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알고리즘 양식장에서 벗어나는 방법

by 온설


아침 조회시간 전, 이른아침 교실 창가에 앉아 핸드폰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손가락은 깃털보다 가볍게 화면을 튕겨 올리지만, 그 속도는 무서울 만큼 빠릅니다. 0.5초마다 바뀌는 화려한 영상과 자극적인 자막들. 그 끝없는 스크롤 속에서 아이들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멍해져 있습니다. 이른바 ‘쇼츠(Shorts)에 절여진 뇌’를 마주하는 것은 이제 교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은 두 가지 거대한 파도에 동시에 휩쓸리며 사유의 조난을 당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1. [속도의 문제] 여백을 지워버린 사유의 가뭄


첫 번째 파도는 '속도'입니다. 본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와 나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는 행위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에서 우리는 비로소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 속에서 비로소 나만의 사유와 창조적 사고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는 그 찰나의 여백을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0.5초의 틈도 없이 밀려드는 정보는 뇌가 정보를 소화할 기회를 박탈합니다. 생각할 틈이 없으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어 기제는 자꾸만 무장 해제됩니다. 지식은 넘쳐나되 생각은 말라가는, 지독한 '사유의 가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2. [방향의 문제] 사유가 멈춘 틈을 파고드는 '가두리 양식장'


사유의 틈이 메워진 자리에 두 번째 파도인 편향이 들이닥칩니다. 바로 알고리즘이라는 ‘가두리 양식장’입니다. 알고리즘은 다정하게 속삭입니다. “네가 좋아할 만한 건 이거야.” 여백이 사라져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라면, 아이들은 이 양식장이 제공하는 먹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얼마 전, 아이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이 특정 역대 대통령을 비하하는 조롱 섞인 표현을 유행어처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역사적 지식이 있었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여백이 사라진 뇌로 알고리즘 양식장이 던져주는 자극적인 '밈(Meme)'을 거부감 없이 삼켰을 뿐입니다. 주체적인 판단 없이 ‘재미’라는 명목 아래 혐오를 학습하는 아이들. 속도에 취해 방향을 잃은 이 모습은 사실 우리 시대 모든 부모와 교사가 함께 겪어내야 할 무거운 숙제입니다.



3. [현실적 고민] 함께 나침반을 들여다보는 시간


사실 저 역시 15년 차 교사이기 이전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쇼츠와 전쟁'을 치르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전두엽이 한창 공사 중인 사춘기 아이들에게 도파민을 폭격하는 기술을 의지만으로 이겨내라는 건 무리일 수 있습니다. 이건 아이의 의지가 약해서도, 부모의 훈육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수조 원을 들여 중독을 설계한 거대 기술에 우리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뿐입니다.

그러니 자책하기보다, 아이의 손목에 ‘사유의 부표’를 함께 달아준다는 마음으로 작은 시도들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시스템의 의도 읽어보기: 알고리즘은 비서가 아니라 나를 붙잡아두려는 '영업사원'이라는 점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 봅니다. 함께 '기록 삭제' 설정을 해보며 화면이 변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기술의 '의도'를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합니다.


관점의 균형 잡아주기: 같은 이슈라도 매체마다 사용하는 단어가 어떻게 다른지 숨은그림찾기처럼 찾아보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가 깨어납니다.


질문 던져보기: 정보의 내용보다 '누구의 목소리일까'를 묻게 합니다. "이 말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 하나가 선동의 파도에서 아이를 지켜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공감하며 곁에 있기: "그만 봐"라는 통제 대신,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을 옆에서 잠시 같이 봐주는 건 어떨까요. "이게 왜 재밌어?"라고 묻는 관심이 아이의 마음 문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결론: 멈춰 설 수 있는 용기


우리는 흔히 스마트폰을 압수해 아이를 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탈출은 아이 스스로 가두리의 경계를 자각하는 순간 시작될 것입니다. 아이가 특정 조롱에 휩쓸리는 것은 어쩌면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거나 정의롭고 싶어 하는 그 순수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귀한 마음을 나무라기보다, "네 마음이 누군가의 도구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진심을 전해 보려 합니다.


스크롤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는 그 0.5초의 여백. 그 용기야말로 알고리즘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완벽한 설계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와 함께 이 거친 바다를 함께 건너겠다는 어른으로서의 각오와 방향성, 노력으로 우리는 아이에게 가장 다정한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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