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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초연 Sep 29. 2015

# 3. 보호자 임명 시(時)

-병동에세이-

햇볕이 따사롭다. 날은 차다. 그래서인지 생김과 다르게 좀 더 춥게 느껴지는 날이다. 아빠의 옷자락 속으로 얼굴을 묻는 아이가 보인다. 조그마한 아이와 큰 어른. 저 아이의 보호자는 품안의 자리를 선뜻 내어주는 아비일 것이다. 품을 내어주는 커다란 저 어른일 것이다. 겉만 훑어보아도 조그마한 아이에게는 도무지 저 큰 어른을 지켜낼 힘이 없어 보인다. 20년 후의 일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보 호 자. 어떠한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한자뜻이 말하는 보호자는 흡사 사람이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이다.

나이가 적던 많던 보호자는 존재한다.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 수호천사라도, 본인이라도, 으레 생각하는 보호자일지라도. 병원을 가득 채운 공기에는 온통 보호자의 숨결들로 묻어나온다.  

  

어떤 환자의 보호자가 입원약정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환자의 둘째 아드님이신 이 분은 환자의 눈매와 참 닮았다. 병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자니 힘들다는 첫 마디에서 그동안의 지친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했다.

거침없이 여백을 채우던 손놀림이 멈칫한 자리에는 보호자 성명을 기입하는 칸이 있었다. 이미 두 자를 적어버린 상태였는데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곤란이 보호자의 얼굴을 덮었다. 환자의 아들인 본인의 이름 석 자를 적는 대신 환자분의 성함을 두 자 적고는 당황하신 것이다. 더러 하시는 실수라 난 가벼운 웃음지으며 이어나가려하려는 찰나 보호자의 말이 꼬리를 문다.


"저 어렸을 땐 아버님이 제 보호자이셨는데... 그래서 헷갈렸나봐요, 이젠 제가 아버님 보호자죠_"

  

이내 수정을 도와드렸지만 뭔가 텁텁하게 남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밥을 먹고 난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겪게 되는 씁쓰레한 치약과의 만남처럼 조금은 괴롭고 어느 한쪽이 마비된 기분이다. 그리고 이내 청결한 치아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만큼이나 제 감정에도 환기가 되었다. 키도 생각도 작아 한창 커야만 했던 시절의 나의 주변에는 그 모자람조차도 한없이 메워주셨던 보호자의 존재가 있었다. 키가 작던 꼬마는 자라나는 키만큼 나이도 자라 20살. 누군가가 정해놓은 규격화된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라는 이름아래 맞게 되는 보호해야 할 대상들이 생겨난다.


보호자 임명 時.  보호자로 임명되는 시기나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의무감에 기초한 때, 그 대상을 지켜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마음에서는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아끼는 마음에서 본인의 몸을 대고 지켜내리라는 사랑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허나 그 것 외에도 누군가를 보호할 때의 기분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클 것이다. 이는 혹독한 이기주의 사회에서 사랑법 또한 이기주의로 전락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등에 짊어진 나만의 주장이다.


그리고


보호자 박탈 時.   보호할 대상을 상실했을 때, 보호할 이유가 사라졌을 때,

                    보호할 힘을 잃었을 때..



입장의 힘은 엄청나다.

올려보건 내려보건 서있는 자리(입장)에서 순간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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