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의 그늘, 죽은 자의 영광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예비 장인어른을 뵈러 갔다. 장인어른은 이름을 대면 모두가 알법한 중견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해외 주재원을 포함, 총 33년을 근무하고 부사장의 위치까지 오른 분이었다. 휴가차 잠시 귀국하신 그분 앞에 서는데 나는 죄인처럼 위축되었다.
가난한 집안, 빚더미, 볼품없는 스펙.
'내 가정환경을 물어보시면 뭐라고 하지?'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서 오게. 반갑네."
장인어른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셨다. 따뜻하고 두툼한 손이었다. 그날 우리는 마주 앉아 소주를 마셨다. 한 병, 두 병, 세 병... 무려 각 3병씩을 비우는 긴 술자리였다.
내 인생에서 '술'은 언제나 공포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날은 고함과 폭력, 깨지는 소리로 집안이 뒤집어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술 취한 중년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장인어른은 취할수록 너그러워지셨다. 평생을 바쳐 이룬 성취나 지위를 자랑할 법도 한데, 당신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훈계도, 설교도 없었다. 그저 우리 둘의 현재를 묻고, 고개를 끄덕이며 "편하게 생각하라"라고 웃어주셨다.
술잔이 오고 가는데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니. 술을 마셔도 식탁이 엎어지지 않다니.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는 것을. 진짜 어른은 자신의 그림자로 아랫사람을 덮는 게 아니라, 묵묵히 그늘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장인어른이 묵묵히 만들어준 그늘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추석, 나는 다시 아버지가 지배하는 지독한 현실로 끌려갔다.
우리 부부는 내 아버지와 함께 예산에 있는 납골당을 찾았다. 아버지는 평생을 조상 타령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태조 왕건의 장인어른이 우리 벽진 이씨의 시조라느니, 6대조 할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했다느니 하는 죽은 과거에 집착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예비 며느리 앞에서 조상들의 무용담을 훈장처럼 늘어놓았다. 그러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아내의 집안 분위기를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다.
"왜 절을 안 하니? 조상도 모르고 공경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냐? 근본이 없는 거지."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워서 얼어붙은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이 아내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었기에, 내게 그 말은 그저 매번 듣던 일상적인 소음일 뿐이었다. 비정상이 완벽한 정상으로 둔갑해 있던 나의 지독한 무감각. 나는 멍청하게 앉아 아내의 세계가 난도질당하는 것을 방관했다.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이었는지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아버님은 우리 가족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어? 그리고 오빠는 왜 가만히 있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원망을 쏟아내는 아내를 보며, 나는 처음엔 그게 왜 문제인지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비로소 내가 얼마나 기괴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평생을 견뎌온 그 익숙한 억압이, 곁에 있는 가장 무해하고 따뜻한 사람을 깊게 찔렀던 것이다.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더듬거리며 사과했다.
살아있는 자식과 예비 며느리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죽은 귀신을 모시는 아버지.
예비 사위를 위해 자신의 무용담을 삼키고 기꺼이 술잔을 채워주던 장인어른.
두 개의 아버지상이 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며 벗어나고자 했던 아버지의 폭력이, 실은 '무감각'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고스란히 이식되어 아내를 방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소름 끼쳤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뼈마디가 불거졌다.
나는 결심했다. 죽은 조상에게 갇혀 산 사람을 할퀴는 저 낡고 병든 세계와 완벽하게 단절하겠다고.
내 곁에서 울고 있는 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늘을 내어주는 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