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피터 틸의 마피아들

0.1%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by 성효경

2007년, 포춘(Fortune)지가 샌프란시스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토스카에서 한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열세 명의 남자가 트랙수트와 금목걸이를 걸치고, HBO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마피아처럼 포즈를 취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학을 좋아하는 일중독자들이고, 그다지 인기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pay26_b1.png PayPal Mafia, Fortune 2007


사진 맨 앞에 턱을 괴고 앉은 피터 틸은 이미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였다. 투자금으로 50만 달러를 넣었고, 이후 6억 3,800만 달러를 회수했다. 그 뒤에 군청색 셔츠를 입고 앉아있는 리드 호프먼은 링크드인을 만들어 마이크로소프트에 262억 달러에 팔았다. 사진에 없었던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 매각 대금 1억 6,500만 달러로 스페이스X를 창업하고 테슬라에 투자했다. 차드 헐리와 자웨드 카림은 유튜브를 만들어 구글에 16억 5천만 달러에 매각했고, 제레미 스토플먼은 옐프를, 맥스 레브친은 어펌을 세웠다. 로엘로프 보타는 세쿼이아캐피탈의 파트너가 되었고, 키스 라보이스는 코슬라벤처스에 합류했다.

대략 20여 명의 페이팔 동문이 이후 설립하거나 초기 투자한 회사들. 테슬라, 스페이스X, 링크드인, 유튜브, 옐프, 야머, 팔란티어, 어펌, 슬라이드, 키바. 초기 투자까지 포함하면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스트라이프, 리프트. 한 회사의 동문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기업 가치를 합산하면 수조 달러에 달한다.



companies.png 페이팔 마피아의 유산: 그들이 창업하고 투자한 기업들


피터 틸은 196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체스에 빠져서, 미국체스연맹 레이팅 2,342의 라이프마스터가 되었고, 캘리포니아 주 수학대회에서 1등을 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스탠퍼드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재학 중에 보수 성향의 학내 신문 '스탠퍼드 리뷰'를 창간하여 초대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스탠퍼드 로스쿨까지 마친 뒤에는 연방항소법원 서기, 뉴욕의 설리번앤크롬웰에서 증권 변호사, 크레디스위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하지만 로펌도 투자은행도 그가 오래 머무른 곳은 아니었다. 1996년,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100만 달러를 모아 틸캐피탈매니지먼트라는 펀드를 세우고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1998년, 스탠퍼드 강연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의 암호학자 맥스 레브친과 의기투합하여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다. 원래는 팜파일럿이라는 휴대용 기기 사이에서 적외선으로 돈을 전송하는 서비스였는데, 이메일을 통한 송금이 훨씬 인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피벗했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매각되었고, CEO였던 틸은 자기 지분 3.7%로 5,500만 달러를 가져갔다.


페이팔 이후의 행보가 흥미롭다. 매각 대금 중 1,000만 달러로 클라리움캐피탈이라는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를 세웠고, 2003년에는 "페이팔에서 사기를 잡아내던 기술을 테러 방지에도 쓸 수 있다"는 발상으로 팔란티어를 공동 설립했다(회사명은 톨킨 소설에 등장하는 '보는 돌'에서 따왔다). 2005년에는 파운더스펀드라는 벤처캐피탈을 세웠다.

그리고 2004년 8월, 당시로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투자를 하나 했다. 페이팔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리드 호프먼과 그의 지인 숀 파커를 통해 소개받은 상대는, 하버드 기숙사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던 스무 살의 마크 저커버그였다. 틸은 여기에 50만 달러를 넣었다. 닷컴 버블이 터진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소셜 네트워크라는 개념 자체가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투자 계약은 전환사채로, 2004년 말까지 사용자 150만 명에 도달하면 지분 10.2%로 전환되는 조건이었다. 페이스북은 이 목표를 근소하게 달성하지 못했지만, 틸은 전환을 허용했다. "그들이 원래의 비전을 추구하는 것에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이었고, 꽤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이 50만 달러가 6억 달러 이상이 되었다.

체스판에서 상대가 보지 못하는 수를 읽고, 파생상품 시장에서 가격의 비효율을 포착하고, 닷컴 폐허 한가운데서 하버드 기숙사의 소셜 네트워크에 미래를 건 사람. 틸은 이 감각을 나중에 '제로 투 원'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제로투원.jpg Zero to One by Peter Thiel


틸의 책 '제로 투 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미국 항공 산업과 구글의 비교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항공사들은 연 매출 1,600억 달러를 올렸다. 구글의 매출은 500억 달러로 항공사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구글은 매출의 21%를 이익으로 가져갔고, 항공사들은 편도 티켓 평균 178달러에서 탑승객당 37센트를 남겼다. 이익률로 치면 구글이 항공사의 100배 이상이었다. 구글의 시가총액은 미국 전체 항공사를 합친 것의 세 배였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항공사들은 서로 경쟁한다. 같은 노선에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니, 가격을 낮추는 것 외에는 차별화할 방법이 없다. 틸은 이것을 "1에서 n"이라고 불렀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복제하고, 개선하고, 더 싸게 만드는 것. 반면 구글은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으로 검색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이것이 "0에서 1"이다. 타자기 한 대를 가지고 타자기 100대를 만들면 1에서 n이다. 타자기를 가지고 워드프로세서를 만들면 0에서 1이다. 1에서 n은 경쟁이고, 0에서 1은 독점이다. 경쟁은 이익을 0으로 수렴시키고, 독점은 이익을 축적하게 해준다.

