 캐릭터 디자인은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를 필두로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여러 NPC 디자인을 맡은 타케입니다. 제가 최고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의 감독이 참여한 데다가 캐릭터 디자이너마저 제가 좋아하는 작품의 디자이너라니, 저는 지쿠악스의 팬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 제 기대치는 최고조였으며 무한한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프닝 곡은 또 요네즈 켄시죠. 저뿐만 아니라 오타쿠라면 누구든 '어?' 할 법한 구성입니다. 눈길을 끌기 위해 절치부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그리고 눈길을 끌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하는 식으로요. 캐릭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요네즈 켄시가 부른 오프닝 곡이 좋아서, 에반게리온 팬이어서 등의 이유로 생전 건담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지쿠악스를 봤다가 샤아 아즈나블에게 감겨 건담 시리즈의 팬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아저씨들의 추천 메뉴처럼, 오래 됐을 뿐이지 먹어 보면 일단 맛있는 것을 잘 포장해 권하기에 이만한 수단은 없습니다.


작품 내용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주절주절 이만큼 왔네요. 이제 지쿠악스의 작품 내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래로 스포일러 주의!




새로운 시대의 뉴타입, 그리고 위버멘쉬



지쿠악스는 기존 퍼스트 건담의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건담', 나아가 ' 새로운 시대의 뉴타입'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역시나 가장 큰 줄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입니다. 건담 시리즈의 기본은 청소년이 전쟁에 휘말리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전쟁 중심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것은 G건담이나 건담 W에 들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는 방법론에서 벗어난 건 지쿠악스 이전 최신작인 수성의 마녀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는 전쟁을 직접 보고 전후 세대의 아픔을 느낀 사람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기동전사 건담>을 통해 녹여냈습니다. 전쟁은 결국 모두를 상처입힐 뿐이고 인류에게는 더 나은 방식으로 소통하고 미래로 나아갈 방법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뉴타입론을 위시로 한 우주세기 작품 전체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이 건담 시리즈 자체를 관통하는 개념이긴 합니다만, 이 역시 요즘 시청자들에게는 어필하기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전쟁을 영화나 만화 등의 매체로밖에 접해 본 적 없는 세대에게 전쟁의 아픔을 주장해 봐야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후 세대라는 말도 요즘 시청자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건담 세계관 속 인류의 반이 죽어나간 끔찍한 전쟁, 일년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시사하기보다는, 샤아와 아무로가 박터지게 싸운 장대한 우주전쟁이라는 컨텐츠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꼭 전쟁이 있어야 하고, 전쟁의 아픔을 전달하여야 건담 시리즈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특히나 건담 시리즈의 존속을 위해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키려면 전쟁과는 좀 더 다른 접근 방식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램의 참가자처럼 확실하게 어필될 수 있는 재료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놓인 츠루마키 카즈야, 그가 선택한 것은 '청춘'과 '뉴타입'입니다.



우선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건담 시리즈의 큰 전통은 주인공이 소년소녀라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성장을 묘사하기에 있어 좋기도 하고, 말 그대로 시리즈 전통이니까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건담 시리즈의 타겟은 '일단' 어린이 내지는 청소년층이기 때문입니다. 건담을 통해 전개하는 주요 사업은 역시나 건담 프라모델(건프라)이며 이것을 십대에게 계속 판매할 수 있도록 광고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점점 건담이 갖는 콘텐츠의 힘이 십대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팬들이 들어오기는커녕 기존 팬들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사실을 건담 팬이라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십대에게 건담이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거대로봇물 자체가 트렌드에서 멀어진 것도 있고, 이미 세계관이 너무 장대하니 머리가 아파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십대에게는 멀기만 한 개념인 '전쟁' 이야기를 주구장창 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건담이니 작품성을 위해서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는 여기에서 벗어나 십대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프라모델을 구매해 주고 굿즈를 구매해 줄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과업이니까요. 이를 바탕으로 어린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방영했던 AGE가 크게 망하며 반다이 자체가 휘청거린 이후, 이 접근에 있어 선라이즈와 반다이는 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감독으로 츠루마키 카즈야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이 상황에 적합한 솔루션이니까요.



