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도시락

가방 안에서 달그락거리던 그 소리 [추억 5]

by 캔디의 여백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하굣길에 가방을 들면 어김없이 낡은 양은 도시락통 소리가 따라왔다.

달그락 달그락.

빈 도시락 속에서 수저와 젓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책 사이에 끼워도 보고, 가방 구석에 밀어 넣어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양은은 제 안에 담긴 소리를 숨길 줄 몰랐다.

학교에서 집까지, 그 소리는 늘 나를 따라왔다.

지금 학교는 급식이다.

따뜻한 밥과 국이 식판에 담겨 나온다. 좋은 일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참 편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그 낡은 도시락 소리부터 떠올린다.

우리 때는 도시락보다 ‘벤또’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단무지는 다꽝이었고, 어묵은 덴뿌라였다.

그 낡은 말들 속에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그 시절의 냄새도 배어 있었다.

가방 안에는 교과서와 공책, 그리고 양은 도시락 하나가 늘 같이 있었다. 밥 한 통이 하루의 절반을 따라다녔다.

가끔 반찬 국물이 새어 가방에 냄새가 푹 배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책장을 넘기면 김치 냄새가 슬며시 따라 올라왔다.

사춘기 소년에게 그 냄새는 부끄러웠다.

싫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냄새마저 그리움이 되었다.

다들 어렵게 살던 때라 반찬 자랑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김치, 멸치, 콩자반, 계란부침. 대개 그런 것들이 돌고 돌았다.

그래도 또렷하게 남은 반찬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반장이 늘 싸 오던 간장 진미채볶음. 빨갛지도 까맣지도 않게, 갈색으로 윤기가 흐르던 그 반찬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고등학교 때는 식당집 친구의 김치볶음이 유난히 맛있었다. 묵은 김치를 참기름에 볶은 그 고소한 냄새는 지금도 코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별것 아닌 반찬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소시지나 장조림이 등장하는 날이면 점심시간이 평화롭지 않았다. 종이 울리고 뚜껑이 열리기 무섭게 사방에서 젓가락이 모여들었다.

그야말로 젓가락 전쟁이었다.

한 점이라도 건지려는 손과 한 점이라도 지키려는 손이 부딪쳤다.

정작 도시락 주인이 자기 반찬을 두어 점밖에 못 먹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화내지 않았다.
그게 그 시절 점심시간이었다.

내 도시락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날마다 반찬을 달리해 주셨다.
시장 갈 돈도 빠듯했을 텐데,
삼 형제 도시락을 그렇게 챙기셨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는 밥 아래에 계란부침을 깔아 주셨다. 친구들이 뺏어 먹을까 봐 일부러 밥으로 덮어 두신 것이다.

점심시간에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내면, 그 밑에서 노란 계란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말을 머리로 이해하기 한참 전에, 나는 그 노란 계란으로 사랑을 먼저 먹은 셈이다.

쌀이 귀한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보리를 30퍼센트 넘게 섞어야 했다. 적게 넣으면 여지없이 혼이 났다. 담임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뚜껑을 일일이 열어 보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셨다.

나는 그 시간이 싫었다. 보리밥도 싫었다. 까끌하고 텁텁한 식감이 어린 입에는 늘 거슬렸다.

어머니는 그 마음을 아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밥 위에만
보리를 수북이 얹으셨다.

선생님 눈에는 영락없는 보리밥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 걷어내는 순간,
그 아래에서 흰쌀밥이 나왔다.

나는 속으로 흐뭇했다.

어머니의 작은 거짓말이었다.

법을 어기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자식 입에 밥 한 숟가락이라도
편하게 넣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는 그 마음의 깊이까지는 몰랐다.
그저 보리가 적어 다행이라고만 여겼다.

나도 공범처럼
속으로 뿌듯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꼼수가 아릿하다.

어머니는 늘 조용히 내 편이셨다.

겨울이면 교실 가운데 난로 위에, 창가 스팀 위에 도시락이 층층이 올라갔다. 등교하자마자 아이들은 자리 다툼을 벌였다.

따뜻한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다.

도시락이 쌓이고 점심이 가까워질수록 김치 냄새와 밥 냄새가 교실을 떠다녔다. 맨 아래 깔린 도시락은 밥이 누룽지처럼 노릇하게 눌어붙기도 했다.

손잡이가 뜨거워 교복 소매로 감싸 들어야 했던 그 도시락.

그 냄새는 가난했다. 그리고 그 냄새는 따뜻했다.

학교에서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주말에 도서관에 갈 때도 어머니는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싸 주셨다. 김밥 한 줄 사 먹는 것도 사치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주말 새벽에도 어김없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 주셨다.

지금 나더러 하라면 도저히 못 할 일이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삼 형제였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도시락 셋을 나란히 늘어놓고 밥을 담으셨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 해 두 해도 아니었다.

헤아려 보면 어머니의 새벽은 오래도록 도시락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 새벽을 다 더하면 어머니의 인생 한 자락이 그 작은 양은통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그저 한 끼 점심으로만 받아먹었다.

도시락통 한 번 설거지한 적이 없다.

친구 반찬을 부러워하면서, 보리밥이 싫다고 투정 부리면서, 계란을 발견하면 속으로만 좋아하면서.

그 한 통이 어머니의 새벽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자식은 늘 늦게 깨닫는다.

어머니의 그 새벽이 수십 년 쌓여 내 하루하루가 되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본다.

어머니는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대신 밥을 꾹꾹 눌러 담으셨다. 반찬을 바꿔 넣으셨다. 보리 밑에 흰쌀을 숨기고, 밥 아래에 계란을 숨기셨다.

말 대신 손이 있었다.

말 대신 새벽이 있었다.

이제 학교에서 도시락은 거의 사라졌다.

가방 안에서 양은 도시락통이 달그락거리던 소리도,
난로나 스팀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마음도
이제는 추억 속으로 물러났다.

그게 진보인지 상실인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그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이제야 보인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던 새벽이다.

빈 도시락 속에서 수저가 부딪치던 그 소리는, 어머니의 새벽이 내 등에 업혀 하굣길까지 따라오던 소리였다.

가방 안에서 달그락거리던 그 소리가,
오늘은 내 안에서 크게 울린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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