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 흔적
지수 : 흔적
새벽 2시.
유진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연은 기다리다 지쳐 먼저 잠들었고, 나는 뒤척이다가 새벽 어스름이 창가에 내려앉을 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쏴아아...
물소리가 들려왔다. 꿈결인 줄 알았다. 욕실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유진 언니가 걸어 나왔다.
돌아왔다.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진 지 스물네 시간 만에.
내가 깬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새벽빛을 받은 뒷모습.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피로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다녀온 사람의 긴장이 풀리는 방식이었다.
언니는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고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희미한 LED 불빛이 관자놀이 부근에서 파랗게 점멸했다.
헤드셋을 쓸 때 — 머리카락을 올리는 손이 목 뒤를 스쳤다.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손가락이 목덜미의 한 지점을 누르듯 만졌다가 지나갔다. 습관처럼.
"후으... 혜인... 아..."
언니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 혜인. F-71.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댄 언니의 얼굴이 이완되어 있었다. 고통인지 안도인지 알 수 없는 표정. 무언가를 다시 느끼고 있는 사람의 얼굴.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거실로 다가갔다. 언니가 황급히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지수...?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좀 됐어요."
언니가 고개를 떨구었다. 깊은 한숨.
"미안해. 깨울 생각은 없었어."
"그거 뭐예요?"
헤드셋을 가리켰다. 은색으로 빛나는 매끄러운 디자인.
"신세틱 링크. 감각 신경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캡처해서 다른 사람의 뇌로 전송하는 장치."
감각 신호 전송. T-오가넬이 포획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에너지.
"송수신만 하는 게 아니야. 기록하고 재생하는 것도 가능해."
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혜인과 함께한 순간들... 내가 전부 기록해뒀거든. 그녀의 체온, 심장 박동, 떨림까지... 전부 다."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병적인 거 알아. 죽은 사람의 데이터를 붙잡고... 하지만 지수야. 잊을 수가 없어. 이 데이터는 영원히 선명하니까. 매번 접속할 때마다 그녀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진심이었다. 떨리는 목소리, 젖은 눈. 연기는 아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같이 돌았다. 혜인의 감각 데이터를 기록했다. F-71의 신경계가 느낀 모든 것을. 그리고 지금 수연이 바로 옆 방에서 자고 있다. F-72. 같은 계열의 바디. 더 진보된 버전.
유진 언니가 수연의 감각 데이터도 기록하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혜인을 잃었으니까. 혜인의 데이터로는 부족해지는 날이 올 테니까.
"......저도 비슷한 게 있어요."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준우의 음성 메시지. "지수야,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수백 번도 더 들은 그 평범한 한마디. 지우지 못한 것.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내 약점을 보여줄 단계가 아니다.
언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더 묻고 싶은 눈이었다. 하지만 나도 묻지 않았고, 언니도 묻지 않았다.
***
"보여줄 게 있어."
언니가 몸을 일으켰다. 눈물을 닦으며 표정이 다시 단단해졌다. 전환이 빨랐다. 탁자 위의 가죽 가방을 가리켰다.
"늦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어요?"
"응. 가평에 다녀왔어. 세이프 하우스에."
가평. 혼자서. 연락도 없이.
"확인해야 했어. 닥터 윌리엄이 정말로 정리를 시작했는지."
"그래서요?"
"텅 비어 있었어. 완전히."
언니가 눈을 감았다.
"배양 탱크가 있던 자리엔 먼지만 남아 있었어. 데이터 서버, 시약 냉장고, 현미경들... 전부 사라졌어. 바닥엔 장비를 끌어낸 자국만."
장비 회수. 흔적 제거. 칼릭스가 세이프 하우스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유진 언니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곳이 안전하지 않았다. 그러면 유진 언니가 모르는 것이 더 있을 수 있다.
"다행히 내가 찾으러 간 건 아직 그대로였어."
언니가 가방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무기명 채권. 은 박사님이 비밀 칸에 숨겨둔 거야. 칼릭스 놈들은 몰랐던 것 같아."
봉투를 열었다. 채권 다발. 발행처와 시리얼 넘버를 훑었다.
"이걸 현금화하려면 금융권에 내밀어야 하는데 — 채권 번호가 추적되면 위치가 노출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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