츠루마키 카즈야는 이미 '청춘과 소년소녀의 성장'이라는 주제에 있어 두말할 것 없는 명작 <에반게리온>과 <프리크리>를 감독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단순히 이 주제에 익숙하고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는 이유만으로 건담 신작이라는 무거운 자리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츠루마키 카즈야의 강점은 그 묘사의 방식에 있습니다. 요즘 하는 소리로 '도파민 폭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는 오타쿠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캐릭터 메이킹과과 연출 등 전반에 강점을 보입니다. <에반게리온>에서 수많은 오타쿠의 이상형 아스카 랑그레이를 만들어냈고, <프리크리>에서는 정신 사나울 지경이지만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화려한 연출에 도가 텄음을 증명했습니다. 청춘, 즉 유스 컬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시에 도파민 가득한 연출을 통해 즐거운 작품, 나아가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츠루마키 카즈야만큼 좋은 감독은 또 없을 것입니다.



츠루마키 카즈야가 주인공인 십 대 소녀 아마테 유즈리하의 눈과 입을 빌려 묘사한 지쿠악스의 세계는 청춘이 가득했습니다. 우주에 떠 있는 콜로니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며, '진짜 바다를 느껴 보고 싶다'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주인공부터가 그렇습니다. 그 무렵의 학생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랑과 우정 사이의 삼각관계,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자극인 클랜 배틀, 학업을 바라는 부모님과의 갈등, 이런 요소들에서 비롯되는 청소년기의 충동 등 도파민 가득하면서도 기존 건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냐안을 통해서는 진로나 난민, 나아가 전쟁 후 사람들의 삶에 대해 묘사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연출 방식에 있어서 츠루마키 카즈야 특유의 센스와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 OST 활용 등이 합쳐져 오타쿠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지구나 우주의 전쟁과 평화, 인류의 미래 등에 대해 다루던 기존 건담 시리즈와 비교하여 포커스가 많이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주에서 인간 내면의 우주로 넘어갔다고 해도 좋을 만큼요. 작중 뉴타입적 교감인 '키라키라'가 그렇게 묘사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기존 시리즈가 갖고 있던 전쟁이나 이념 같은 광범위한 의식으로부터 개인이라는 미시적 영역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특히나 청소년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건담이 되고자 노력한 것이 보입니다.


다음으로 '뉴타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뉴타입이 무엇인지는 건담 팬 분들이라면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감이 조금 좋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에이스 파일럿의 상징까지, 건담 내에서 뉴타입은 정말 폭넓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샤아나 아무로 등 주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뉴타입'하면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위험한 상황에서는 특유의 효과음과 함께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간파해내는 괴물 파일럿'과 같은 인식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건담이 '로봇을 타고 싸우는 만화'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는 일이 잦았을 뿐, 창시자인 토미노 요시유키의 생각 속 뉴타입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새로운 형태' 쪽에 더 가깝습니다.



뉴타입의 본질이란 초인적인 직감으로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도, 퍼스트 건담의 마지막에서 화이트베이스의 크루가 뉴타입 능력으로 아무로에게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제타 건담에서 크와트로가 인류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길 바란 방향에 더 가깝습니다. 퍼스트 건담을 제작하며 토미노는 '전후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인류'에 대한 기대와 이상을 담아 뉴타입 개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서로를 증오하고 상처 입히기보다 초인적이지만 직관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신인류, 그 상냥함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인류의 지향점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늘어나고 토미노가 감독하지 않는 우주세기도 늘며 이러한 뉴타입의 개념은 앞서 말한 것처럼 희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타에서도 주인공 카미유의 정신이 무너지며 뉴타입을 살인 병기로 곡해하는 것을 본 크와트로가 슬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토미노가 이런 상황마저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뉴타입 실패론'은 시간이 흐른 뒤 <기동전사 건담 F91>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더욱 자세히 나타납니다.


예전에 말야, 뉴타입이라는 모빌슈트 전문가들이 있었대. 하지만 대개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었다나봐.

