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job, 가장이라는 무게

열아홉, 간호학과에 던져지다 - 4

by 적응왕 뚜아

아웃백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체력적인 문제였다. 이제 곧 시작될 본격적인 간호 실습과 ‘알바계의 해병대’라 불리는 아웃백 주방 일을 병행하기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집 근처 롯데리아에 합격해 첫 근무를 마친 참이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라 그런지 업무 루틴과 용어가 아웃백과 유사해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시급이 높은 아웃백을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잠든 그날 새벽, 집 전화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아빠가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집을 나서던 그 뒷모습이 불길했다. 잠에서 깬 엄마와 함께 도착한 가게는 참혹했다.


천장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정성껏 진열했던 제품 위로는 새하얀 재가 눈처럼 덮여 있었다.


조사를 마친 소방관은 오래된 벽 콘센트에서 튄 작은 스파크가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 미세한 불꽃 하나가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온 일터를 한순간에 앗아간 것이다.


보험 보상금이 지급되기까지는 기약 없는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 집의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평생을 일해온 사람이 일을 놓으면 갑자기 늙어버린다고. 부모님도 그랬다. 활기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빠는 매일 뒷산을 오르며 말수를 잃으셨다.


엄마는 TV를 보다 울음을 터뜨렸고, 자다가도 화를 내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셨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내가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야 했다.


​나는 결국 아웃백 퇴사를 취소했다. 평일에는 롯데리아 마감을, 주말에는 아웃백 풀타임을 뛰었다.


여기에 낮에는 병원 실습생으로, 밤에는 학과 공부까지 해내야 하는 이른바 ‘4 잡(4 job)’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잠은 늘 부족했고, 학과 소식은 늘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나는 생존이라는 이름의 정글 위에서 숨 가쁘게 달려야 했다.


​하지만 시련은 혼자 오지 않았다.


학기 초부터 이어졌던 20대 동기들과 만학도 언니들 사이의 대립이 터진 것이다. 나는 인생을 살며 ‘적을 만들지 말자’는 주의였다.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좋은 게 좋은 거라 믿으며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평화라고 믿었다.


​그러나 2학기 개학 후 학교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동기들은 나를 ‘박쥐’라 불렀고, 만학도 언니들에겐 ‘스파이’가 되어 있었다.


집안의 불길을 끄기 위해 밤낮없이 일터로 달려가던 사이, 내가 믿었던 교실 안의 평화는 나만 빼고 무너져 있었다.


​가장의 무게와 동기들의 차가운 시선.

그 이중고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적당히 지내는 것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것이 더 큰 적응의 기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