틸의 기준은 명확했다. 독점적 기술이 되려면 가장 가까운 대체재보다 최소 10배는 나아야 한다. 10배 미만의 개선은 소비자에게 "약간 나은 것"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구글 검색이 야후를 10배 이상 앞질렀고, 아이패드가 기존 태블릿을 10배 이상 앞질렀다. 그리고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시작할 때 "모든 것의 상점"을 만들려 한 게 아니라 책이라는 아주 작은 시장에서 독점을 확보한 뒤 확장한 것. 페이스북이 전 인류를 연결하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라 하버드 학생이라는 극소수 시장에서 시작한 것. 0에서 1은 항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빌 게이츠 이후의 빌 게이츠가 운영체제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래리 페이지 이후의 래리 페이지가 검색엔진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저커버그 이후의 저커버그가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 리도 없다. 이미 0에서 1로 간 길을 다시 가는 것은, 0에서 1이 아니라 1에서 n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그들이 만든 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것처럼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는 것이다.

이 구분이 AI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AI는 1에서 n으로 가는 일을 압도적으로 잘한다. 기존 패턴을 학습하여 재조합하고, 효율화하고, 확장하는 것은 AI의 본질적 강점이다. 5장에서 본 것처럼, AI는 수백만 권의 텍스트를 학습하여 "편집자 수준"의 글을 쓰고, 기존 음악 패턴을 조합하여 100만 스트리밍을 넘기는 곡을 만들어낸다. 항공사들이 같은 노선에서 37센트를 놓고 경쟁하는 것처럼,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도 같은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다. 1에서 n의 영역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0에서 1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당신만이 아는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틸이 채용 면접에서 늘 던지는 이 질문은, AI가 구조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종류의 질문이다. AI는 기존 데이터에서 패턴을 추출하지만, 기존 데이터에 없는 진실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2004년에 하버드 기숙사의 소셜 네트워크에 50만 달러를 넣겠다는 판단은 기존 패턴의 연장선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의미에서 0에서 1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을 짚어야 한다. 범용 인공지능(AGI)이 실현되면 0에서 1도 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AI가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면, 틸이 말하는 0에서 1의 영역도 기계의 몫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가능성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데이비드 도이치가 짚었듯이, AI가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고 왜 그렇게 풀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설령 AGI가 0에서 1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 0에서 1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 수많은 가능한 0에서 1 중에서 "이것이 지금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틸이 페이스북에 투자한 것은 소셜 네트워크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이 사람들이 이것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페이팔 마피아가 흥미로운 것은 이 0에서 1의 판단 능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에 분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는 서로에게 돈을 걸었다. 추상적인 "신뢰"가 아니라, 구체적인 달러로 표현된 신뢰였다.

기록을 보면 이렇다. 틸은 슬라이드, 옐프, 링크드인에 투자했다. 레브친은 옐프에 첫 100만 달러를 넣고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틸의 파운더스펀드는 데이비드 삭스가 세운 Geni.com에 첫 15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직원 29명 중 5명이 페이팔 출신이었다. 호프먼은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했는데, 틸이 저커버그를 처음 만난 것도 호프먼과 숀 파커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심지어 틸, 삭스, 머스크, 레브친은 함께 영화 'Thank You for Smoking'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투자, 고용, 자문,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까지.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동문 네트워크가 아니라, 서로의 판단에 돈을 거는 생태계였다.

2003년,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소비자 기술의 미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키스 라보이스는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새로운 소비자 아이디어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리드와 피터, 그리고 우리 몇 명, 세쿼이아 정도만 있었다." 모두가 부동산과 금융으로 눈을 돌린 시점에 이 사람들만 기술에 남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유튜브가, 링크드인이, 옐프가 태어났다. 틸의 말을 빌리면, "아무도 없는 곳에 나타나면, 그것은 꽤 좋은 위치다."

데이비드 삭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페이팔 이후의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가 모두 달랐다. 옐프, 유튜브, 야머, 링크드인.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스케일하는 방법, 그 플레이북은 페이팔에서 배운 것이었다." 0에서 1의 아이디어는 각자 다른 곳에서 왔지만, 1을 n으로 키우는 실행의 문법은 공유된 자산이었다. 페이팔에서 함께 사기꾼과 싸우고, 이베이와 경쟁하고, 닷컴 버블을 살아남은 경험이 일종의 공통 언어가 된 것이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0.1%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봤다. 외과의사의 손끝 감각, 로뷔숑의 미각,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감각. 그것은 개인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역량이었다. 페이팔 마피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개인의 0.1%가 비싼 것은 맞지만, 그 0.1%가 진짜로 폭발하는 것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0.1%와 만날 때라는 것이다.

틸 혼자였다면 페이스북 투자는 한 건의 성공적인 베팅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호프먼이 틸을 저커버그에게 연결했고, 레브친이 독립적으로 옐프라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삭스가 야머를 세웠고, 헐리와 카림이 유튜브를 만들었다. 이 각각의 0에서 1이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에게 자본을 대고, 서로의 성공을 학습 데이터로 삼으면서, 개인의 베팅은 생태계의 진화가 되었다. 2007년 포춘지가 이 사진을 찍었을 때, 이들이 관여한 기업의 총 가치는 약 300억 달러였다. 2026년 현재, 그 숫자는 수조 달러를 넘는다.

AI가 1에서 n의 모든 과정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0에서 1을 판단하는 눈은 AI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베팅할 때, 개인의 0.1%는 산업을 만드는 힘이 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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