토미노의 페르소나인 샤아(크와트로)가 인류가 스스로를 갱생시킬 희망으로 여긴 뉴타입은 후대에 들어 '모빌슈트 전문가' 정도로만 여겨지고 그 개인의 불행함을 동정받는 처지입니다. 물론 F91이나 V건담을 통해 뉴타입처럼 거창한 개념을 들지 않았을 뿐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는 있습니다. 기대와 실패가 엇갈린 뉴타입, 하지만 건담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너무나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앞으로 십 년 후든 이십 년 후든 건담에서 계속 다뤄질 뉴타입 개념에 있어 지쿠악스는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지쿠악스의 핵심이 되는 <키라키라>입니다. 문자 그대로 반짝반짝한 아공간에서 상대방과 교감을 나누는 일련의 행위를 칭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 키라키라를 통해 서로를 느끼고 이해합니다. 키라키라가 아니더라도 본작에서 여러 등장인물들이 뉴타입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뉴타입의 본질이나 다름없는, 인지를 초월한 이해와 소통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이것을 통해 작품 속 핵심 갈등이 해결되기도 합니다. 막연하고 논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우리 삶은 때때로 논리보다도 충동과 감정으로 굴러가기 마련입니다. 입력과 출력이 늘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수학처럼 공식이 있으며 언제나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퍼스트 건담과 제타 건담에서 강조된 뉴타입의 원론으로 돌아간 것, 서로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상냥한 힘을 시사하는 것이요. 그리고 이 뉴타입 능력과 함께 주인공 아마테 유즈리하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저로 하여금 어느 철학자의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일생을 들여 역설한 '위버멘쉬'입니다. 각종 음악이나 매체 등을 통해 여전히 회자되고 있기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초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슈퍼맨과는 다릅니다. 위버멘쉬가 무엇인지 제대로 논하려면 글의 주객이 전도될 것만 같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위버멘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극복하려 하며, 자신의 의지와 목표에 따라 살아가며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온전히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니체는 신을 비롯한 외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세상에 맞서고 자신에 맞서는 강인한 존재를 인류의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최종화에서 아마테가 당당하게 외친 말들은 이 위버멘쉬와 제법 상통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려 하는 의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 그 자체로 강해져 세상에 맞서려 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목표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을 볼 때 너무나도 벅차올랐습니다. 저 역시 강해지고 싶다고, 타인이 나를 지켜 주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마냥 뉴타입=위버멘쉬로 대입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뉴타입에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가 있으니까요. 바로 이해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사람들은 더욱 나아질 수 있습니다.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않는 삶은 너무나도 슬플 것 같습니다. 그런 외로움에 휘청거리는 것이 위버멘쉬가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우리는 건담을 즐기는 것이지 위버멘쉬가 되는 법을 배우려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지쿠악스를 통해서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냐안과 아마테가 화해했던 것처럼, 슈우지에게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아마테처럼요. 결국 지쿠악스는 전후=미래 세대를 살아가는 아마테와 그 친구들, 그리고 '건담'이 벌써 50살이 다 되어가는 그 이후 세대를 살아갈 우리 시청자들이 이런 방향으로 성장해나갔으면 한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더해 니체의 어느 철학적 개념을 여기에 더 끌고 올 수 있습니다.


니체는 위버멘쉬를 향한 인간 정신의 변화 양상을 세 단계로 나타냈습니다.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낙타는 그저 타의에 의해 무거운 짐을 견뎌내며 사막을 건너는 수동적인 정신입니다. 메마른 사막과도 같이 고단한 규범 속 세상을 묵묵히 살아갑니다. 사자는 그 삶에 끌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스르고자 하는 자유 의지를 갖는 단계입니다. 우렁찬 포효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며 저항과 파괴의 정신을 내보입니다. 기존의 세상을 부수려 하는 도전 자체는 낙타에서 한 단계 진보하였으나, 그것이 과연 긍정적이며 즐거운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으나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삶의 기쁨이란 반항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기뻐하기 위해서는 삶 그 자체를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찾기 위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 종착지는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낙타처럼 따라야 할 규율도, 사자처럼 반항해야 할 대상도 없습니다. 그저 삶 그 자체가 모두 새롭고 즐거우며 자신을 긍정하는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모래성을 쌓는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린아이의 상태이며 도달해야 하는 곳입니다.


지쿠악스 속 아마테의 성장은 이 단계를 철저히 거쳤습니다. 부모님과 학교에 순종하며 살아가던 낙타의 단계, 슈우지와 지쿠악스를 만나 클랜 배틀에 참여하며 부모님과 세상에 반항하는 사자의 단계,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강해질 것을 다짐하며 슈우지를 향한 사랑을 전하는 어린아이의 단계까지. 아마테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신인류, 즉 뉴타입들이 가져야 할 위버멘쉬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마츄의 성장에 설레고 가슴이 벅찬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제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대략은 이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드는 의문도 있을 것입니다.


왜 맨날 성장하라고 하는 건데?


