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한 워밍업,
직업인이라는 자아를 찾아 일터로 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경력 공백의 범위는 생각보다 더 광범위하다. 지역 이주와 같은 물리적 변화로 파생된 공백뿐만 아니라, 심리적 혹은 분리적 경력 공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주로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중단된 여성을 지칭하는 데 경력 단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연결 고리가 끊긴 단절이라는 용어보다 ‘경력 공백’이라는 표현을 장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의 공백 기간을 거쳐 일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서로의 경험을 묻고 기록했다.
김다은: 경력 12년차, 문화기획자, 자녀 2명(4세, 1세)
자아, 예술가, 엄마, 서울의 엄마들 저자
김아연: 경력 16년차, 언론사 재직중, 자녀 2명(10세, 8세)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왜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 등 저자
노유진: 경력 8년차, 위커넥트 디렉터
나의 사적인 세종이주기 저자
이재은: 경력 17년차,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자녀 1명(13세)
다시, 일이 그리워질 때, 엄마라는 유산 등 저자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에서 인터뷰이 섭외와 진행, 원고 정리를 맡았다. 이 날의 대화는 총 3가지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노유진(아래 유진): 저는 ‘위커넥트’라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리어 빌딩 플랫폼을 공동 창업했고, 채용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어요. 스타트업 경력직 중에서도 유연근무가 가능한 포지션들을 발굴해, 유연한 일자리가 필요한 여성 인재들을 연결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남편 직장 때문에 세종으로 이주하면서 기존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을 겪었어요.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여성들, 나아가 양육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다은(아래 다은): 저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획자, 또는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일을 해왔어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엄마’와 관련된 일을 만들며 2020년 <자아, 예술가, 엄마>에 이어 2021년 <서울의 엄마들>이란 책을 작업했어요. 팩토리2라는 문화공간에서 만난 동료와 지난해 결성한 ‘다단조’라는 팀에서는 주로 시각예술이나 전시, 공연 같은 행사와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어요.
문화예술 분야는 비혼의 비율이 높고, 엄마가 아닌 분들이 훨씬 많아요. 저처럼 애가 둘이나 있는 사람은 드물죠. 그래서 예술가 엄마들이 모인 ‘예술육아소셜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곧 둘째가 태어나면 또 자의 반 타의 반 경력 단절이 되니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다시 복귀해야죠.
이재은(아래 재은): 저는 ‘여성커리어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생의 어떤 구간에 있든 여성들이 더 나은 일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모토로 여성들이 스스로 구간마다 필요한 일을 만들고, 설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관련된 교육을 해요. 제가 출산 후 경력 단절을 겪었던 당시만 해도 재취업이 더 어렵게 느껴졌었고, 눈을 확 낮추거나 창업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2013년에 직접 창업을 하게 됐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커리어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관들도 많이 없어 여성 스스로 일을 설계하는 교육 활동에 열의를 가지고 활동했어요. 조금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박사를 시작하면서 3년 정도의 심리적인 경력 공백을 겪게 되었어요. 흔히 경력 단절이라고 하면 여성의 생애 구간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개인의 맥락에 맞는 심리적인 이슈로도 단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아연(아래 아연):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언론사에 16년째 다니고 있어요. 육아휴직 두 번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겉으로 보이는 커리어의 공백은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육아휴직이 커리어의 공백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처음 휴직을 했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 제도가 막 시작되는 단계였고, 두 번째 신청을 했을 때는 다들 ‘너 이제 회사 그만둘 생각이구나’라고 얘기할 정도로 전례가 없었어요. 회사에서 두 번의 육아휴직을 쓴 사례가 저 이전에도 두 차례 더 있었는데, 복직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저도 사실상 회사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에게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요. 가족들에게 내가 복직을 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복직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워킹맘의 시선으로 온라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회사 얘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보니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없을 것 같아 필명을 썼어요. 우연한 계기로 책을 출간하게 되어 지금까지 워킹맘이나 부모, 공동 양육 시점에서의 육아, 맞벌이 부부 등의 얘기를 계속 책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경력 공백의 시간을 지나왔다. 각자의 경험이 어떠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다.
유진: 저는 결혼 후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고, 집값도 서울보다 훨씬 쌌기 때문에 돈을 모으자는 마음으로 세종에 집을 구했어요. 처음에는 출퇴근을 하다가 승진을 하면서 1년쯤 주말 부부로 떨어져 지냈는데,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요. 회사에 요청해서 한 달 정도 원격근무를 해보니,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사무실에 있어 일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더라고요. 원격근무가 가능한 조건이라 해도, 문화에 따라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러 옵션을 생각하다 세종에서 일을 구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지속가능하게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퇴사했어요.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할 만한 일이 세종에는 없는 거예요. 제가 비영리 조직에서 일했기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일들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도 같아요.
