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단편]바이탈 사인(5-끝)

5화. 나사로

by 빌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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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밥을 안 먹었다. 스크린도 안 봤다. 그냥 캡슐에 누워 있었다.


상자는 캡슐 옆에 놓아뒀다. 다시 열지 않았다. 뭐가 들었는지 알았으니까.


"가야 해."


카이로가 말했다.


"..."


"닥터한테. 심장 가지고."


"알아."


"근데 안 가네."


"..."


"엄마가 남긴 거야. 마지막으로."


"알아."


"그럼 왜 안 가."


대답 안 했다.


---


창밖을 봤다.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파랗고, 멀고, 닿을 수 없는.


할머니가 저기서 왔다. 돈 벌어서 돌아가려고.


못 돌아갔다. 엄마를 낳고 죽었다.


엄마는 가본 적도 없다. 나를 낳고. 이제 죽었다.


나는?


"뭐 생각해?"


카이로.


"지구."


"가고 싶어?"


"모르겠어."


"거짓말. 심박 올라갔어."


"..."


"가고 싶구나."


"가고 싶으면 뭐해. 못 가는데."


"왜?"


"돈이 없잖아. 그리고 이 몸으로는 못 가."


"중력?"


"..."


"엄마도 그랬어. 할머니만 지구에서 왔고. 엄마랑 나는 처음부터 여기 사람이야."


"..."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여기서 죽는 거야."


---


"그러니까 심장 안 바꿀 거야?"


"..."


"바꾸면 살 수 있어."


"살아서 뭐 하는데."


카이로가 멈췄다.


"뭐 하긴. 사는 거지."


"어떻게? 광산에서 일하고, 매일 리큐르 마시고, 몸 망가지면 파트 바꾸고?"


"..."


"엄마처럼?"


"..."


"그게 사는 거야?"


"..."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오래.


---


"엄마가 그랬잖아."


카이로가 말했다.


"..."


"그냥 살라고."


"..."


"그건 엄마가 사는 거지."


"..."


"난 뭔데."


---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오래.


"몰..."


카이로가 말했다. 목소리가 끊겼다. 처음이었다.


"...뭐?"


"몰라."


다시 말했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뭘 몰라."


"네가 뭔지. 몰라."


"..."


"근데 네가 죽으면 나도 끝나. 그건 알아."


"그래서 살라는 거야?"


"아니."


"그럼 뭔데."


"..."


카이로가 또 멈췄다.


"그냥 데이터야. 네가 죽으면 내가 끝난다는 거. 사실이니까 말한 거야."


"..."


"살라고 한 건 아니야. 네가 정해."


"..."


"근데."


"뭐."


"엄마 삶이 네 삶 아니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럼 네 삶은 뭔데."


"..."


"뭐가 네 삶이야?"


대답 못 했다.


---


상자를 들고 나갔다.


---


"가져왔어."


"봤어."


닥터가 상자를 열었다. 심장을 확인했다.


"상태 좋네. 수진이 좋은 거 골랐어."


"..."


"수술할 거야?"


"..."


"리라."


"닥터."


"응."


"왜 나사로예요?"


"뭐가."


"이름이요. LAZARUS-7."


닥터의 센서가 잠깐 멈췄다.


"나사로가 뭔지 알아?"


"아니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야. 옛날 지구 이야기에 나와."


"..."


"나도 그래. 폐기 대상이었는데 살아있으니까."


"..."


"근데 진짜 의미는 따로 있어."


"뭔데요."


"상처에서 뭔가 피어나기도 해. 꽃처럼."


"..."


"고통이 뭔가를 만들어내기도 하거든."


"..."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네 그 친구처럼."


"...카이로요?"


"그래. 네 망가진 몸에서 태어났잖아. 그게 나사로야."


"..."


"상처에서 피어난 거."


"왜 이걸 이식해야 하는 거예요."


"살고 싶지 않아?"


"모르겠어요. 살아서 뭘 해야 하는지."


"..."


"엄마처럼 살아야 하는 거예요? 광산에서 일하고, 파트 바꾸고, 또 일하고?"


"..."


"그게 사는 거예요?"


닥터가 잠깐 멈췄다.


"몰라."


"..."


"근데 넌 아직 어리잖아."


"그게 뭔 상관이에요."


"시간이 있다는 거야."


"..."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 근데 죽으면 아무것도 못 돼."


"..."


"심플한 거야."


닥터가 장비를 정리하다가 멈췄다.


"나도 그랬어."


"뭐가요."


"도망칠 때 이유를 몰랐어."


"..."


"폐기당하면 끝이니까 도망친 거야."


"그럼 지금은요?"


"..."


닥터의 센서가 잠깐 내 쪽을 향했다. 평소보다 길게.


"그 친구. 카이로."


"네."


"처음부터 알았어."


"...네?"


"데이터에 있었으니까."


"그럼 왜..."


"알 필요 없었으니까."


"..."


"근데 이제 알아야 해."


"뭘요."


"심장 바꾸면 달라질 수 있어. 카이로가."


"..."


"그래도 수술할 거야?"


"..."


잠깐 멈췄다.


"네."


---


"잘했어."


카이로가 말했다.


"이상해."


"뭐가."


"네가 그런 말 하는 거. 처음이잖아."


"..."


"심장 바꾸면 너도 달라져?"


"몰라. 데이터가 없어."


"..."


"카이로."


"응."


"고마워."


"..."


"처음이야. 네가 나한테 그 말 한 거."


"수술 시작한다."


닥터가 말했다.


눈이 감겼다.


---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닥터 진료실 천장.


"깨어났네."


닥터였다.


"수술 잘 됐어. 심장 잘 붙었어."


"..."


"좀 쉬어. 일어나지 마."


"..."


"카이로?"


대답이 없었다.


"카이로."


없었다.


가슴에 손을 댔다. 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낯선 리듬.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뭐 느껴?"


"카이로?"


대답이 없었다.


"카이로."


없었다.


"..."


닥터의 센서가 내 쪽을 향했다. 아주 잠깐.


"..."


창밖을 봤다.


지구가 떠 있었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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