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해진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승인하는 안목이다
1923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된 독일은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에 짓눌려 있었다. 정부는 가장 손쉬운 해법을 택했다. 돈을 찍어냈다. 처음에는 조금, 그다음에는 많이, 나중에는 인쇄기가 멈추지 않을 정도로. 마르크화의 발행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에 비례하여 화폐의 가치는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1921년에 빵 한 덩이가 1마르크였다. 1923년 1월에는 250마르크. 같은 해 7월에는 100,000마르크. 11월이 되자 2,000억 마르크를 내밀어야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었다. 주부들은 장을 보러 갈 때 손수레에 지폐를 싣고 다녔다. 아이들은 마르크화 다발로 블록 쌓기를 했다. 벽지를 사는 것보다 지폐를 벽에 바르는 것이 더 쌌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이것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화폐가 너무 많이 풀리면, 화폐 자체가 가치를 잃는다. 희소하지 않은 것에는 가격이 붙지 않는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지능의 세계에서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숫자를 보자.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래 수천 년에 걸쳐 축적해온 데이터의 총량은, 2010년 기준으로 겨우 2제타바이트(ZB)였다. 1제타바이트는 1조 기가바이트다. 그런데 2024년, 전 세계가 하루에 생성하는 데이터의 양은 약 4억 테라바이트, 연간으로 환산하면 147제타바이트에 달한다. 14년 만에 70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IDC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존재하는 전 세계 데이터의 90%가 최근 2년 안에 만들어졌다. 더 극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래 2010년까지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낸 데이터의 총량을, 지금 인류는 5일 만에 생산한다.
이 폭증의 한가운데에 생성형 AI가 있다. ChatGPT 하나만 놓고 봐도 주간 활성 이용자가 9억 명을 넘어섰고, 하루에 처리되는 프롬프트가 25억 건이다. 한 사람이 한 번의 대화에서 수백에서 수천 단어의 텍스트를 주고받으니, ChatGPT 하나가 매일 생성하는 텍스트의 양만 해도 가늠하기 어려운 규모다. 여기에 클로드, 제미나이, 라마, 미스트랄, 딥시크, 그리고 이름조차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십 개의 기업용 모델들을 더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이미지의 71%가 이미 AI로 생성된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2010년에 하루 평균 298회이던 한 사람의 디지털 상호작용 횟수는 2025년 약 4,900회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텍스트만이 아니다. 미드저니, 달리, 스테이블 디퓨전은 매일 수천만 장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수노는 하루에 수만 곡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런웨이와 소라는 영상을, 커서와 디빈은 코드를, 각종 AI 도구들은 프레젠테이션과 스프레드시트와 이메일과 보고서를 쉬지 않고 찍어내고 있다. 인쇄기가 텍스트의 복제를 가능하게 했다면, AI는 지적 결과물의 대량 생산 자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복제가 아니라 생성이다.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바이마르의 인쇄기가 마르크화를 찍어내듯, AI는 지능의 산출물을 찍어내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화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 지적 결과물에 일어나고 있다. 가치의 폭락이다.
5년 전만 해도, 잘 쓴 보고서 한 편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영어로 20페이지짜리 시장 분석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트렌드를 읽어내고,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읽는 사람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리하는 능력. 그것은 수년간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컨설팅 회사들은 그 보고서 한 편에 수천만 원을 청구할 수 있었다. 희소한 능력이 만들어낸 희소한 결과물에는 높은 가격이 붙었다.
지금은 어떤가. AI에게 같은 주제를 던지면 5분 만에 비슷한 수준의 보고서가 나온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데이터의 최신성에 의문이 있을 수 있고, 산업 내부자만 아는 뉘앙스가 빠져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읽을 만한' 수준의 결과물이 거의 무료로, 거의 무한히 생성된다는 사실 자체가 판을 바꾸고 있다.
보고서만이 아니다. 로고를 디자인하는 데 디자이너에게 200만 원을 지불하던 스타트업이 이제는 AI로 50가지 시안을 뽑아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쓴다. 변호사에게 의뢰하던 계약서 초안을 AI가 수 분 만에 만들어준다. 번역가에게 맡기던 해외 자료 번역을 AI가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작곡가 없이 광고 음악이 만들어지고, 카피라이터 없이 마케팅 문구가 생성되고, 일러스트레이터 없이 삽화가 완성된다.