게다가 ‘남편 따라온 아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종이라는 도시가 복잡 미묘하게 불편하더라고요. 세종 이주 선택의 첫 번째 이유가 남편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적 여건이나 제가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등 여러 가지 조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거든요. 평생 세종에 살겠다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가족계획이 있으니까요. 일과 삶에서 나의 주체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 도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나의 주체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세종에 이주한 여성들이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지인과 여성의 일에 관한 주제로 창업을 하게 되었고, 장거리 출퇴근과 원격근무를 겸하는 조직문화 안에서 저도 원하는 일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 이후에 느꼈던 모든 의사결정은 5차 방정식 정도가 되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보통 5, 6개의 변수 중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세상이 원하는 일 이 세 가지 조합을 이야기하는데요, ‘지역’이라는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면서 방향성을 고민했어요. 세종에서 직업을 전환하거나 경력을 새롭게 시작한 30대 친구들을 인터뷰하면서 깨달았어요. 단기적으로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할 때가 있었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이면서 장기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선택한 게 맞았구나.
다은: 경력 공백은 직장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쓰는 표현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슬럼프에 빠지는 예술가도 있고 일정 시간 동안 연구를 하겠다고 해서 드러나지 않는 분도 있어요. 작업을 위한 준비 단계도 필요하기 때문에 모호해요. 단절을 겪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죠. 실제로 예술가들은 어떤 엄마의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했어요. 마침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자아, 예술가, 엄마>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네덜란드에서 만난 엄마 작가와의 인터뷰 도중에 제가 육아 공백 시기에 활동하지 않는 여성 예술가들을 '사라진다'라고 표현했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예술가라면 누구나 쉼의 기간이 있을 수 있고 무슨 이유로든 예술과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누구나 올 수 있고 언젠가 다시 돌아 올텐데, 엄마됨과 육아를 이유로 사라진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덴마크에서 만난 듀오 팀 중 한 분은 아이가 다섯, 다른 분은 셋이었어요. 정말 리스펙! ‘나는 아이 하나 두고, 덴마크에 와서 인터뷰하는 것도 이렇게나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이분들은 여덟이나 두고 뉴욕, 인도에 가서 활동한다고? 이게 과연 가능한가?’ 단순히 사회가 받쳐준다고 해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아무리 덴마크여도 이상한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고, 뉴욕에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아이는 누가 봐? 남편은?’ 돌봄과 가사 노동과 관련하여 여성에게 부여된 인식은 어느 나라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엄마가 되고 나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재은: 일의 패러다임이 매년 다르게 변화하는데 최근에는 새로운 일의 형태에 있어 엄마들이 주도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최근 제가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부분은 ‘주관적인 경력 브레이크’ 이거든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 나와 나의 일이 사라진 건 아닌데 육아와 엄마, 단절이 마치 트라이앵글 공식처럼 아직도 작동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저의 경우 취재 기자로 일하다 결혼, 석사 논문 등 여러 가지 변화들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금방 다른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결혼과 임신이라는 거대한 일을 겪으면서 쉽게 전환되지 않았어요. 한 번도 일을 하지 않는 나를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흐름은 그렇지가 않은 거죠. 주변에서도 엄마인 저를 권장했다고 해야 하나? 점점 더 아늑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상황이 저는 더 위태로웠어요. 그때 제가 교육학을 공부했으니 교사로 임용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 영어전담 교사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경력 단절을 더 무겁게 경험했어요. 아이까지 낳았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일이었는데 잘 맞지 않으니 더 힘들었죠. 그때의 마음을 글로 써서 칼럼으로 연재했는데 호응을 얻어서 책을 쓰게 되었어요.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된 거예요. 이런 물결을 타고 여성 자기 계발, 여성 커리어, 강연을 하게 된 기반이 만들어졌어요. 이런 흐름 안에서 일을 다시 하는 계기가 생겼어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조명을 받고, 대중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다보니 이게 정말 내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인가 생각이 들어 학업에 몰두하고 저를 새로 정립하는 시기를 보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단절의 상태로 보더라고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제가 다시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했을 땐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학업에서 사용하던 근육과 시장에서 요구하는 근육이 다름을 여실히 느꼈죠. 그렇게 저는 경력의 침체를 세 번 경험하게 되었어요. 결혼과 임신, 직업이 맞지 않아서, 시대와 저라는 사람이 맞물리지 않아서. 그런 경험들이 제가 여성 커리어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데 크게 보면 되게 풍부해진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여성, 특히 엄마라는 층위에 대해 민감성을 갖게 되었어요.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계층, 경험들이 모두 각자 다를 수 있다고 하는 민감성이요. 이런 것들이 다 자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연: 예술가 엄마로서 갖는 고민이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들과도 비슷한 지점이 많아요. 스스로 고정관념을 갖고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한다 생각했고, 주변에 워킹맘도 없었어요. 첫째를 낳고 일 년 동안 아이한테 미안해했어요. ‘다시 회사에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더 최선을 다해야지’라는 마음으로요. 회사에도 미안했고요.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한다고만 생각해서 그런지, 저 스스로한테 이 경력은 끝내야 한다고 말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꼭 아이 옆에 있어야만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와 밀착해 있다 보면 너무 과몰입하는 것 같더라고요. 건강도 나빠져,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제 안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 그리고 남편에게는 일하도록 ‘허락’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남편이 ‘그래, 그럼 한 달만 나가서 해보고 결정하자’고 해서 그런 마음으로 복직을 했어요. 막상 일하면서 일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육아와 병행해야겠다고 깨달았죠. 남편에게는 차마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을 못 해서 삼 개월, 일 년 이렇게 기간을 늘렸어요. 중간에 남편과 육아에 대한 견해 차이로 다투기도 했고, ‘일에만 몰두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라는 또 한 번의 고정관념을 깨야 했어요.
