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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초연 Sep 29. 2015

# 2. 그날의 춤을 기억합니다.

- 병동에세이-

808호 병실 문을 열자 냉장고에 붙은 잎사귀들이 보인다. 바람결에 흩날리다 냉장고에 들러붙은 듯,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몸의 왼쪽 편에 마비가 온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딸의 아름다운 낙서가 눈에 꽉 차 들어온다.

냉한 고철덩어리가 무어가 좋다고 테이프 하나에 의지해 붙어있는 이파리들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그동안 너무 우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에 움츠러들었던 몸만큼이나 굳어있던 마음이 풀려온다.  

  

긴 복도를 한 걸음 한걸음 안마하듯 걸음 옮기는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작은 키에 짧게 정돈된 단발머리를 가졌다. 그 중 한명은 환자라는 다른 이름의 어머니. 한 명의 보호자라는 이름의 딸이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팔꿈치를 접은 채로 고개를 떨군 왼쪽 손과 중력의 힘을 모조리 받기라도 한 듯 바닥 가까이에서 맴돌고 있는 작은 발이 바닥을 끈다. 스윽-삭, 왠지 바닥에 귀를 갖다대고 들으면 더 크게 들릴 것만 같은 환자의 발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어보고 싶다.   

 

그 둘 몸짓의 상이 내 눈에 맺혔을 때 나의 접점은 어디였을까. 앞서 가는 어머니의 발뒤꿈치와 뒤에 꼭 붙어 걷는 딸의 발가락 끝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어깨 위에 올린 딸의 두 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가로지르는 긴 복도길,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볕이 비추는 어머니의 은색 머리카락일까. 아무렴 상관없다. 그 두 사람의 몸을 감싸고 도는 햇빛의 입자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뿐이다.

스치기만 해도 스르르 녹을 것만 같은 부드러운 실크 천과 온몸을 휘감는 로맨틱한 곡조가 생략된, 병동 복도를 가로지르는 모녀의 블루스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오로지 하나의 동작을 위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단연 TV에 나오는 댄스가수들의 멋진 합동공연,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떡을 치는 두 아낙네의 모습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누워만 있는 환자에게 밥을 떠먹이는 보호자의 팔 동작, 몸의 왼쪽으로 마비가 와 걸음이 느린 환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천천히 보조를 맞추는 직원의 발걸음,  마비가 와 힘없는 다리에 실내화를 신기우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의 손.


오직 한 동작만을 위한 기울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커다란 그림자 덩어리는 어느 무엇보다 완성된 결정체였다.    


 두 모녀의 발자국이 묻어있다. 훑고 지나간 그 자리에는 두 모녀의 사랑과 나란히 발을 움직이는 묘한 춤사위가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그 모습을 그들을 비추던 햇살과 함께 작은 액자로 만든다. 사진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남기련다. 복도 끝에서 이루어지는 모녀의 블루스를 보며 가볍지도, 지나치게 밝지도 않은 이름 모를 클래식 음악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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