안노 히데아키의 대표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결국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츠루마키 카즈야의 대표작 <프리크리>는 소년의 청춘이 사랑을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지쿠악스는 이 두 감독이 모두 참여한 작품답게 둘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청소년이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서사이며, 역시나 '왜 이 녀석들은 매번 성장하라고 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좀 더 선명하게 오타쿠 층을 저격하였던 것과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지쿠악스도 어김없이 성장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자 합니다.


결국 사람의 삶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기나긴 세월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나 게임도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지고, 그렇게 좋아하던 가수가 어느 순간 더는 가슴 설레지 않고, 좋아하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등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많이들 느끼셨을 것이며, 지금 그렇지 않은 것들이라도 살다 보면 맞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예정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 순간 자체와 그 속에 놓인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 바깥의 세상에도 관심을 갖고 이해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넓혀 가며 나아가 삶 자체를 아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작중 아마테가 ‘건담’을 중심으로 굴러가던 자신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며 한층 성장한 것처럼요. 결국 또 오타쿠들에게 한 소리 하는 양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건담 시리즈면서 건담에서 벗어나라는 게 무슨 헛소리냐 싶겠지만 이쯤 하면 그 두 감독의 시그니처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한편 주인공 아마테가 지쿠악스라는 일탈을 통해 성장한 것처럼, 건담 오타쿠들도 기존 건담 시리즈에게 있어 일탈이나 다름없는(도파민 폭발, 에반게리온 느낌, 뒤죽박죽 서사에 또 그 메시지) 지쿠악스를 통해 성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자극이야말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 열정을 키워 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기동전사 건담 GquuuuuuX>를 단순히 도파민 투성이 용두사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도파민 투성이라는 그 특징 자체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서브컬처가 자극적이고 즐겁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껏 줄줄이 설명한 일련의 메시지들도 결국 재미있는 만화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계에서도 종종 나오는 말이지만, 메시지만 남는 작품은 아쉽기 마련입니다. 지난번에 리뷰한 <메타포: 리판타지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다른 요소들을 모두 만족하며 메시지까지 챙긴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문화 예술이 하나의 메신저로 수단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 본연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감독이 하고 싶은 말도 잘 담아낸 지쿠악스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츠루마키 카즈야는 <프리크리>로부터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네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며 또 그 즐거움을, 긍정적인 에너지를 작품을 통해 세상 모두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 창작을 지망하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고 Fooly하며 Cooly할 츠루마키 카즈야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이다음엔 <톱을 노려라! 2>도 볼 생각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곳으로



지쿠악스를 본 뒤에 접한 밈인데, 참 적절해서 많이 웃었습니다. 정말 이 사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기동전사 건담 GquuuuuuX>에게서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보셨나요? 그 만족도야 개인마다 다를 것이지만 지쿠악스 자체는 건담 시리즈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강심제를 쓴 것처럼 시리즈에 새 생명을 부여했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건담도 있을 수 있구나'를 상업성 잃지 않으며 너무나도 잘 보여줬습니다. 물론 새로운 시도야 계속 있어 왔지만서도, 시리즈 전체를 대표하는 전통을 잃지 않으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존 팬들과 새로운 팬들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신작이라니, 역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나 좋았던 점은 주요 캐릭터들 또한 죽음으로 인해 미래가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갔다는 점입니다. 마츄와 냐안은 슈우지를 향해 갈 것이고, 에그자베와 샤리아는 새로운 지온을 지켜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샤아는 라라아와 만나 그 어떤 매체에서도 실현될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죠. 시리즈 팬으로서 이보다도 더 흐뭇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 또한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을 줍니다. 모쪼록 <기동전사 건담 GquuuuuuX>에게서 받은 이 힘을 좋은 쪽으로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본작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성장을 통해서 말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제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제 삶의 이 타이밍에 나와 줬다는 사실에 고마울 지경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서브컬처 리뷰도 다시 쓸 수 있게 됐으니까요. 실은 2월 쯤에 어느 작품의 리뷰를 쓰다가 임시 저장만 해 둔 채 무기한으로 미루고만 있었습니다만, 그 작품 역시 '써야만 한다'는 낙타의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쿠악스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고, 또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주저리주저리 두서없는 글이 됐지만 그마저도 제가 즐거웠으니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멈춰 있던 다른 리뷰들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힘, 동기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성장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었던 지쿠악스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이제 반도 안 남은 2025년 다들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늘 행복하세요! (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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