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금의 나와 즐겁게 살아가기
2023년을 시작하면서 고전 읽기 북클럽에 들어갔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고전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의무적으로 읽었던 것이 전부다. 북클럽에서 처음 선택된 책은 톨스토이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예전에 읽었는데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북클럽 회원들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도 좋았다.
내가 구입한 책에는 톨스토이의 여러 단편들이 같이 엮여 있다. 그 중 <세 가지 질문>을 읽으며 톨스토이가 던진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톨스토이의 던진 첫 번째 질문은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두 번째 질문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 번째 질문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을 할까?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이라고 답한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붙들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나 역시 같은 답을 할 것이다.
글을 쓰며 반 백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봤다. 생각해 보니 재미있게 살진 않았다. 슬픔이 드리워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 흘린 날은 있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제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금의 나를 잘 데리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져 나에 대해 적어본다.
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론 낯을 가리다 보니 두 번쯤 만나야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고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웃고 울고 할 정도로 내 이야기도 잘하는 사람이다. 예전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일은 나를 설레게 한다. 선물을 고르며 받을 사람의 웃음이 생각나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진지하게 고른다.
친구들은 나에게 재미있다고 얘기하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다. 말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재미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일 뿐.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맛있다고 소문난 집을 찾아다니는 일도 거의 없다.
외향형(MBTI 성격 유형 중 ESTJ)이지만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함께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집콕(집에서 콕 박혀서 지낸다는 의미의 신조어)하는 것도 좋아한다. 분위기도 제법 맞출 줄 아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가끔 빠져 사는 사람이다.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잠자는 것을 잊는다. 5일 밤낮 일해서 마무리하고 주말 이틀은 시체처럼 늘어져 있긴 하지만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요즘은 나이 들어 가능할진 모르겠다. 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복잡한 날에는 5000피스의 퍼즐을 사 들고 들어가 완성할 때까지 붙들기도 한다. 좋은 말로는 인내심이 좋은 거고 나쁜 말로는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것으로 해두자.
난 순종적인 사람이다. 큰 아이 출산 때의 일. 수술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산모가 기절했으니 난산이었다. 한참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와 힘들어하는 내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100번을 외우면 곧 출산할 거야”라고 했다. 순진했던 건지 고통을 잊을 만한 것이 필요했던 건지 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응급 수술을 했다. 회복 후 남편에게 사도신경은 100번 못 외웠다고 고해성사하듯 말할 정도면 순종적인 것 아닐까? 아마 글을 읽으면서 웃을지도 모른다. 바보 같다고.
그나마 여기까지는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좋은 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사람인데 설마 나쁜 면이 없을까?
나는 고집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는 설득해서라도 그 일을 하는 고집쟁이다. 대부분 부모님 의견대로 따랐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금은 남편에게 그런다. 아빠한테는 밥을 굶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고, 남편한테는 말과 애교(?)를 무기로 얻어냈다. 내겐 아들이 둘이지만 남편은 철딱서니 없는 딸이 하나 더 있다고 얘기할 정도니 상상해 보라. 이제는 AS 의무기간도 끝난 부인과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고백하는데 욱하는 성질도 있다. 부모교육 강사이고 청소년 상담을 하지만 내 아이 키우는 것은 이론과 다르더라. ‘안 돼’라는 말은 달고 살았고 협박은 기본에 타협도 했다. 그렇지만 체벌은 딱 한 번하고 후회했다. 작은 아들이 중학교 때던가 말을 안 들어 손으로 아이 등짝 스매싱을 날렸지만 때려본 사람이 때린다고 빗맞아 손바닥에 멍이 들었다. 그 후로는 다시는 손해 볼 일은 안 한다.
난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 할 일도 많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요청에 “NO”라고 못한다. 친한 사람의 부탁에는 더욱더. 친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에도, 논문 통계를 부탁하는 것도 거절하기 힘들다. 물론 내게 약간의 여유 있는 돈과 시간이 있어야지만 받아주지만 즉시 거절하기 힘들어한다. 다행인 건 내가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이 독이 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금전적 손해가 있었거나 마음의 상처가 된 일이 없었으니 괜찮은 걸로.
이게 나다.
잘 들여다보면 아니 그냥 봐도 빈틈이 많은 나다.
경제관념도 없고 욕심도 없어서 모으기보다 퍼주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때론 상처받을 수 있지만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다. 크게 상처받은 일이 없으니 되었고 크게 위로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매일 필사하고 있는 심리치료가인 루이스 헤이는 <하루 한 장, 마음 챙김>에서 내 내면에서 사랑이 시작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만 나를 다치지 않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나는 다짐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나를 사랑하기로. 과거에 경험한 나의 아픔은 내 탓이 아니었고 그 안에서 상처받은 아이는 이제 잘 자란 50세의 중년 여성이 되었다. 유연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고, 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살아가고, 이별의 두려움을 맞설 수 있는 어른이다. 아니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이전 지나간 시간들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을 즐기며 더욱 사랑하며 행복하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