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호는 건너갔고,
나는 아직 서 있다.

01 영화 '폭탄'

by 무비

한국에서 아직 극장 상영 중인 '폭탄'이 일본 넷플릭스에 올라와서 보게 되었다.

일본에 살아서 아직 '왕과 사는 남자'를 못 보는 게 아쉬운 참에 바로 리모컨을 눌렀다.


일본 영화에 대해서는 크게 감상평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어서 이다.

차라리 전혀 모르는 외국영화면 그 부분을 포기하겠는데 들리는데 모르는 척하기 어렵다.


일본의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이 특이해서 같은 말이라도 앞 문장이 끝나는 것에 따라 생략된 언어가 다르다.

겉마음(다테마에)과 속마음(혼네)이 다른데 그걸 그 사람의 캐릭터까지 대입해서 유추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속마음은 좋게 말해 이성적, 우리 표현으로 말하면 아주 차갑다.


일본에서는 가장 차가운 거절이 가장 예의 바른 문장 속에 숨어 있을 때가 있다.

“그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의 끝에서 나는 종종,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문장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일본 영화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이 한국에서는 없거나 모르는 감정인 경우가 있어서 애써 설명을 해도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경우가 많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글솜씨가 신통치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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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오승호. 1981년생.


재일교포라는 단어에는 익숙한 이미지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오승호의 글에는 그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잘 쓰는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취미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콜센터 관리자로 일하면서 주 3일 쉬는 날에 글을 썼다. 그리고 데뷔작으로 일본 최고 권위 추리문학상을 받았다.

재일교포라는 정체성이 그의 글 어디에도 무게로 얹혀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는 재일 한국인은 서투른 한국 말투, 매너가 바르고 깔끔한 복장 같은 이미지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일본이라는 섬에 살면서 터득해 온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빠칭코가 그걸 잘 그려냈었다. 차별과 박해와 멸시 그리고 강한 생명력.

그 트라우마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이야기.


서두에 말했듯 일본인은 속마음이 존재하니 함부로 생각을 드러낼 수 없다.

드러내고 난 후과로 목숨과 관계가 있었던 몇 차례의 사례가 있었고 그 과정을 지나며 생긴 트라우마가 본능적으로 남아있다.


이걸 주변인으로 긴 시간을 지켜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아버지 수저 들 때를 기다리는 아주 사소한 식탁 예절부터 개업식에서 돼지머리를 올리고, 제사상에 절하는 것까지 우리나라에서 조차 흐려져 가는 것들을 지키려 한다.

내 나라에 살지 않지만 내 나라를 의식하고 버텨온 존재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한다.

인식이 달라진 지금의 한국이 아닌 시기부터 버텨온 것이다.


그들에게서 보이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선 바로 멸시나 동정으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이곳에 뿌리박은 재일 한인들에게는 둘 다 원하지 않는 감정이지만 어느 쪽이던 수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오승호 작가는 이 세대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폭탄이라는 소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재미도 있지만, 이 소설 전반이 메스 보다도 더 날카롭게 일본인의 폐부, 밑낯과 속마음에 무영등을 비춘다.

속마음이 해부실 현미경 아래 놓인 일본인들은 타인의 시선일까 잠시 혼란스러웠겠지만 이내 나의 이야기임을 인정하였다. 자이니치 3세의 시선이 아니다.


소설도, 영화도 폭탄처럼 산산이 퍼져 무엇이 처음의 모양이었던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모양을 찾아 한 조각씩 조각모음을 한다.

조각이 맞춰질수록 인간의 추악한 모습과 욕망의 편린이 나타난다.

그 안에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없다.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는 인간의 군상이 있을 뿐이다.


2001년 영화 GO의 주인공은 말했다.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떠다니는 부초라고.


오승호는 그다음 세대다. 그리고 그는 그냥 쓴다.

경계선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세대. 그가 보여주었다.


나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다.

재일교포 3세와는 다르다. 선택해서 온 사람이다.

그런데 경계선 위에 있다는 감각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가면 일본 사람 다 됐다는 소리를 듣고, 일본에서는 영원히 외국인이다.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나만 아직 경계선 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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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두 편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글과 배우에 관한 글.

하나의 영화에서 두가지 글을 쓰게 되는 건 처음이라 보고 싶은 방향만 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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