이런 고민을 저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고, 회사에서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광화문에서 점심시간에 잠깐 만날 수 있는 워킹맘들 모이자’ 글을 올렸더니 댓글이 100개, 200개가 달리는 거예요. 일 년 동안 신청자분들이 다니는 회사에 따라 5명씩 묶어서 연대를 만들어 드렸어요. 서로 고민을 나누면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네이버 포스트에 글을 연재할 때 '회사에서 아이 걱정이 된다'라는 글을 쓰면 반응이 정말 뜨겁지만, '기분이 정말 좋다'라는 글을 쓰면 반응이 안 좋아요. 처음에 만난 한 시간 동안 서로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서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행복하고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다시 포스트에 글을 쓸 때는 다수의 엄마를 상대로 다시 슬픈 엄마, 슬픈 워킹맘이 되는 거예요. 그러다 워킹맘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편집자를 만났고, 그 감정들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받아 두 번째 책으로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를 쓰게 되었어요.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후회가 전혀 없었는데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한번은 아들이 ‘그럼 엄만 어떻게 살겠다는 거야’라고 물었는데 제가 아이에게 변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직은 우리가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지 못했구나. 엄마들이 일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이구나.’ 편집자와 나중에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그 이후로 조회 수보다는 글을 쓰면서 행복한 걸 더 많이 생각해요.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작게나마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그리고 여성에 대한 오랜 관습과 인식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복귀를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예상되는 시나리오,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함께 점검했다.
다은: 예술계에 워낙 엄마도 없거니와, 다른 장르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굉장히 강한 쪽이 시각예술임에도 ‘엄마 예술가’는 매력이 좀 떨어지는 거예요. ‘엄마’가 붙는 순간 구매욕이 뚝 떨어지는 거죠. <자아,예술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정했을 때 저의 의도는 예술계 안에서도 다양한 여성들이 존재하고, 특히 시각예술계 안에는 장애를 가진 예술가, 비혼, 비건 등 다양한 서사 안에 ‘엄마’도 있다는 걸 담고 싶었어요.
아연: 저는 육아를 ‘나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육아만큼 혹독한 자기계발은 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육아는 엄마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고 아빠에게도 해당하잖아요. 저도 야근할 때는 발을 동동 굴러요. 집에서 남편이 애를 혼자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남자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육아와 직장 생활을 잘 병행할 수 있는지 또 아내와 육아를 어떻게 조율하면 좋을지 질문하면 ‘아, 이 친구들이 변화하고 있구나’를 느끼고 뿌듯해요.
다은: 제 다음 프로젝트가 <자아, 예술가, 아빠>인데요. 저희 남편은 저보다 더 육아를 많이 해요. 예술가는 집이나 작업실에 있을 일이 많아서 제가 의지하는 상황인데요. 실제로 시각예술계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형태로 부부들이 존재해요.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게 된다거나 예술가 아빠도 많다는 것도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 얘기도 공유하고 싶어 <자아, 예술가, 엄마>와 쌍벽을 이루는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진: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면서 루틴을 가지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내가 먹고 싶은 과일 한 팩을 사서 다 먹은 뒤 성취감에 대해 글을 쓴다든지 작은 부분들도 좋아요. 일터로 복귀했을 때 예전의 트렌드나 협업의 방식이 지금과는 또 차이 나기 때문에 요즘 스타트업의 콘텐츠, 뉴스레터를 구독하면서 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로 보내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지적인 자극을 받는 통로가 제한되기도 하니까요. 새로 일을 찾으시는 분들이 예전의 나를 기억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이력서를 끝까지 쓸 수 있도록 격려를 드리는 게 제 역할이에요.