희소했던 것이 풍족해졌다. 풍족한 정도가 아니라,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공급이 무한해지면, 가격은 0에 수렴한다. 이것이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능 자체가 가치를 잃었다는 말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능의 '산출물'이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 디자인, 코드, 번역, 요약, 초안. 이것들은 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과거에는 이 결과물을 생산하는 능력 자체가 희소했기 때문에 결과물에 높은 값이 매겨졌다. 그러나 이제 AI가 그 결과물을 거의 무한히 찍어내니, 결과물 자체의 단가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희소해졌는가?
바이마르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했을 때, 마르크화는 휴지보다 못한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도 가치를 유지한 것이 있었다. 금과 외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물 자산이었다. 땅, 공장, 기술, 빵을 구울 수 있는 밀가루. 화폐가 범람해도 실물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범람한 것이 가치를 잃을 때, 범람하지 않은 것이 빛을 발한다.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에 범람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결과물이 아니다. 결과물을 '승인하는 능력'이다.
AI가 보고서 열 편을 써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느 것이 실제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쓸 만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AI가 하지 못한다. AI가 디자인 시안 50개를 뽑아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 브랜드의 내년 방향과 부합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가 합금 조성 3,000가지를 추천해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느 것을 실제 용해로에 넣을지, 어느 것에 연구비와 시간을 걸 것인지를 확정하는 것은 연구자의 안목이다. 결과물은 범람한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 마침표를 찍는 안목은 범람하지 않는다.
안목은 AI처럼 스케일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목은 축적의 산물이다. 수천 편의 보고서를 읽어온 사람만이 '이 보고서는 된다'는 직감을 가질 수 있다. 수백 건의 프로젝트를 경험한 사람만이 '이 방향은 위험하다'는 감각을 발휘할 수 있다. 수십 년간 합금을 다뤄온 연구자만이 '이 조성은 해볼 만하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안목은 데이터를 학습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실패해보고, 책임져보고, 그 경험이 몸에 새겨져야 비로소 생긴다.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에, 안목은 금본위제의 금과 같다. 화폐가 아무리 넘쳐나도 금의 매장량은 유한하듯, 지적 결과물이 아무리 넘쳐나도 그것을 가려내는 안목의 총량은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안목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간다. 이 현상은 이미 현실에서 관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채용 시장이다. 과거에 기업들이 인재를 뽑을 때 가장 중시한 것은 '실행 능력'이었다. 코드를 짤 수 있는가, 보고서를 쓸 수 있는가, 디자인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이 이력서를 채웠고, 그 목록이 길수록 연봉이 올라갔다.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이 곧 가치 있는 인간이었다.
지금 실리콘밸리의 최전선에서는 다른 질문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품질을 판별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열 가지 선택지 중에서 정확히 하나를 고를 수 있는가?" "이 사람의 판단에 돈을 걸 수 있는가?"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특정 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술 연구의 세계에서도 같은 구조의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AI가 논문의 초안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심지어 가설을 제안하는 시대가 되면서, 논문의 양이 폭발하고 있다. 주요 AI 학회들의 투고 논문 수는 학회당 만 편을 넘어섰고, ICLR의 경우 2025년 한 해에만 투고량이 59.8% 증가했다. 2030년에는 주요 학회 투고 수가 6만 5천 편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리뷰어도 AI를 써서 더 많이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Nature에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학술 연구자의 50% 이상이 이미 논문 심사에 AI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반대였다. 스탠퍼드 대학의 제임스 주(James Zou) 연구팀이 2023년과 2024년에 발표된 컴퓨터 과학 분야 학술 리뷰 5만 건을 분석한 결과, 리뷰 문장의 최대 17%가 대형 언어모델이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commendable', 'meticulous' 같은 AI 특유의 단어가 리뷰에 급증했고, 이런 리뷰들은 피상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CVPR 2025에서는 '극도로 무책임한' 리뷰를 작성한 심사자들의 논문 19편이 역으로 데스크 리젝 처분을 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생산도 AI가 하고, 검증도 AI가 한다. 그런데 품질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떨어진다. 왜일까. AI는 원고를 요약하고 오류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 연구가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가"라는 판단은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해당 분야에서 수십 년간 연구해온 사람의 안목에서만 나온다. AI가 생산과 검증 모두를 가속시킬수록, 그 모든 것 위에서 최종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인간의 안목이 더 절실해지는 역설. 이것이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학술계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AI가 영상 판독에서 이미 높은 정확도를 보이고, 환자 데이터를 분석하여 진단 후보를 제시하는 것은 앞장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의료계가 직면한 진짜 과제는 AI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AI가 내놓는 다섯 가지 진단 후보를 앞에 놓고, "이 환자에게는 세 번째가 맞다"고 확정할 수 있는 임상적 안목을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다. AI의 제안이 많아질수록, 그 제안을 걸러내는 인간의 판단력이 더 절실해진다. 공급이 늘수록 수요도 느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늘수록 큐레이션의 필요가 급증하는 구조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안목이 희소하다는 말은,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이 새로운 경제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성실하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었다. 시키는 일을 정확히 해내고, 주어진 업무를 빠짐없이 처리하면, 그것만으로 직업적 존재 가치가 있었다. 생산 자체가 가치였던 시대에는 생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AI가 그 생산을 대신해버린다면, '성실한 실행자'의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이것은 잔인한 이야기다. 그러나 눈을 돌린다고 사라지는 현실이 아니다.
