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고 돌아 결국에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생일 달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생일이 다가오면 마냥 기뻤는데, 이젠 좀 다르게 다가온다.
생일 전까지가 만으로 한 살 더 어리게 살 수 있기에, 생일이 지나면 한 살 더 먹는 느낌이다.
주말에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위, 대장 내시경을 함께 하느라 3일 전부터 식단조절 및 전날 대장약 먹는데....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더라 ㅠㅠ 대장내시경은 정말 하기 전이 더 힘들어서 웬만하면 건강하고 싶다.
신입사원시절, 30대 후반이나 20대 후반 상사나 선배들에게 그 나이쯤 되면 좀 안정되냐고 질문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때쯤 되면 삶이 뭔가 자리 잡고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근데 그 선배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
"나도 비슷해요."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근데, 지금에서 보니 약간 이해가 되기도. 삶의 안정을 찾았다가 어느 순간 또 사건 사고가 휘몰아치고 불안정한 상황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게 인생일지도.... 방심하면 안 되나 보다....
마흔이 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다 단절되고 다시 취업하고 다시 단절되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 지점이 이르렀다. 슬프다 많이.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는데 사춘기 초입 아이는 이제 엄마는 왜 큰돈 안 버냐고 묻는다. 바짓가랑이 잡고 회사 그만두라고 하던 그 아이와 같은 아이이다.
어떤 선택을 한다는 건 뭘 포기할까의 싸움 같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요즘 구직 중인데 확실히 마흔이 넘으니까 이전경력이 좋더라도 일반 회사(조직)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고졸부터 가능하다는 두피관리사도 넣어봤는데(배워서 해 볼 수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했던 '서빙'도 찾아보고 있다.
서글프다.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되려던 건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단절이 왔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일했는데도.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
근데, 하나 좋아진 걸 찾자면 강제로 '독립적'이 되었다.
예전에는 겁도 많고 어떤 면에서는 의존적이었다. 특히 사람에 대한 부분에서 그랬던 듯.
병원이나 이런데 절대 혼자 못 가고 뭔가 보호자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배신감과 상처도 받다 보니,
아 인생은 남을 의지할 게 못 되는구나~를 여실히 느낀다.
부족하고 찌질한 '나'를 믿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사실도.
전에는 전문가의 의견,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굉장히 신뢰하고 참고했는데
이게 모든 결정의 처음과 끝을 내가 지고 가야 한다. 그래야 후회도 적고 남 탓도 안 하게 되지.
그리고,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말자. 어려서는 부모님께, 애인에게, 친구와 자식에게까지...
인정욕구 사랑욕구만 내려놔도 좀 수월할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주면 되는 거지.
울고 슬픔 속에서 오롯이 있다 보면 그것도 수용되더라.
예전에는 그런 감정은 느껴서는 안 돼라고 생각해서 차단하고 해결하려 애쎴는데, 하나하나 오롯이 느끼자.
하염없이 슬퍼서 목이 잠길 정도로 펑펑 울어보고, 너무 외로워서 땅이 꺼질 것 같은 고독감도 느껴보고....
되는 일 하나도 없는 절망감도 느껴보고....
검진 끝나고 죽 먹는 것에도 감사했다.
쫄지말자, 안 죽는다.
인생 좀 배짱 있게 살아보자.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