저희는 앞으로 더 많은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성과 여성 리더십을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지속하길 바라는데 간혹 정말 단순한 일을 바라시는 경우도 있어요. 대기업의 개발자로 일하셨던 분이 단순 업무를 원하셨을 때 관점의 변화에 대한 고민도 들었어요. 다시 복귀할 때에는 이전과 같은 일이면 너무 몰입해서 번아웃이 올까 봐, 부족할까 봐. 고민하시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다시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임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계획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작년에는 ‘대학원에라도 갈까?’라는 고민도 하고 올해는 자격증 고민도 하고. 또 언제 아기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게 맞나 고민도 들어요.
커리어와 육아가 집중되는 30대의 인력들이 무언가를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재은: 일이라고 하는 경험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기도 하고 가치도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의 기준도 가치도 모두 다르니까 커리어 복귀에 관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변화를 꾀하여 어떻게 나의 활동, 일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주로 이른 아침 시간에 밀도 있게 작업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어떻게 간편화할 것인가, 메뉴는 어떻게 바꾸는 것이 현재 나의 일에 있어 균형을 꾀하는 데 도움이 될까와 같은 생활밀착형의 고민들을, 개별화된 일의 리듬에 맞춰 해볼 필요가 있어요.
아연: 비슷한 맥락인데 저도 처음에 이모님께 아이를 맡길 때 집안일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아이만 잘 봐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되니 마음으로는 아이랑 충분히 놀아줘야지 하고 퇴근해서 달려가면 막상 집을 치우는 게 우선이거든요. 그래서 이모님께 아이가 낮잠 잘 때 집안일을 부탁드려 부담을 덜어낼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안경을 벗었어요. 그럼 집이 깨끗해 보이면서 아이랑 놀아주다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하는 거죠.
아이가 조금 더 놀다 자고 싶어 하면 엄만 회사 일도 마저 하고 책도 읽고 자야 한다고 말해요. 아이에게도 분명하게 얘기하는 게 중요해요. ‘엄마 아빠는 집안일보다 너희가 우선이야. 너희에게 그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라고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어서 엄마와 자기 사이에 조율점, 힘이 생기는 거예요. 어디에 집중하고 놔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면 에너지를 더 잘 조율할 수 있어요.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는 시선도 있어요. 저는 재택 야근은 하는데 회사에서 야근은 안 합니다. 저의 신조에요. 아이들과 있어야 하는 시간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단호하게 양보하지 않으려 해요. 그래야지 이 사회가 변해요. 여자들만 변하면 소외만 될 뿐이에요. 남자들도 같이 변하고 인식해야 이 사회가 변할 수 있거든요. 때로는 퉁명한 얼굴로 내가 나의 것을 지켜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은: 개인의 차원에서 해야 할 것들도 분명히 존재해요. 육아나 돌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더라도 남성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얘기해 주면 시간과 에너지가 덜 드는데 일부만 요구하는 문화가 계속되니까 건강하지 않은 거예요. 양쪽 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늘 한 쪽에서만 생기다 보니 불균형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죠. 사회적인 이슈,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해결돼야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유진: 너무 공감해요. 조직이 다양성을 포용하려면, 단순히 양육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삶과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대학에서 저희 회사가 하는 일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어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경력 단절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아이를 부양할 책임도, 약자로서의 경험도 없는 일률적인 한 사람이 조직 대다수가 되어 다양성을 품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해요.
포기가 또 다른 단절의 표현이 되지 않길 바란다. 육아가 곧 커리어의 무덤이 되고 인생의 선택지에서 애초에 삭제해 버리는 일방적인 선택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이 서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양립 관계일 때 이 사회의 다양성은 확립될 수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까지 수많은 여성은 사회적인 시선과 내적 갈등 사이에서 ‘나’보다 ‘나를 둘러싼 주변인’을 더 많이 고려하고 배려한다. 일하는 엄마는 실현 가능한 영역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부담이든 마음의 부담이든 나누는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그 길을 경험하며 분투했던 이들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스스로 투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고민하고 함께 짊어져야 하는 문제임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판을 흔들어야 한다. 조금씩, 서서히 그렇게 앞으로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태동은 시작될 것이다.
1. 엄마가 일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음을 가족들과 공유한다.
2. 내가 원하는 일이면서 장기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커리어 패스를 설정한다.
3. 경력 공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엄마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4. 엄마로서 쌓아 온 모든 경험은 내가 가진 훌륭한 자원이다.
5. 일에 몰입하면서도 아이를 살뜰히 챙겨야 한다는 중압감을 내려놓자.
6. 엄마인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은 절대 내려놓지 말자.
7. 이전의 일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적인 자극의 통로를 확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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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내: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 경력 보유 여성의 이야기에 이어
‘내:일을 고민하는 여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커리어 가이드’를 4회차에 걸쳐 소개합니다.
본 컨텐츠는 아모레퍼시픽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루트임팩트, 진저티프로젝트, 포포포, W Plant가 함께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