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장실에서 외친 생존 선언

열아홉, 간호학과에 던져지다 - 5

by 적응왕 뚜아

​간호학과는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는 스무 살들과, 이미 사회를 경험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돌아온 만학도 언니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평행선이 존재했다. 갈등의 불씨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피어올랐다.


​첫 번째 충돌은 ‘과 점퍼(과잠)’였다. 우리에겐 대학 생활의 상징이자 단결의 도구였지만, 이미 사회를 경험한 언니들에게 그것은 그저 ‘불필요한 지출’ 일뿐이었다.


“경험해 보니 다 쓸데없더라, 하지 말자”는 언니들과 “우리도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인데 왜 안 되냐”는 동기들의 의견 차이는 팽팽했다.


결국 교수님의 중재로 과 점퍼를 맞추긴 했지만, 졸업 때까지 교복처럼 입고 다닐 만큼 만족스러웠던 우리와 달리 언니들의 표정은 내내 떫떠름했다.


​실습 시간은 더 위태로웠다.

기본간호학 실습 때, 언니들은 교과서의 순서 대신 과거 병원 현장에서 보았던 ‘실무형 루틴’대로 술기를 행하곤 했다. 교수님의 지적은 매서웠다.


“여기는 현장이 아니라 원칙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20대 동기들은 “다 같이 처음 배우는 입장인데 왜 아는 척하며 흐름을 깨느냐”며 수군거렸고, 그 말이 언니들의 귀에 들어가며 ‘예의 없는 아이들’과 ‘나대는 어른들’이라는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주로 언니들과 점심을 먹으며 그들의 고충을 들었기에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언니들 편’으로 분류되곤 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과제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동기들과도 가까워졌다. 물론 수업이 끝나면 곧장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달려가느라 그들과 함께 술 한 잔 마시며 ‘놀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학년 2학기,

결국 사달이 났다. 학과 전체가 술렁일 정도의 큰 갈등 끝에 핵심 인물들이 학과장실로 불려 갔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양쪽의 날 선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나는 가만히 시계를 보았다. 롯데리아 아르바이트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 지루한 진실 공방을 견뎌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결국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해요.”


​냉랭했던 학과장실에 정적이 흐르는 사이, 나는 덧붙였다. 우리 집 가게에 불이 났고, 내가 지금 여기서 이 감정싸움에 에너지를 쏟기엔 내 삶이 너무나 절박하다고.


나의 예기치 못한 ‘생존 선언’에 교수님은 물론, 서로를 쏘아보던 동기와 언니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의 사정을 알게 된 그들은 그제야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 상황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나는 면담에서 제외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뜨거운 전쟁이었을지 모르나,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나에게 그 갈등은 사치스러운 소음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뜻밖의 방식으로 오해를 벗고, 다시 나만의 정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