바이마르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때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고통받은 것은 아니었다.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 외화를 확보한 사람, 상황을 읽고 미리 대비한 사람은 오히려 부를 키웠다. 반면 월급을 마르크화로 받아 저축하고 있던 중산층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같은 혼란 속에서도 명암이 갈렸고, 그 명암을 가른 것은 운이 아니라 상황을 읽는 눈이었다.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도 같은 구조로 작동할 것이다.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홍수 속에서, 안목을 갖춘 사람은 그 홍수를 자원으로 활용할 것이다. 안목이 없는 사람은 홍수에 휩쓸릴 것이다. AI를 도구로 쓰되 최종 판단은 자기가 내리는 사람과, AI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안목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다. 안목은 이 시대의 생존 자산이다.
그렇다면 안목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이것은 이 책의 뒷부분에서 더 깊이 다루겠지만, 한 가지는 지금 짚어두려고 한다. 안목은 가르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해서 길러진다는 사실이다.
와인 감별사를 생각해보자. 와인 교과서를 달달 외운다고 좋은 소믈리에가 되지 않는다. 수천 잔을 마셔보아야 한다. 좋은 와인도 마셔보고, 나쁜 와인도 마셔보고, 좋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나빴던 와인도 경험해보아야 한다. 그 모든 경험이 혀에 쌓이고, 어느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와인은 된다." 그 직감이 안목이다.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원고를 알아보는 눈은 수천 편의 원고를 읽어본 뒤에야 생긴다. 투자자의 안목도 다르지 않다. 수백 건의 투자를 해보고,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본 뒤에야 "이 팀은 된다"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의사의 임상적 직관도, 엔지니어의 설계 감각도, 연구자의 실험 선택 능력도 모두 같은 구조다. 가르침이 아니라 축적이다.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래서 안목은 스케일업이 안 된다. AI는 하루에 수백만 편의 텍스트를 학습할 수 있지만, 인간의 안목은 그런 식으로 가속되지 않는다. 직접 판단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겪어보고, 맞았을 때와 틀렸을 때의 차이를 체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지름길이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안목이 AI 시대에 희소한 이유다. AI는 모든 것을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안목은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계의 속도가 무한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안목이라는 유한한 자원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더 높아진다.
1923년 바이마르의 위기는 결국 새로운 화폐의 도입으로 수습되었다. 렌텐마르크라는 이름의 새 화폐는 부동산과 산업 자산을 담보로 발행되었다. 무한히 찍어낼 수 있는 종이 위의 숫자가 아니라, 유한하고 실체가 있는 자산에 가치의 닻을 내린 것이다. 그제야 경제는 안정을 되찾았다.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도 같은 처방을 요구한다. AI가 무한히 찍어내는 지적 산출물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가치의 닻을 어디에 내려야 하는가. 그 닻이 바로 안목이다. 인간의 판단, 인간의 책임, 인간의 확정. 무한히 복제될 수 없고, 기계로 대체될 수 없으며, 축적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것. 렌텐마르크가 실물 자산에 기반했듯, AI 시대의 가치는 인간의 안목에 기반해야 한다.
화폐가 넘쳐날 때 금이 빛나듯, 지능이 넘쳐나는 시대에 빛나는 것은 그 지능을 가려내는 인간의 눈이다.
지능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AI의 생산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고, 결과물의 품질도 더 높아질 것이며, 그 범람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거스를 필요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범람하는 것의 가치는 떨어지고, 희소한 것의 가치는 올라간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길러야 할 것은 더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만들어진 것 중에서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다. 그 눈이 곧 이 시대의 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